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추억을 잊고 살았다
금정역을 지나 안양으로 넘어가는 큰길가는 초등학교 시절 내가 넘어서는 안되는 심리적 구역이었다. 금정역을 넘어 산본으로 가면 무언가 내가 있어서는 안되는 세계,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그런 세계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요즘은 여의도나 영등포, 신림에 갈 일이 있으면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자주 지나가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때 군포로 이사간 이후 한번도 가지았았던 명학역 근처, 7살때부터 6년동안 안양8동을 벗어가본 기억이 거의 없었음에도 안양8동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제 어렴풋이 나는 정도이다. 버스를 타는것도 무서웠던 그시절, 미도아파트 버스 정류장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중학교때 아침 7시마다 버스 정류장에 서면 학교가서 숙제를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만 가득했던 시절, 중2때 처음알게된 사랑의 감정, 같은 반 친구였던 첫사랑을 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정류장 앞에서 15번 버스를 기다리던 그 시절,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재건축을 준비중인 미도아파트앞을 지나 명학 초등학교 정거장이 보인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 이름이다. 7살때 경남 양산에서 올라와 명학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을 몇개월 다니고 명학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의 기억, 사실의 기억, 상태의 기억보다는 사건의 기억, 장면의 기억만 아련히 떠오른다. 운동회때 어머니가 주신 음료수를 먹고 체육복 뒷주머니에 캔을 넣어두고 메스게임을 했던 기억, 학교 가는 입구 언덕에서 누나가 넘어져 그 이후로는 꼭 계단으로만 다니던 기억, 학교 앞에서 학습지 홍보용 퀴즈를 잘 풀어 농구공을 선물로 받았던 기억. 예전에는 완전히 넣어두고 있었던 기억들이, 그 앞을 몇번 지나다니게 되자 다시 떠올리게 된다. 신기하다. 추억이라는거 담고 있지 않아고 가슴에 언제나 담겨져 있구나. 무심히 버렸던 내 과거들을 다시 찾아가는게 새삼스럽기만 하다.
명학초등학교를 지나면 외할머니집에 가던 길이 나온다. 큰 길가의 인도를 걷다보면 성문 교회가기 전 언덕빼기의 숲이 보인다. 친구따라 빠른 길이라고 산길로 오르락내리락 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완전 어리버리하던 어렸을적이라 친구가 하자는 대로 시키는 일 잘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산길로 다닐때는 내가 남들보다 무언가 대단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렸을적부터 교회 아저씨, 아줌마들이 너무 선교활동을 심하게 해서 안좋은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성문교회, 명학교회 큰 교회가 두개나 있었지만 한번도 들어가본 적은 없다. 친구의 어머니가 짝퉁으로 세례를 한번 해 준 이후로는 다시는 교회에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나쁜 추억이다. 하지만 그런 추억들은 기억으로만 남겨져 있다. 지금은 교회에 들어가는것을 어려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기독교를 믿을것 같지는 않다.
성문교회를 지나면 명학역 앞 사거리가 나온다. 차들도 많고 사람도 많은 거리, 예전에는 경찰서도 있었고 시청도 있었고 문예회관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한산해진 분위기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들어온 유망 벤쳐기업 사옥은, 부도가 나 간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공원이 된다던 한 공립연구소 건물은 벤쳐타운이 들어와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 시청부지, 경찰서 부지는 모두 평촌으로 이전해 크기에 걸맞지 않는 구청과 파출소만이 남겨져 있다. 작은 골목을 따라 지나가면 예전에 다니던 컴퓨터 학원과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 그리고 예전 외할머니 집이 있다. 어렸을때부터 학원을 많이 다녀 외할머니 집이 거의 내 두번째 집에 가까웠다. 점심을 먹는것은 예삿일이었고, 외할아버지 복덕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기도 했다. 그곳에도 내 두번째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지금은 남녀공학이 되어버린 성문여고와 성문여중, 성결대학교로 들어가는 저 윗 골목은 지금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공부를 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던 골목, 그 골목은 어렸을적 공부를 하던 기억이 가득하지만 그보다 공부도중 놀기위해 안간힘을 쓰던 기억으로도 가득하다.
명학역 거리를 지나 버스를 타고 몇정거장 가다보면 우체국 사거리가 나온다. 이 너머는 중학교 이후의 기억이다. 초등학교의 심리적 장벽은 금정역부터 명학역까지였다. 우체국 앞의 배움터 사람 학원은 아직도 간판이 있는 듯 하다. 원장님이 나를 엄청 아껴주셨던 기억이 난다. 중2때 공통수학을 공부한다고 낑낑댔으니 그때는 그럴만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게 의미있는 짓이었을까 생각들지만, 뭐 그래도 그때 공부한거 쓰지는 않아도 덕분에 남들보다 좋게 살고는 있으니까. 그 원장님의 기억은 싫지만은 않다. 럭키짱 81권을 보며 읽을 엄두를 못내던 책방도 있겠지? 그때 학원차는 스타렉스였다. 내가 문을 너무 세게 닫아 문이 차 밖으로 한번 떨어진 적도 있었지. 그때 엄청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웃음이 피식 나오지만, 내 잃어버린 중학교 시절은 꼭 웃음이 나는 시절만은 아니다.
추억을 알게 되었다.
안양역 근처는 지금도 번화하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가는 골목에는 삼원극장은 없어지고 CGV가 들어왔다. 13층짜리 으리으리한 건물, 내가 제일 좋아하던 본백화점은 건물만 그대로이고 도통 목적을 알 수가 없는 쇼핑몰로 바뀌어 있다. 안양일번가 안쪽은 어짜피 내 기억속에도 계속 남아있는 공간이지만, 옛 삼원극장 자리와 본백화점은 추억의 공간이다. 그 추억의 공간이 남지 않은것은 슬픈일은 아니지만,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CGV의 구름다리는 나에게 '네가 기억하는 과거는 여기 없어'라고 말을 하는것만 같다.
지금 내 심리적 장벽은 CGV넘어서의 그 공간이다. 중학교때 매일 다니던 창박골로 가는 길, 15번, 15-2번 버스 두대의 종점과 프라자아파트, 뉴골든아파트, 신안중학교, 안양예고가 있는 그 공간, 친구와 걸어가다가 우연히 첫사랑과 마주쳐 어찌할 줄 몰랐던 기억, 눈이 펑펑 쏟아지던 졸업식날 버스타고 다니던 그 길을 눈을 맞으며 걸어오던 그 기억, 아니 추억, 기분이 좋았던 싫었던 잊기 싫은 그 기억들, 그 기억들이 가득한 그 공간에 나는 졸업 이후 단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갈 일이 없다. 아니 그건 핑계다. 얼마든지 갈 시간은 있다. 하지만 선뜻 가게 되지 않는다.
추억을 찾고 싶다.
시간이 많다. 버스비가 아까운 돈은 아니다. 기회를 만들면 옛 추억을 찾으러 초등학교건, 중학교건, 고등학교건 한번 다녀올 수 있다. 그런데 내 심리속에서 무언가 장벽이 쳐져 있다. 과거로 가면 안되는 걸까? 꼭 미래를 향해서만 가야 하는 건가? 아니지, 그건 내가 맨날 말했던 거지. 난 항상 과거를 씻기 위해 몸부림 쳐왔다. 과거의 어렸던 기억, 못났던 기억, 어리숙했던 기억, 모자랐던 기억, 그런 기억들만 항상 가슴에 남겨두고 버려야 할것, 잊어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그럴만도 했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 중학교에 같이 간 친구는 단 7명 뿐이었으며,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 나 혼자만 갔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교에 단 3명만 함께했다. 그것도 저기 먼 포항으로. 추억을 남겨 둘 친구가 있었던가? 아니면 그 추억을 다시 찾아볼 기회는 있었는가? 아니면 내가 애써 추억을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건가? 나는 추억이 다 없어진 줄 알았다. 과거의 것은 나쁜것들이기 때문에 다 버려놓은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포항에서 4년을 지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자, 난 내가 애써 추억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것이 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와보면 될것을, 다시 만나면 될것을, 다시 찾으면 될것을. 왜 그리도 멀리 하려고만 했는지.
나쁜 것들도 있다. 싫은 것들도 있다. 마냥 멀어지고 싶은 기억들도 있다. 그래도, 아련한 추억만큼은,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만큼은 있는게 또 낙이 아니겠나? 길을 지나가고 회상하면서 즐거워 질 수 있으면 그것이 지금까지 추억을 남기고 살아온 인생의 낙이 아니겠나? 시간을 한번 내고 내 심리적 장벽을 넘고 싶다. 어렸을적 나쁜 아저씨를 만날까 두려워 가지 못했던 그 장벽을 넘는데 6년이 걸렸다. 이제 집떠나와 산지 나도 6년 째니 나쁜 추억들을 만날까 두려워 가지 못했던 그 장벽을 넘어, 어렸을적 기억을 다시한번 되새겨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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