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국사시간에 잠깐 들어본 단어일것이다. '화전'
빈 땅에 불을 질러 재를 만들고 그 재를 거름삼아 농사를 짓는 농법
가장 원시적인 농법으로서 몇번 농사를 지으면 땅에 양분이 남지않아 황무지가 되어
다른곳으로 옮겨가면서 농사를 짓는다
가난하던 일제강점기 시절, 일제에 땅을 수탈당하고 가진것없이 여기저기 전전하며
화전으로 생계를 연명하던 서민들이 많았다
가진것 하나도 없이 산골짜기 깊은곳에 숨어 들어가 임자없는 땅 먼저 차지하여 선을 긋고
그곳이 내땅인냥 불을 질러 나온 재를 쥐어짜듯 거름삼아
씨뿌리고 목구멍에 풀칠할 밥한풀 얻어내면 그것이 1년농사였다
그마저도 없으면 나무 뿌리 캐어먹고 산나물 캐어먹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며 일제의 수탈을 피해 도망다녔을 것이다
현대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밤중에도 대낮처럼 불을 키는 세상이지만
밥통만 열면 기름진 쌀밥을 퍼먹을 수 있는 세상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새는 화전민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초중고 학창시절 한창 여기저기 뛰놀며 풍부한 감성을 얻어야 할 시기에
네모칸 작은 책상에 구겨앉아 흰것과 검은것이 번갈아있는 문제집만 수두룩하게 후벼판다
그래도 예전엔 고등학교때만 했지, 이제는 초등학교, 아니 입학전부터란다
조기교육에 입시준비라며 아직 김치도 제대로 집어먹지 못하는 애한테 과외선생님을 붙여준다
무럭무럭 자라나야할 땅에 온전한 거름을 주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활활 불타오른다
마른 풀위에 활활 타오르는 화전처럼 우리의 젊은 시절은 그렇게 아무 기초없이 그저 활활 타오른다
자식의 체력은 공부에 쏟고 부모의 체력은 등록금에 쏟아 대학에 들어갔다
들어가서도 여전히 거름은 없다
지성의 요람은 어디가고 취업의 학원만 남아있다
면죄의 자유가 주어지는 4년의 시간동안 혈기왕성한 20대는 자유를 쓰는것보다 자유를 억압하는것부터 배운다
젋음의 향기를 지워가며 도서관에서 토익책을 들여다보며 보내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누가 더 많은 땅을 불태우느냐 싸움이다 어짜피 올해 한해 입에 풀칠하는게 우리의 목표이다
내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옆사람의 영역을 빼앗는다. 먼저 자리잡은 사람이 화전의 임자이다.
내 스펙이 더 높으면 옆사람을 이길 수 있다. 그래서 더 좋은 직장을 차지해야 한다.
이땅이 좋으면 이땅이 좋다고 우루루 몰려간다 저땅이 좋으면 저땅이 좋다고 우루루 몰려간다.
그렇게 치열하게 물어 뜯는 전쟁을 계속한다
그렇게 노력하여 드디어 직장을 얻었다. 양분이 충만한 화전이다.
하지만 이땅의 양분은 한번 농사 지으면 모두 사라진다. 비정규직이다.
거름을 주지않은 땅에서 자란 곡식은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라도 있어야 풀칠을 한다.
내가 얻을 곡식을 다 얻고나면 이 땅은 나의 땅이 아니다.
젋은 시절을 다 바쳐 얻어낸 소량의 곡식만 남고 나에게 가진것은 하나도 없다.
집한채, 차한대 뽑기는 고사하고 작은 가정하나 꾸릴 여유조차 없다.
꿈? 미래? 상상도하기 힘든 단어들이다. 이미 나의 화전은 지력을 상실하였다.
옆땅으로 넘어가기 전에 연명해야 한다. 알바를 뛰며 나무뿌리를 캐어먹는다.
그렇게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고 얻은 것은 또다른 화전이다. 다시 반복이다.
그렇게 계속 태우고 계속 곡식을 얻으며 인생의 시간을 소비해 간다.
저 산 아래 넓은 평야 옆에 친일파 지주의 아들은
방금 한 따끈한 햅쌀밥에 떡갈비 한점 얹어 맛있는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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