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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지금 화가 몹시 나있습니다.
그 이유는 매우 복잡다난하고 치졸하여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전 화가나면 수다를 떨어야 하는데 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화가나서 쓰는 글이지만, 제 '화'의 이유와는 상관없는, 진짜 수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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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 10년전의 어느날. >
대충 1995년 전후의 어느 날, 저는 '강간'에 대한 어떤 글을 어떤 통신 커뮤니티에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제 글의 요지는, 숫처녀내지는 순결에 대한 강한 집착이 없는 요즘 세태에서 '강간' 을 일반 폭력 이상의 어마어마한 범죄로 취급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글이었습니다.
( 물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
제 글이 옳은지 그른지를 지금 논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제가 그 글을 굳이 강하게 기억하게 된 까닭은 다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ㅇ < 후유.. 이건 뭐 단순한 사람들과는 수준이 안맞아서 이야기할 수가 없네요. >
재작년 즈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지금도 피지알에 오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도발적인 글로 피지알 자게를 떠들썩하게 만드시던 분이 계셨었습니다. 근데 하루는 그분이 올린 글이 제가 10년 전에 올렸던 글과 거의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 뭡니까.

그리고 제가 10년 전에 맞았던 다구리를 그분도 동일하게 맞고 있었습니다. ( 뭐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 13살 여중생의 울분에 찬 항의성 댓글부터 시작해서 40살은 됨직한 남자분의 '선배연' 하는 충고성 댓글까지 다양한 댓글이 달렸었죠. 그리고 원글의 작성자는 일관되게 '뭐 수준에 맞는 댓글이 달리면 같이 논의를 해보겠지만, 제가 대충 예상했던 단순한 댓글만 달리는 관계로 그냥 눈팅만 하고 있습니다.' 라는 식의 자세를 보였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원글이 자삭되는 결과를 낳았는데, 저는 그 원글의 작성자를 미워하진 않습니다. 제 10년전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았거든요. ( 당시의 제가 조금 더 진지하게 임하긴 했었네요. ) 다만 제가 안타까워하는 것은, 2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그분과, 30대 이상의 다른 회원분들과의 소통 불가능성이었습니다.

다른 30대 회원 분들의 지적 수준이 그분의 지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여 그분을 설득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그분의 지적 수준이 엄청나게 떨어져서 다른 분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이것은 그분이 처해있던 20대 특유의 심리상태.. 전 이것을 '전방위 냉소주의' 라고 이름붙였습니다만... 에 기인했다고 봅니다.

'전방위 냉소주의'는, 자기 자신은 방어해야할 어떤 이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로 상대방의 이념을 공격하기 때문에, 100전 100승의 승률을 자랑합니다. 이 맛에 한번 빠지고 나면, 그 승률을 자신의 지적 우월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기 마련이고, 그로인해 점점 더 냉소주의의 나락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의 현재 상태가 솔직한 마음으로 약간 걱정됩니다. 뭐 인터넷에서만 그렇게 행동하고 평소에는 고시공부 잘 합니다.. 이런 분이라면 다행이지만요. ( 저는 솔직한 냉소주의자였고, 주변을 냉소하는 만큼 제 인생도 많이 망가뜨리면서 살았었거든요. )

ㅇ < 예의 갖춰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고 해서 전부는 아니다. >
요즘은 그런 글 자체가 별로 올라오지 않지만, 피지알은 원래 정치부터 스타버그플레이까지 모든 종류의 주제를 가지고 쓸데없이 싸우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의 피지알러들이 어느정도 비슷한 부류로 출발했던 것에 비해, 지금의 피지알러는 어마어마한 스펙트럼을 보이고 있고, 그러다보니 논의 자체가 진행이 안되는 경우가 절반을 넘죠.

그것을 개선해보고자 종종 피지알에 올라오는 안타까움이 섞인 글들 - 서로 예의를 지키며 다양성을 존중합시다 - 은, 주로 통신상의 최소한의 예의에 대해 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다양성도 좋지만 최소한 귀여니의 시는 예술보다는 키치에 가깝다는 정도의 합의는 있었으면 좋겠고, 높은 수준에 대한 지향도 좋지만 그렇다고 좀 배웠다는 사람들이 비교적 지적 능력이 떨어지는 상대방의 생각을  쇠똥구리와 같은 것이라고 깔보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저 두가지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라서, 다양성의 존중은 필연적으로 속칭 '별것도 아닌 놈들이 기어올라오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고, 높은 수준에 대한 지향은 '잘 알지도 못하는 놈들은 알아서 버로우하세요' 라는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ㅇ < 딱지치는 소년과 속물덩어리 >
보통 20대는 극단적이기 마련이고, 그 극단성은 '모든 상황에 적용되는 절대적 가치관의 추구 -> 파시스트'의 길을 밟던지 '절대적 다양성의 추구 -> 냉소적 상대주의자' 의 길을 밟게 됩니다. 그리고 30대는 대개는 그 반동도 좀 겪고 어느정도 생각도 희석되고 지적 전투에서 패전도 많이 해보고 해서, '통합적 가치관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그다지 녹녹한게 아니고 그렇다고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이라는건 아닌데 니 말도 틀린건 아니고 하여튼 잘 살아야하는데..' 라는 투의 말을 하게 됩니다.

20대가 보기에 30대는 먹고살기 바빠서 지적능력이 퇴화한 회색분자죠. 30대가 보는 20대는 딱지치기하는 꼬맹이입니다. 소통이 될 리가 없습니다. 소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는 보통 '20대가 한수 접어주고 있는 경우' 이거나 '30대가 30대이기를 거부하는 사람일 경우' 입니다.

ㅇ < 어쩔 수 없지요. 잘 먹고 잘 사세요. ( 진심으로요 ) >
피지알에서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 노력도 안하고 자신의 말을 '배설'만 하려는 사람들은 논외로 치죠. 그분들은 그냥 치료 불가능한 '질병'에 걸린 분들이니 동정의 대상이지 논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 사람들끼리 결국은 도달하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은

A : 거 참 말귀 못알아들으시네요. 제 글이 어려우세요?
B : 인간적으로 자기가 한 말 정도는 기억하도록 합시다. 님께서 위에서 말씀하신 것이 얼마나 유치한지 제가 일일히 설명해드려야 하나요?

이런 경우죠.

이게 서로 예의를 바탕으로 전개되면 이런 모습이 될 겁니다.

A : 우리는 결국 서로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생각의 갭이 처음부터 너무 크네요.
B : 그러게요. 각자 자기 믿는 바대로 할 뿐이죠. A 님의 인생이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서로 도발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대화라 할지라도, 역시 뭔가 조금 허전합니다. 결국 이것은 서로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죠.

ㅇ < 아침에 우유한잔, 점심엔 패스트푸드 >
제가 바로 저렇게 삽니다. 아침에 우유..는 맛없어서 안먹고 똥커피 한잔이랑 맨빵 - 솔직히 토스트하기 귀찮습니다 - 먹고 출근해서 점심은 거르거나 또 샌드위치같은거 두개정도(에너지의 총량을 유지하기 위해 점심은 좀 많이 먹습니다) 먹고 일하죠. 저녁은 어쩌면 요리 좀 해서 먹을 수도 있고, 보통은 냉장고에 남은 음식중에 아무거나 하나 집어먹습니다.

근데 전 제 인생이 비참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음식'따위'는 제가 추구하고 있는 인생의 가치에 들어있질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해철씨의 노래대로라면 전 회색빛의 인간이고 무의미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과연 신해철씨가 맞을까요 제가 맞을까요. 통합된 가치관에 합의할 수 있는 사항일까요 아닐까요. 한명이 맞다면 다른 한명은 틀린 걸까요? 다양함을 존중한다면 서로 개무시하면서 살면 그만일까요? 다양함을 존중한다면 저런 도발적인 노래가사를 금지시켜야 할까요? 다양함을 존중한다면 저도 손해 안보게 '신해철 그 이뭐병' 이라고 말해야 할까요?

지하철에서 자주 볼 수 있는 30대의 모습 - 약간 후줄근한 양복을 입고 서류가방을 품에 안은채로 꾸벅꾸벅 졸고있는 - 이 과연 긍지도 영혼도 남아있지 않은채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비참한 돈벌레인지 아닌지. 과연 그것이 신해철씨의 표현처럼 '아무런 말없이 어디로 가는가. 다함께 있지만 외로운 사람들' 인지, 아니면 신해철씨가 오히려 '잘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삐대면서 코묻은 돈 빨아먹고 있는 free rider' 인지.

20대의 제가 일기장에 반 표절로 적어놓았던, '나만큼은 절대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나는 영혼의 높이에 있어서 인간보다 우월해야 한다' 라는 글귀가 보다 나의 본 모습에 가까운 것인지, 아니면 그 글귀를 보면서 피식 웃어넘기는 지금의 모습이 나의 본 모습에 가까운 것인지. 분명한 것은, 지금의 저 - 20대의 저를 가장 잘 기억하고 있는 - 라 할지라도, 20대의 저와 한자리에 앉아 지금의 제 생각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결국 10년의 나이 차이는 극복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화가 풀렸습니다. 일 해야 겠습니다. 에헤헤 역시 수다는 건강에 좋습니다.

출처 : http://pgr21.com/zboard4/view.php?id=ACE&no=543

by 태방 2007. 7. 1.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