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설레는 마음은 언제나 사람을 기분좋게 한다. 그 기분좋은 마음은 기분좋은 예감을 불러 일으킨다. 잠깐동안의 착각은 환상을 만들어 내고 그 환상은 불가능한 현실의 뭉게구름을 피워낸다. 생각 없이 망연하게 그 환상속에 담궈져 있을 때는 세상을 잠시 벗어난 기분이다. 현실만 내 눈앞에 놓여있지 않으면 하루종일 그러한 망상속에 잠겨서 눈을 감고 이불을 꼭 끌어안으며 뒹굴뒹굴 지내는 것이 최고의 하루를 보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머릿속에 이런저런 예상을 가득 담아놓고 하루를 살아간다. 그래도 매 예상을 뒤바꾸는 일들이 하루에도 수십번씩 일어난다. 현실은 나의 환상을 이리저리 흔들어놓는 딴지쟁이에 불과하다. 오로지 방안에 누워 멍하니 깊은 상상에 빠지는 것은 나에게 자유를 준다. 물론 현실과는 멀리 떨어진 자유다. 그런 자유는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그러한 상상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현실에서 여유를 찾기 위해선 그런 일탈정도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그렇지 않고서 어찌 이 팍팍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인가! 싸구려 쵸코머핀 같은 달콤한 팍팍함도 아니고 닭가슴살처럼 건강한 팍팍함도 아닌 밀가루를 한줌 집어먹은 듯한 무의미한 팍팍함들이 인생을 휘어잡고 있는 시기가 되면 이러한 성향은 더더욱 강해진다. 외람된 생각들은 나를 좀 더 이불속으로 밀어내 버리고 그 마음은 고이 접어 나빌곳도 없이 그렇게 내 맘속에 머물며 좌심방 우심실을 유유히 헤엄쳐다닌다.
과거속의 허상은 누구나 존재한다. 지나간 일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한순간 한순간을 철저히 분석하고 예리하게 계산해가며 살아가기에는 인간은 너무나 감상적이고 나 역시 너무나 감상적이다. 과거의 피곤하고 숨가뻤던 순간들 속에서, 애써 의미를 찾으려고 발악하는 것은 과거의 허상속에서 환상을 다시 찾으려는 발버둥이다. 미화된 과거를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 나약하기 때문일까? 그 과거를 영원히 부정하며 살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깨달음일까? 아님 의지박약일까?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다. 답이 나오질 않는다. 아니 답을 결정할 마음도 없다. 그저 그렇게 살아갈 뿐. 그렇게 그리하여 살아가다 보면 결국 내가 어떻게 살아가겠는지 알 수 있겠지. 그 미화된 과거를 내가 짐으로 짊어지고 가든, 족쇄처럼 영영 끌려다니든 그것은 나 자신의 모습이니까.
하루종일 멍하니 한 생각만 하고 지낸다. 아니 몇일이고 몇날밤이고 한 생각만 하고 지낸다. 허상, 과거의 허상, 작금의 상황이 나를 과거의 허상에 영원히 머무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한다. 과거의 허상, 나 스스로 그 허상을 이겨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도중에 마법같은 환상이 나에게 다시 도착하였다. '나란 인간은, 쯧쯧. 어쩔 수 없나보군.' 나에대한 불쌍한 동정심이 생기기가 무섭게 다시 나는 공포에 휩싸인다. 과거의 미화, 무모한 환상, 그렇게 나를 만들어 버린 나의 과거, 지금의 인생, 미래의 시간들. 모든것이 공포로 다가온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환상은 허상이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과거가 만들어낸 허상이 지금의 나의 모습을 억압하고 있다. 그것이 진실이라도, 결과는 언제나 허상이었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음에도, 나는 그 허상을 진실이라는 허울을 덮어 씌워 다시금 미화하고 있다. 충격과 공포. 나의 모습에 대한 충격, 다가올 미래에 대한 공포. 전혀 과정이 변하지 않았음은 전혀 변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것이라는 무한한 공포를 동반할 수 밖에 없음이다. 주어진 것은 홀로 남겨진 방안, 무의식적으로 써내려가는 키보드, 그리고 한 생각. 오로지 한 생각.
바보같은 짓을 해버렸다. 나는 현실을 인지한채로 실수를 해 버렸다. 의도적인 실수, 과거가 불러온 일종의 악령, 유혹. 그 유혹이 불러온 환상속의 실수. 나는 현실속에서 환상을 저질러 버린다. 나의 그 한마디. 이해해 줄 것이라는 그 한마디. 어김없이 환상이다. 남들이 현실속에서 나 자신을 이쁘게 치장하고 있는동안 난 단 한순간도 발전없이 변화없이 환상속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의도적인 실수. 그 누구도 원망할 수 없는 실수. 앞으로의 현실은 내가 겪어왔던 대로 되겠지. 하지만 아닐꺼야 라고 다시 만들어낸 환상. 그 속에서 만들어낸 희망. 희망이 만들어 낸 고통. 고통이 만들어내는 좌절. 좌절이 만들어내는 무기력함. 무한한 뫼비우스의 띠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 버린 지금의 나의 모습. 얼마 남지 않은 미래일지도 모르겠다. 모른다 나는 모른다. 내 미래가 어떠할지를 나는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을꺼고 알고 싶지도 않다... 라고 애써 도망가려고 애써보지만, 나의 생각을 남에게 모두 책임지워 버리면서까지 나는 이 현실을 회피하고도 싶겠지만, 환상이 깨져 버린다면 나는 어김없이 한번 더 심장을 풍선터트리듯 뻥 터트리며 죽음의 시간들을 한순간 한순간 피워 나가게 될 것이다.
환상을 헤엄치면서도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한 현실을 잊이 않으며 사는 나는, 너무나도 궁색하게 현실을 인정하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또한 환상을 헤엄치면서도 나밖에 보이지 않는 환상이라는 것을 의식한 나는, 전혀 멋있지도 않게 내 생각이 너무나 진심이라고 말하지 못해버렸다. 어설픈 환상, 미화된 과거가 나를 환상으로 불러 들였지만, 상처받은 과거는 나를 현실로 한걸음 움직이게 끌어내렸다. 결국 환상도 현실도 가지 못한채 어정쩡한 다리 위에서 어정쩡하게 그렇게 서 있기만 한다. 한심하고 부끄럽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마음이다. 마음은 먹고 있었지만 이정도로 갑갑한 모습일줄은 몰랐다. 아니겠지만, 아니겠지만을 그렇게 외치면서도 바보같은 나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 버리며 그렇게 되어달라고 조심스레 부탁하였다. 잠잠히, 곰곰히 기다릴 수 있게, 나를 위한 무의식의 방어선도 만들어 놓았다. 다행히 천사는 나의 이런 모습을 조금은 이해하고 있는 듯 하다. 희망은 주지 않았지만, 여유는 조심스레 내려놔 주었다. 이것도 결국 쿨한 척 하는 허무맹랑한 행동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유를 조금 찾아야만 한다. 주어진 현실들을 살아가며 환상이 아름다운 꿈이 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도망가버린 천사들은 이제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조급해 하지도 않기로 했다. 두려운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그래도, 환상이 주는 행복의 기차는 나를 인생의 미아로 만들어버리지 않을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그 믿음 한마디, 그 한마디를 가슴에 품고 가슴속의 애절함을 고이 모셔두며 조금은 쿨한척 하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낼 예정이다. 나의 천사는 아름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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