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포항 생각은 더 이상 안하려고 했는데
전자전기공학과 03 김태현
前 포항공과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2005학년도 편집장
어제 저녁 오랜만에 한 후배가 나에게 MSN 말을 걸어 왔다. 내가 몸담고 있던 교지편집위원회(이하 교편위)에서 작년까지 편집장을 맞고 있던 후배 녀석이었다. 교편위를 안한지는 몇 개월이나 지났지만 내가 전 편집장이었던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 친구 역시 교편위임은 변함이 없었다. 당연하게 우리는 자연스레 교편위 이야기를 이래저래 하게 되었다.
나에게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다. 총학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한다. 이번 호 교지의 발행처에 '교지편집위원회'에다가 '총학생회' 자신들의 이름을 덧붙여 달라고 한단다. 그래야 광고 대행사에서 광고를 따기가 좀 더 쉽다고 했단다.
난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게 과연 맞는 소리인가? 어느 학교에서도 총학이 관리하고 있는 교편위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발행처에 총학생회 이름을 넣을 수는 없었다.
사실 현실적으로도 총학생회는 교편위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고 있지 않으며, 교지 발간에 학생회비는 거짓말 안하고 단 한 푼도 안 들어간다. 한국외대의 경우 연간 운영비만 3천만원이 넘게 지원을 받지만, 우리는 운영비로 한 백만 원쯤 받으면 많이 받은 거라고 좋아한다. 우리에게 관심은 있는가 모르겠다. 아마 총학생회에서 교편위 편집장이 누가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꺼라 본다.
아마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아무 생각없이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했거나, 그들 머리에 교편위는 무시 받아 마땅한 단체라는 무의식속의 고정관념이 들어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 생각에는 후자가 거의 확실하지 않는가 싶다.
그동안 우리는 학생들에게, 또 자치단체들에게 열심히 무시 받아왔고 또 그렇게 12년을 보내왔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학교 학생 중 우리가 교지를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이 몇 퍼센트나 될까? 내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교편위 활동을 했다고 말하면 교편위가 뭔지 물어보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2004년 까지는 공식명칭이 '청년과학'이었기 때문에 교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았었다.
그런 교편위를 학생들에게 인식시키고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학생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나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력을 해왔다. 뭐 이제는 퇴물에 가까운 OB가 되었지만, 능력과 선택의 부족이었을 뿐 내 노력은 탓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안타깝지만 난 편집장 임기동안 좋지 못한 선택과 조금 부족한 리더십으로 학생들에게 여전히 무시 받는 교편위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자치단체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영 찬밥 신세이다. 학생들을 우선한다는 자치단체들이 자신들의 단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기 안달이다. 교편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몇주째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글을 미루고 미룬 것도 아니오, 3일 밤을 새가면서 편집 수정보고 아슬아슬 마감한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맹비난을 받으며 교편위의 무능함을 질책 받았던 것도 아니다. 나와 교편위에 함께 있는 많은 교편위원들의 노력과 만들어낸 성과물, 그 가치들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일이다.
자치단체들로 부터 우리의 결과물들이 매도당하고 무시당하고 이용당한 일은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 유명한 사건은 여학생회와 관련된 일이다. 내가 3학년 때, 3월에 전 편집장 형이 만드신 교지가 나왔다. 그때 난 편집장이었고, 또 내가 쓴 글도 그 교지에 실려 있었다. 교지가 배포된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었다. 나는 전자과 3학년들이 제일 힘들어 한다는 전자회로1의 1차 중간고사를 치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기분 좋게 방에 들어가고 있었다.
난데없이 내가 쓴 글이 앞뒤 잘려 난도질당한 채로 온 기숙사 정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뜬구름 같은 문장과 함께 볼펜과 A4에는 내 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실려 있었다. 그 종이 아래에는 여학생회라는 당당한 표식이 함께 있었다.
난 여학생회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내 글이 왜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높은 형식으로 앞뒤가 잘려서 편집되어있는지가 황당했다. 내가 편집장이긴 했지만 국어실력, 어휘능력, 문장능력 등 그 어느 것 하나 잘난 구석이 없었고, 내가 쓴 글이 나조차도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 못할 정도로 초보 수준의 에세이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로 오해살 수 있도록 편집되어버리니 내가 읽어도 글 쓴 놈이 나쁜 놈으로 보이는 글이 되어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여학생회장과 집행부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너무나 당당했다. 이런 글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런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글쓴이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짜증나기 그지없었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난 그들에게, '글쓴이의 동의 없이 남의 글을 무단 편집, 도용하여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용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교지는 저작권이 없다느니, 학생 모두의 글이라느니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댔고, 오히려 오해를 살만한 글을 쓴 나에게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난 정신이 혼란했다. 과연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로 잘못을 한 것인가?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난 충분히 설명할 생각이 있었고, 그게 문제라면 나에게 이야기 하고 오해를 풀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를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미안한 마음 하나 없이 당당했다. 결국 내가 글에 대한 해명문과 오해를 불러일으킨데 대한 대자보를 붙이고 일이 정리되었다
이것이 자치단체 속에서 교편위의 위치를 느끼게 된 가장 첫번째 사건중 하나이다.
두 번째 사건은 좀 더 황당했다. 소위 말하는 내부자의 소행이랄까? 그 때문에 조금 더 타격이 컸다.
2006학년도 20대 총학생회장을 맡은 학우는 3학년 초까지 나와 함께 교편위 활동을 해온 친구였다. 그러다 19대 총학생회 출범과 동시에 교편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총학생회와의 협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자신이 총학생회 편집부장으로 들어가 교편위의 활동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나는 뭐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또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총학에 아는 사람 하나 생기는 게 나쁜 것은 아니기에, 또 개인의 결정에 내가 간섭할 이유도 없기에, 그냥 좋다고 하고 형식상 그 친구는 교편위에서 총학생회로 이동했다.
그 당시 총학생회장과 그 친구는 우리에게 Union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하였다. 당시 자치단체 사이에서 교편위는 ‘실무가 없는 놀고먹는 단체다’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난 그 허물을 탈피하고자 Union의 발간에 ‘적극 도움을 주겠다’ 약속을 하였다.
난 처음에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교편위에서 주도를 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그래서 난 아예 우리가 전체적인 총괄을 다 할테니 그렇게 알라고 통보를 하고, Union을 만들 여력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솔직히 글 써본 것 이상의 활동을 안 해본 애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교지에서도 잘 하지않는 편집기술 확보에서 부터 기획, 편집, 발행, 배포에 이르기 까지 교편위를 중심으로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다른 다치단체들로 부터 우리가 일을 안 하는 단체는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고, 또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하는 대신 우리 이름을 걸고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책에 자부심과 당당함을 좀 더 담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진행하였다.
덕분에 교편위 후배들만 죽어났다. 밤샘작업은 필수였고, 학업은 뒷전인 경우도 허다했다. 이제화서는 내가 뭔 짓을 시켰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어쨌든 자치단체들의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기 위해,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쨌든 정말 열심히 했다.
덕분에 아주 성공적으로 Union 세권과 포카전 안내책자가 만들어 졌다. 나 또한 뿌듯했고, 위원들도 뿌듯해했다. 하지만 모두들 조금은 아쉬워했다. 우리가 책 만드느냐고 언론의 역할을 많이 못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기대가 있었다. 우리가 자치단체로 인정을 받고 다른 단체들처럼 함께 협력관계에 들어가면 우리가 언론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믿음과 기대는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 시작은 총학생회 선거 때이다. 20대 총학생회선거 1번 선본이 앞에서 언급했던 교편위 출신의 총학생회 편집부장이었다. 나 역시 이런저런 이유와 뜻을 품고 2번 선본으로 나섰기 때문에 상대 선본이 연설을 할때 듣고 있었다. 1번 선본의 찬조 연설자가 나와 1번 선본 총학생회장 후보를 찬조하고 있을때 였다.
난 분명이 들었다. 총학생회장 후보의 여러 업적을 말하는 도중에 분명 Union 발간이 들어있었다. 게다가 마치 자신이 전부 만든 것과 같은 뉘앙스의 문장이었다. 나와 함께 있던 몇몇의 교편위 위원들은 정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비록 그들이 제안하기는 했지만 Union의 발간에 있어서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 그가, 나와 교편위 후배들이 1년간 힘들게 굴러가며 만든 그 책의 발간을 자신이 주도했고 많은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난 당장에 선거 토론회 때 이 점을 추궁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자신이 만든게 맞다'였다. 나는 기획, 편집, 발행, 배포까지 교편위가 다 했는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답변은 '아이디어가 중요한 거 아니냐?'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이었다. 같이 2년간 한솥밥 먹고, 더구나 1년간 우리가 고생한 거 눈으로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뻔뻔한 답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난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업적을 올리기 위해 교편위라는 단체를 그렇게도 철저하게 무시한 모습을 봤을때 난 분노와 함께 두번째 자괴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교편위를 위원회에서 자치단체로 인정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학기 초에 학생운영위원회에서 분명 우리가 너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자치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1년간 일 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자치단체로서의 역할, 언론으로서의 본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를 총학 산하의 위원회가 아닌 독립적인 자치단체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할 참이었다.
내가 편집장으로 있는 마지막 운영위원회인 2005년 12월 운영위원회, 우리에게는 의결권도 없었고 오직 발언권만 있었다. 나는 교편위의 자치단체로의 승격과 관련한 학생회칙 개정을 발의하였고 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의 내용은 어이없고 중구난방이기 짝이 없었다. Union 몇 권 만든 게 일이냐는 둥, 학생들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둥, 너네는 총학 산하 아니냐는 둥, 다 듣고 보면 우리보다 너희가 못한 게 많다는 이유였다. 학생을 대표할 수 있는 언론을 자치단체로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도의 승격 논의였는데, 서로간의 공적 다툼만 하고, 본질은 없었다.
그동안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일도 열심히 했고, 당시 회의 때 언론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까지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 뒤 다시 와라'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내리고 승격을 거부하였다.
우리는 또 한 번 찬물을 먹었다.
그들이 게으름을 비판하여 본질까지 접어가며 노력했건만, 노력은 완전히 무시하고 다시 본질을 찾아오라는 똥개훈련식의 찬밥대우밖에 받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자치단체로 승격되지 못하여 지금 또 총학생회로 부터 교지 발행처 문제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받고 있다.
교편위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 단체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 단체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할 말도 많고 의견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다들 우리 단체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가? 진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까놓고 교지를 열심히 읽어보기는 하는가?
등록금 문제, 교수임면권 문제, 교수부당해임문제등 일련의 학교의 사태들에 대해 학생들이 전혀 발언권을 표할 수 없게 된 데에는 과연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가? 총학생회는 뭐했으며, 학과협은 뭐했으며, 동연, 기자회, 여학은 도대체 무얼 한 건가? 그들이 움츠리고 할일을 저버리며 학생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있을 때, 우리는 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관심도 없어 실망조차도 안겨 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자 다른 자치단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일도 마다않고 했으며, 우리가 자치단체로 인정받고 학생들에게 당당히 보일 수 있는 교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학생들로 부터의 무관심은 둘째 치고 자치단체들에게서 조차 무시도 이런 개무시를 당하고 보니, 지금 우리가 뭔 짓을 하는가 싶기도 하다.
이럴꺼면 차라리 해체를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언론이고, 학생들의 입과 머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펜을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제 갈길 못가고, 학생들의 기대해 부합하지 못한다면 욕을 먹어도 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역할을 할 위치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며, 그럴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 스스로 열심히 하고 노력하겠다. 그때 못한다면 크게 꾸짖고 질책을 하여도 좋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예전에 K교수사건 관련하여 성명서를 썼을때, 한 학생이 너희가 뭔데 학생을 대표하냐냐는 말을 들었다. 5.18 관련 기념부스를 만들었을 때도 그 부스가 어디에서 설치한 것인지 조차 학생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좋은 의도로 좋은 역할을 하려고 해도 학생들로부터 전혀 관심을 못 받는다. 우리는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11호 교지를 내고 학우 3분이 우리 홈페이지를 친히 찾아와 격려의 글을 남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글을 너무나도 뜻 깊게 읽었다는 그 사람들의 글을 보고, 그때 정말 학생언론으로서의 크나큰 기쁨과 뿌듯함과 함께 우리가 아직 가능성은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교편위는 언론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있고 자질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 후배들이 잘해줄 거라 믿는다. 우리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며 학생들의 복지와 안녕에 힘쓰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편위에 대한 인식, 관심, 대우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본다.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욕좀 먹어봤으면 좋겠다.
4학년때 교편위를 나간 이후로, 우리 학교 자치단체의 미래는 없다고 자위하며 나 스스로 학교와 멀어지기 위해 바깥에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많이 했다. 다시는 포항생각 안한다고 다짐하고 집에 올라와서 지내고 있었는데, 뜬금없는 후배 한마디 때문에 교편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이렇게 장문을 남기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
애정인지 애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교편위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자치단체의 무능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자치단체들에서도 이를 이겨낼 만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교편위에서나마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 편집장으로서 아주 작게나마 가지고 있다. 나는 교편위가 제 위치에만 설 수 있다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분명히 믿는다.
작은 희망이지만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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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본 장문이네
교지에 실어달라고 후배들에게 보낸 글이다
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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