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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부른다. 춤을 춘다. 그녀가 눈에 보인다. 눈에 아른거린다. 그녀가 가슴에 아른거린다. 오늘도 내가 가진 몇개의 이성의 끈 중 하나를 놓아버렸다. 이제 정말 몇개 안남은듯 하다. 절대 끊어질것 같지 않은 끈이 하나 있기는 하다. 목숨. 목숨의 끈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죽을것 같다. 아니 죽을듯이 힘들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다. 오랫만에 음악을 듣는다. 음악이라도 있었으면 이정도는 아니었을텐데. 집에 오는데 까지는 무사하다. 멍하니 컴퓨터를 킨다. 컴퓨터?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도구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풀어야 한다. 스트레스를 푸는 놀이도구는 컴퓨터가 유일하다. 그런데 컴퓨터를 하면 스트레스가 풀려야 하는데 더이상 그런것은 없다. 스트레스가 아닌듯 하다. 힘들지도 않은데 죽을듯이 힘들다. 무슨 이유인지 전혀 알수가 없다.

  자주가는 페이퍼에 들른다. 이놈의 작가 가끔씩 나에게 눈물을 선사해 주곤 한다. 아니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단지 눈물이 있을뿐. 울고는 있다. 단지 눈물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 찔러서 피한방울 안나오는 사람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생긴것과 다르게 예민한거와 비슷한가? 눈은 큰데 눈물은 나오지 않는다. 눈물은 나오지 않는데 눈물을 간직하고 있다. 눈물도 쌓여간다. 눈물이 씨가 되서 슬픔도 쌓여간다. 이놈의 작가, 내가 왜 힘들어 하는지 이유를 답해준다. 진실을 알게되면 그 서러움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서럽게 눈물이 난다. 이번에도 눈에서 나오는 눈물은 아니지만 운다. 나는 분명 울고있다.

  왜 나를 슬프게 하니. 넌 왜 나를 슬프게 하니. 도망갔다. 저멀리 도망갔다. 말한마디 안하고, 말한마디 못하고 저멀리 도망갔다. 그래 너때문에 슬펐구나. 그냥 나는 말한마디 하고 싶었는데 너는 나를 완전히 밀어내고 봉쇄하고 차단했다. 그냥, 그냥, 내 말한마디면 모든게 끝나는데, 너는 나를 끝까지 밀어넣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곳으로 날아갔다. 미쳤어. 이것때문에 내가 미쳤어. 내 이성의 끈들이 모두 끊어졌어, 라는 생각이 들자 무서워 진다. 살아야 한다. 살 곳을 찾아야 한다. 미치기는 싫었다. 그래 말을 하자. 말을 하면 살 수 있을꺼야.

  친구를 찾는다. 나와 친한 친구, 항상 메신저의 맨 위에 있지. 그래 먼저 보인다. 그 친구를 붙잡고 되도않는 소리를 시작한다. 내 이야기가 넋이 나갔다는 것을 쉽게 눈치챈다. 나를 어떻게든 정상궤도에 올리려는 노력이 보이지만 난 갈수록 되도않는 소리를 늘어놓는다. 모니터가 재수 없어 보인다. 모니터를 부수고 싶어진다. 단지 그 친구에게 말하고 싶은 욕구가 더 클 뿐이다. 핸드폰도 재수없다. 핸드폰을 던지고 싶다. 하지만 역시 던지지 않는다. 핸드폰이 아깝다는 가치가 더 놓을 뿐이다. 던진다? 주방의 그릇들이 떠올랐다. 주방의 그릇을 던져볼까? 또 던지지 않는다. 던지면 부모님이 미친놈 취급할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주방에 무엇이 있더라? 식칼이 떠올랐다. 식칼, 매력적이다. 내 가방안에 조심스레 식칼을 넣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상상만 하고 만다. 그럼, 모든 이성의 끈이 끊어져도 내 목숨은 절대 안끊는다. 아무리 슬퍼도 온 집안 집기를 다 부시면 부셨지, 정신병원에 들어가면 들어갔지 그러지는 않는다. 키보드를 다 뜯어버리고 싶은 욕망을 참으며 차분하게 친구에게 내 기분을 주절주절 떠든다. 친구에게 거의 닥치라는 말투로 내 이야기를 듣는것을 강요한다. 실컷 떠든다, 미친놈처럼. 떠든다. 떠든다. 떠들다보니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거 같다. 미치기 직전에서 미치기 5분전쯤으로 바뀐것 같다. 친구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고맙다. 고맙다. 고맙다라고 떠들고 나니 친구도 해맑게 웃어준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이제 잠을 잘수가 있겠구나. 식칼의 욕망이 과도정도로 바뀌었다. 그래도 과도를 들고가진 않을꺼다.

  이번엔 후배 한놈이 보인다. 또 개소리를 짓껄였다. 개소리를 짓껄이면 개소리로 답하는 놈이라 부담이 없다. 알아듣던 못알아듣던 그냥 짓껄였다. 역시 짓껄인다. 좋다. 녀석에게 하고싶은 말을 한마디 했다. 역시 짓껄인다. 좋구나. 그래그래 짓껄여라. 기분은 좀 나쁘지만 그래도 좋다. 녀석을 향해 썩소를 날려주며 쳐 자라고 한마디 한다. 나도 쳐 자야지.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는구나. 이 정신으로 일상을 사는게 말도 안된다.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냥 난 내 인생을 살고 있다고 느껴질 뿐이다. 까칠해졌지만 아무도 관심갖지 않는다. 관심 가져 달라고? 천만에, 내가 뭔짓을 해도 관심 갖지 않는다는것 정도는 나도 안다. 아니까 더 까칠해 진다. 점점 더 미쳐간다. 더 미치기전에 자야겠다. 침대에 누워 내일도 미치지 않기를 작은 기도를 하며 냄새나는 이불에 코를 박는다.

  약속시간이 다 되간다. 한명만 안왔다. 이 새끼 왜 안와? 안그래도 까칠한데 욕이 나온다. 이새끼, 뭔데 안오는거야? 한시간이 지났다. 안온다. 아니? 한시간이 지났나? 생각해보니 약속은 뭐지? 뭐지? 이놈 나보다 두개나 후배인데 나랑 나이가 같다. 재수했으면 다야? 재수했다고 나 무시하는거야? 이새끼 재수없네. 엄청 지났다. 진짜 열받는다. 육두문자가 남발한다. 이새끼 인간 쓰레기구만 너 죽었어. 이 나쁜새끼, 오기만 해봐 아주 묵사발을 내주겠어. 너같은 쓰레기는 나한테 가루가 될때까지 맞아야해. 너 두고보자. 나온다고 해놓고 연락도 안하고 안나와? 넌 진짜 걸리기만 해봐 눈을 갈아버리겠어. 이새끼.

  전화가 온다. 그래 너 두고보자. 너 이놈 또 뭔 핑계를 댈라고 그래? 죽었다. 죽었단다. 갑자기 바닥에 푹 쓰러진다. 시체가 내 앞에 있다. 쓰러진다. 시체가 눈을 뜨고 '너 나보고 쓰레기라고 했지?'라 말하는것 같다.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내가 죽인것도 아닌데 엄청난 죄책감이 밀려온다. 맥박이 두배, 세배, 네배, 천배쯤은 빨리 뛰는거 같다. 두려워 진다. 어디서 하모니카 소리가 들린다. 두살배기 어린아이가 나에게 기어온다. 내 책상위의 하모니카를 집어 들고 내 눈을 노려보며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한다. 삐삐삐. 막 부는 게 아니라 멜로디가 되어 날아온다. 장송곡 같은 멜로디를 부르며 나를 노려본다. 넌 뭐야? 죽었어. 사람이 죽었어. 두살배기 어린이가 나에게 말을 한다. 눈으로 말을 한다. 아 미치는구나 이러다 미치는구나. 느껴진다. 정신이 나가는게 느껴진다. 이 속에서 내 남은 끈은 목숨 하나말고 없구나. 내 목숨. 내 목숨. 살아 숨쉬는 내 목숨. 심장이 만배쯤 빨리 뛴다. 아니 십만배쯤? 모르겠다. 심장이 어디있는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심장이 되어 두근두근 나를 잡아먹을 듯 나를 압박한다.

  새벽 6시 잠에서 벌떡 일어나 침대위에서 멍한 자세로 앉아있다. 손과 발이 움직이지 않는다. 얼굴을 돌릴 수가 없다. 용기를 내서 창문쪽을 바라봤다. 아 내가 아직 살아있구나. 꿈에서 아직도 깨어나지 않았다. 내 발 아래 두살배기 어린이가 보이는것 같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고음이 들려온다. 아 나를 죽이러 칼이 날아오는구나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면서도, 전혀 이상하게 느껴지지가 않는다. 문을 열면 나를 잡으러 저승사자가 와있을꺼야 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면서도 문을 열 용기가 들지 않는다. 사지는 완전히 굳어있고,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 아 이것이 공포구나. 공포 영화가 현실이 가능하구나. 무한한 공포속에서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이러고 10분만 더 있으면 이성의 끈이 한개쯤 더 끊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TV가 켜지는 소리가 들린다. 현실의 일부가 나를 자극한다. 아 살았다. 살아있구나. 공포였구나. 안도하고 나니 다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금 무섭지만 그래도 컴퓨터를 키고 밖으로 나간다. 다 보인다. 모든것이 그대로다. 저승사자는 없다. 아 살았다. 물을 한컵 마시고 나니 정신이 든다. 컴퓨터를 킨다. 자주 가는 사이트의 유머게시판을 들여다 본다. 싸우지 귀신아 컬러판? 뭐야, 제목이 특이하네. 클릭을 한다. 귀신이랑 사람이 싸운다. 하하 웃기다. 스크롤을 내리다 나는 또 순간 미칠뻔 한다. 아 씨바 귀신그림인데 너무 괴기스럽다. 평소였으면 그냥 봤겠지만, 아까 경험때문에 잠시 이세상을 떠날뻔 했다. 아 이게 심장마비구나 싶다.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 다시 눕는다. 자야지. 자야지. 자면 좀 날꺼야. 못자겠다. 아까 귀신이 나를 다시 노려볼것 같다. 두살배기 꼬마아이, 재수없는 눈빛으로 다시 하모니카를 부를까봐 잠이 못든다. 물을 좀 먹고 오니 좀 낫다. 그래도 TV 소리가 들리니 잠자기 어렵지가 않다. 일찍 일어나야 할 일이 있지만, 죽기 싫어서 나는 다시 잠이 든다.

by 태방 2007. 5. 16. 2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