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한적한 일요일 오후
책을 한권 들고 공원 길가로 나간다
시민들은 제각기 공원에서 할일을 한다
공을 차는 꼬마, 자전거를 타는 학생, 모자를 눌러쓰고 트랙을 도는 아줌마
도서관 옆 공원에 앉아 차분히 나는 책을 편다
떨어지는 낙옆을 분위기 삼아 조금 불편한 가방을 책상 삼아
그렇게 멍하니 책을 읽고 지난다
책의 내용이 어슴프레 산만해져 갈 때쯤 책을 덮는다
그리고 최대한 사람들이 시끄럽지 않은, 하지만 움직임이 존재하는
그런 길을 찾아 조용히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보이는대로 들리는대로 느낌을 먹는다
다리는 피곤하지 않다 내 머리도 피곤하지 않다
눈이 깜빡이는것, 고개가 돌아가는것 말고는
그 어느것도 하지 않는다
그렇게 걸을 곳들을 몇시간이고 걷다보면
그래 이쯤이면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때 쯤이면
편안해진 몸과 마음을 이끌고 다시 미칠듯한 현실로 복귀한다
그렇게 멍하니 길을 걷는다
지난 1년 휴학을 하고
생각이 복잡해질때, 무기력하고 한숨만 나올때
종종 버스를 타고 공원을 나가기도 하고
서대문에서 간사 일을 할때는 시청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여의도에 갈일이 있으면 여의도 공원 주변을 걸어가기도 하고
금정역에 내려 나 어렸을적 살던 동네까지 걷기도 하고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걷기도 하고
학교 다닐때는 울타리 쳐있는 넒은 잔디밭을 지나치기도 하고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 생각없이 연못가를 바라보기도 하고
그렇게 멍하니 길을 걸으면서
남아있는 작은 한숨까지 길가에 모두 내던져 버리고
그렇게 몸과 마음을 가벼이 하며 집에 들어오곤 했다
잃는 거라곤 다리가 조금 피곤한것 뿐
그 많은 시간 완전히 새로운 나로 정화되고 나면
나는 다시 새로운 삶의 의욕을 만들어 낼 백지의 인간으로
다시 나를 재정비 하곤 한다
멍하니
생각없이
보이는 것을 느끼고
느끼는 것을 행하고
그 가치를 모르고 살아왔던 나날들이 있었다
잘해야 하고 성공해야 하고
그 모든것에 집중해서 노력해야 하고
그래서 성취해야 하고 이겨내야 하고
그러고 나면 행복의 꽃이 주어질 것이라는 망상
나 스스로 그대로 내버려 두는것도
충분히 가치있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왔던 나날들이 있었다
요즘
나의 가치를 되찾는 시기를 맞이하였다
멍하니 그렇게 내 인생을 걷고 있다
보이는 풍경에 시선을 던지고
들리는 소리에 신경을 맞기든
보이는 사람들에 관심을 던지고
들리는 목소리에 마음을 맞긴다
자연스럽게 너무나 자연스럽게
그냥 흘러가는대로 나를 맞기고 나니
그 흐름에 내가 존재하고 그 존재가 곧 흐름이 되었다
그렇게 흘러가는대로 조용히 나를 맞기고 나니
새로운 행복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인위적이지 않은, 하지만 진정 순수한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그러한 행복
그 행복이 눈앞에 보일 수 있다는 새로운 희망
그 희망의 흐름, 그것이 곧 내가 되는
이 강물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는 일이다
인위적이지 않은, 그래서 예측할 수 없는
그런 흐름속에서 멍하니 나는 같은 길을 걷는다
그래도 그러는 과정을 통해 나는 백지의 나를 얻는다
그리고 그 백지가 있어야할 자리를 한걸음씩 찾아간다
그 백지위에는 무엇이 쓰여질지 아무도 모르지만
나 스스로 그 백지위에 새로운 의욕을 채우듯
누군가가 남길 내 백지위의 흔적은 아름다운 그림만이 가득할것이라 믿는다
이제 남은것은 화룡점정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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