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한국대 멕시코전, 상사의 눈치를 피해가면서 동영상 중계니 문자중계니 열심히 봤다. 한국의 8:2 승리, 승리만큼 값졌던건 이놈의 타선이 오랫만에 시원시원하게 타격쇼를 보여주었다는거다. 동영상중계방을 겨우 구해 틀자마자 나온 고영민의 동점홈런은 나의 기분을 아찔하게 만든다. 응원하고 있는 팀이 이길 수 있다는 동점홈런, 그 짜릿함이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야구는 인생과 같다는 구태한 명언을 차용하기에는 너무 내가 어리지만서도;; 홈런같은 일들이 우리 인생에서 몇번씩 일어난다는 것은 뭐 경험상 대부분 알고 있는거 아닐까? 난 경시대회에서 금상을 탔을때도 홈런을 친 기분이었고, 대학교 합격자 발표가 났을때도 홈런을 친 기분이었고, 어릴때 나간 달리기대회에서 경품에 당첨되었을때도 홈런을 친 기분이었다. 그 홈런이 경기에 어떤 결과를 주었건 말았건 어쨌건 간에 그 순간은 짜릿할 수 밖에, 환호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홈런이 값진 이유를 야구와 비교해서 보면 더 재미있는듯 하다. 발이 빠른 주자들은 1루에 나갈때마다 도루를 할꺼라는 기대감이 있다. 하지만 그 확률때문인지 에이스 투수가 나와서 연패를 끊어줄 것이라는 기대감 보다는 도루의 기대감은 덜하다. 하지만 홈런타자가 홈런을 칠 확률은 심정적으로 그보다 더 낮다. 홈런이라는거는 한경기에 한개 보기도 힘들뿐 더러, 홈런 타자가 나와서 그 홈런을 반드시 쳐 줄것이라는 확신을 갖는것도 힘들다. 당신은 도루왕, 다승왕, 홈런왕 셋이 한경기에 나왔을때 도루왕이 도루를 하는것, 다승왕이 승리를 하는것, 홈런왕이 홈런을 치는것중 하나에 걸어야 한다면 어디에 걸겠는가? 그만큼 홈런은 그 확률이 기대할 수 있을만큼 높은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홈런이라는것에 대한 짜릿함은 강할 수 밖에 없으며, 그것을 기대할때의 설레임 역시 대단할 수 밖에 없다. 역전주자 앞에서 4번타자가 배트를 들고 있는것 만큼 간절한 순간이 야구에 있을까? 그만큼 홈런의 기대감은 이루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이 있다.

인생에서도 홈런은 그런 맛이 있다. 단순히 학교 중간고사에서 점수를 잘맞는것, 반에서 1등을 하는것 이런 것은 인생의 홈런이란 느낌이 안든다. 정말 될 수 있을까 긴가민가한 기대감이 홈런처럼 팡 터져오르는 순간, 그런 극적인 삶의 순간들은 분명 존재한다. 당신은 뮤지컬 배우이다. 5년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단역만 맡아오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초연하는 뮤지컬의 주인공 공개 오디션에 무턱대고 지원했다. 경쟁율이 50:1이 넘어가는 상황에서 온 힘을 다해 당신의 연기를 선보이고 집에 돌아와 쉬고 있는데 기획사에서 전화가 오고 당신이 선발되었다는 말을 듣는다면? 그래 이번엔 당신이 장미꽃을 들고 있다. 당신은 한 여자를 2년이 넘게 짝사랑을 해왔다. 그녀 역시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지만, 당신은 수줍어서 말도 못하고 있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녀의 집앞에 찾아가 눈을 지긋이 감고 준비해온 멘트대로 당신의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무말도 못하고 두근대어 터질거 같은 가슴앞에 놓여있는 장미꽃이 서서히 당신 손을 떠나는 것을 보게 된다면, 그리고 그녀가 방긋한 미소를 짓게 된다면? 분명 인생에는 이러한 순간들이 있다. 그 홈런이 당신의 인생을 승리로 이끌지, 아님 의미없는 뜬금포가 될지는 나중의 일이지만 이러한 순간들은 분명 우리 삶에 존재한다. 또한 그 기쁨과 환희 역시 홈런의 짜릿한 만큼이나 환상적이라는 것을 분명 알고 있다.

홈런 타자들이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들을할까?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홈런을 친 사람들을 보면 마냥 부럽다고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요행수에, 그 운에, 그 환경에 부러움의 눈길을 던진다. 될놈은 원래 되, 좋겠다 부럽다, 난 뭐지? 하지만 홈런의 진정한 맛은 그 전에 준비된 수많은 노력과 연습에 있다. 타자는 단 한번의 안타를 치기 위해 1000번의 스윙을 한다는 말이 있다. 겉으로는 편하게 힘들이지 않고 치는 홈런같아 보여도 그 홈런을 치기 위해 스윙 감각을 유지하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타격폼을 수정하는데 몇시간이고 몇일이고 몇시즌이고 고생을 한다는 것이다. 인생의 홈런도 그런 맛이 있다. 로또를 맞는것은 정말 요행이지만, 기본기가 없었다면 뮤지컬 오디션을 통과할 수 있었을가? 그 남자의 노력이 없었다면 여자가 그의 마음을 받아주었을까? 홈런이라는 것은 분명이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고, 그 노력이 타자 자신과 관객 모두에게 짜릿함을 선사해 주는 근본이라는 것이다.

또한 홈런을 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풀스윙을 해야한다. 짧게 잡고 치는 단타위주의 타자들은 출루율은 높겠지만 항상 홈을 밞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홈런을 치려면, 반드시 홈을 밟기 위해선 반드시 있는 힘껏 다해 풀 스윙을 해야만 한다. 인생의 홈런도 마찬가지이다. 여러 노력의 조각들을 이용하면 안타는 칠 수 있겠지만 반드시 홈을 밟을 성공에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안타같은 일들이 우리 일상에 훨씬 많이 일어나는것은 당연하고, 홈런타자들도 자신의 홈런보다 훨씬 많은 안타를 때려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이 승부처라면, 지금 쳐야 당신이 승리할 수 있다면, 그 순간에는 반드시 풀스윙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지막 역전주자가 나가있다면, 이 게임을 정말 이기고 싶다면,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다면 칠 수 있을때 까지 당신의 노력을 모두 들여 풀스윙을 해야 후회없이 타석에서 물러서던, 관객들의 환호성 앞에서 홈을 밟고 들어오던 할 수 있는 것이다.

로또가 되기를 원한다면 한번 기대해 보자! 하지만 그건 10:0으로 지고 있던 경기가 4회에 강우콜드 되길 바라는것 보다 어리석은 짓이다. 홈런을 칠 생각을 하는게 100번이고 낫다. 로또는 되면 100% 멍때리겠지만 홈런은 치는 순간,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 아 이건 넘어간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날아갈듯한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또 인생의 승리까지 만들어줄 수 있다. 해볼만한 승부에서는 홈런 한방 쳐보자 하는 마음으로 지낸다면 인생 9회말이 되었을때에 덕아웃에 앉아 좀 더 흐뭇한 감독의 미소를 우리도 지을 수 있지 않을까?
by 태방 2009. 3. 17. 0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