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두려움이 갈수록 거대해 지고 있다. 오랫만의 기분. 아무것도 옥죄어 오지도 않고 아무것도 압박해 오지 않지만 스스로 움츠러 들며 추워지는 겨울의 찬바람에 나는 자꾸만 몸을 숨긴다. 이제는 과거로 버려도 될 환상을 나는 끝까지 놓지 않고 바들바들 떨며 발끝에 매달아 둔다. 지고 가기도 어려운 이 짐을 왜 나는 놓지 못하는가. 아니 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지지가 않는다. 이런 내가 나 스스로도 싫지만 어쩔 수 없는 걸. 온몸을 감싸고 있던 거머리 같은 이 짐을 이제서야 겨우 다 떼어 낸 줄 알았는데 한발 딛으려고 보니 아직 내 발아래 마지막 한줌의 돌덩이가 남아있다.
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허물을 하나씩 하나씩 벗어내도 본질을 흔들지 못한다. 그 본질이 벗겨질때까지 스스로를 포장도 하고 깎아내기도 하며 버텨보지만, 과연 이 얼룩이 언제쯤 지워질가에 대한 의문은 지금의 공포감을 근본적으로 불러오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아, 어쩌다 이러한 순간까지 오게 되었을까. 나만 모르고 있던 내 주변의 변화들이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내 눈에는 온통 슬픈 일들 뿐이다. 행복해야 하고 즐거워야 하고 그래야만 나는 이 땅에 설 수 있었건만, 결국 쓸데없는 자잘한 것들때문에 나는 하염없이 무너진다. 지금의 이 상황, 또 나는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담배피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럽다. 아니 담배 한개피로 근심을 잊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럽다. 담배가 아니더라도 무엇이든 그 근심을 잊어버릴 수 있는 간단명료한 뇌의 의식구조를 가진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미친듯이 복잡하고 기괴한 사고력을 가진 관계로 이런 위기때마다 스스로의 속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그래도 제법 의젓해진 스물넷의 허세는 그나마 나를 자연스럽게 세상속을 걸어다니게 한다. 비틀거리며 술잔에 나를 밀어넣던 예전의 시기에 비교하면, 전화기를 붙잡고 창문으로 뛰어내리지 못할 용기를 하찮은 속삭거림에 던져버리는 시기에 비교하면, 꾹참고 이불로 들어가 다음날이 되어 새로운 기분이 되기를 기다리는 나의 의젓함은 나도 철이 들었구나라는 착각을 들게 한다. 슬슬 퇴화되어가는 기억력덕택에 인생의 모든 물음들을 다 기억해내지는 못하지만, 덕분에 나는 했던 질문을 쳇바퀴처럼 계속 반복하면서 모든 발전가능성을 죽여버리고 재미없는 인생의 터널에 진입하는데 성공하였다. 망할, 내 청춘의 고민이 이렇게 결말지어질꺼 였다면 그렇게 비참하게 살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남은 나의 존재가 이러하다면, 만약 내 인생의 말로가 이렇게 이어진다면, 만족하지도 못할 인생을 기억하면서 죽어가야 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지금의 나의 모습, 그리고 미래의 나의 모습.
모든 불안감은 기다림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문제도 아무렇지 않게 종료될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극도의 공포이다. 기다림이후의 결론은 지금가지 두가지 경우의 수만이 있었다. 기다림에 지치거나 기다림이 무의미해지거나. 그 둘다 결국 나를 허비하고 남는것 없이 허송세월이 되어 버린다. 기다리는 것을 잃던가 혹은 나를 잃던가 하는 식으로 결국 무언가를 잃게 되며, 그 박탈감에 또 하염없는 세월을 잃게 될 것이다. 그래도 발전을 상상하면 기분이라도 좋았는데 이제는 무식한 기억력 덕택에 이러한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놈의 비열한 인생이여.
연말은 언제나 특별했다. 1년간의 나를 돌아보고 새로운 1년을 기대했다. 하지만 지금은 걱정만이 남았다. 몇가지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마치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과 평화통일가정당의 후보중 누굴 찍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만큼이나 쓸데없는 선택지만 남아있다. 일상도 나에게 평범함을 강요한다. 나는 점점 작아지고, 주변은 나를 점점 멀리한다. 소중한것들을 잡으려고 하면 점점 멀어진다. 그 어느것도 가까이 하지 말고 혼자 남으라고 세상은 강요한다. 재미도 없다. 감동도 없다. 쓸데없는 포장과 허영만 가득하다. 기쁜척은 해줄 수 있지만 결국 기쁘진 않다. 진심이 아닌게 눈에 보일때마다 헛웃음만 나온다. 이 허무함의 공간, 그 속에서 나는 소일거리를 찾기 위해 쓸데없이 분주해진다.
그래. 춤을 추자는 결론. 이 결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 이순간 살아남으려면 춤을 춰야 한다. 그 속에서 행복을 찾는 수 밖에 없다. 재즈의 선율은 심장박동을 키운다. 젤리와 같은 커넥션은 오르가즘을 불러 일으킨다.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바보같은 이 공간에서 춤을 추는것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다. 혹자는 이를 열정이라 하겠지. 혹자는 이를 춤바람이라 하겠지. 하지만 난 살기위해 춤을 추고 춤을 추기에 살아간다. 거창하게 의미라도 부여하자. 그래야 공포감을 잊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아무도 모르게 나만 알수 있도록 연결을 이어가면 그것만으로 조금 위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올 때 까지 조금만 나를 위해 시간을 투자하자. 이 시간이 끝나면 난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을 테니. 그것이 잠시 나를 덮어둔 포장이라 할 지라도.
RECENT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