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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 | (Board) | ScratchPad |
글쓴이 | (From) | yoyofly (써니) |
날짜/시간 | (Date) | 2007년 2월 28일 17시 20분 54초 |
제 목 | (Title) | 어제 중앙일보 기사의 후배와 24시간을 함께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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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안쓰러워 이렇게 글을 씁니다.
며칠전 중앙일보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포항공대 수석입학에 수석졸업
서울대 의대에 편입한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서울대 의대, 법대, 경희대 한의대를 입학한 사람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고 매년 졸업시즌에 각 학교 수석 졸업자들을 인터뷰 하
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기사도 그런 종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터뷰에
응했겠죠..
한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처음부터 계속~ 고등학교때 이야기, 대학교
때 이야기,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 또한 의학도로서의 비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졸업식 약력소개에 나올만한 예상했던 질문들이 이어졌다고 합
니다. 그리고는 공식 인터뷰가 끝나 갈때 쯤, 기자가, 요즘 이공계 위기다 뭐다
말이 많은데, 우리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볼까요?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학우는 '그런 주제로는 제가 함부로 이야기 할 위치에 있지 않고, 또 학교와
학교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누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랬더니 기자가 아~ 이건 전혀 기사화 되지 않을거라고
말하며 자신이 아는 사람도 그 쪽에 있어서 그쪽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좀 듣고
싶어서 그런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말하면서 몇번이나 이 말들은 기사화 시켜
서는 안된다고 확인하면서 말했고 서로 인터뷰가 아니라 여담으로 친구처럼 이
야기 했다고하더라구요. 기사에 실린 일문일답은 그 때 나온 이야기일 것입니
다. 아다르고 어다른 우리 말에 기자의 선정적인 단어 선택과 글짓기로 아주 자
극적인 글하나가 완성된것이죠.
저는 사실 중앙일보 1면에 자기 기사가 실린다고 저한테만 자랑하는 그 아이를
보면서 대학 수석 졸업자의 수기가 1면에 실릴만한 이야기인가 생각되어 시사
적인 이야기를 끄집어 내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고, 그 말을 했지만 그 아이는
그런거 아니라며 그 쪽 이야기를 좀 하긴 했는데 기사에 쓰지는 않기로 했다면
서 그냥 지금까지의 수석 졸업자 기사같은 거라고 전혀 의심없이 말했습니다.
저는 신문이 나오는 날 아침에 그 아이의 울먹이는 전화 통화 소리에 잠을 깼습
니다. 전후 내용은 몰랐지만.. "그런 나쁜 아저씨가 어디있어." 이 소리만 반
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깨서 눈이 빨개진 채로 기사
를 보고 있는 그 동생을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저도 그 기사를 보고 가슴이 내려
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기가막힌 제목에 따가울 정도로 자극적인 문장...
교묘한 기사더군요. 분명 아이가 그런 뉘앙스의 말을 기자가 말한 '여담' 타임에
하긴했겠지만, 그 말이 저렇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놀라울 지경이었습니다.
중학교때 과학 선생님이 멋져보여서 과학경시를 했고, 과학고를 입학하고, 화학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우리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이 아이는 저
처럼 혹은 저 이상으로 자신의 택한 과학의 길에 확신과 자긍심이 있었을 것입
니다. 그러다가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르지만 2~3학년 때 부터 이 길에 실망하
기도 하고 진짜 자기 적성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많이 방황했다고 하네요. 그 동
안 선배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공계가 고쳐야 할 점들
을 듣기도 했겠죠. 기자가 학생이 생각하는 이공계 위기의 원인에 대해 물었
을때, 그 때 들었던 이야기나, 방황하던 시기에 자신이 생각하던 이야기가 나
왔을 것입니다. 기사에 실려있던 글들은 사실은 제가 생각했던 이공계의 문제
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깜짝놀랐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KBS, MBC 각종 신문사, 악플들에 시달리는 후배를 보며 드는
생각은.. 만약 저 아이가 이공계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때
문에 저렇게 공격을 받는거라면, 저건 나, 그리고 저와 이야기를 나눴던 수
많은 제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대신해서 혼자 맞는거구나.. 였습니다.
만약 문제 의식의 내용이 그닥 틀린 것이 아니라면 기자의 흑심을 전혀 의심
하지 않았던, 좀 더 경험이 풍부하지 못했던 잘못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잘못이라면, 그 벌은.. 너무.. 너무너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기자한테 전화했더니 기자는 자기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는데 부장이
여담부분만 강조해서 기사를 쓰라 했다고 책임회피하고, 어렵게 부장하고 연결
해서 따졌더니, 한 번은 터져야할 사회 문제고, 학생이 적당한 상징이 될 것 같
아 기사로 냈다고 했다더군요. 결국은 자신들이 하고 싶던 얘기였는데 학생이
관심을 유발하기 적당한 상징물이라 그 후배는 '상징물'로 쓰이고 자신들이 쓰
고 싶었던 글을 쓴거죠.
오후에 왔던 KBS 직원과의 통화에서, '중앙일보 기사가 잘못 된 것이라면 뉴스
에서 육성으로 해명하는게 낫지 않겠느냐?' 라는 제안에 불에 덴 듯, 너무 상
처를 많이 받아서 이제 더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웅크리는 그 아이
를 보며.. 저도 함께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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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OSB
사실 나였으면 저런 인터뷰 하고도 남았겠다 싶어서
그냥 그려려니 하고 있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학교 나온 사람중에 저렇게 당당한 어체로
이공계 기피문제를 적나라하게 인터뷰 할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영은이가 학교 문제에 대해 저렇게 심각하게 신문기사에 보도될 내용을
인터뷰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는데
역시저러한 이유가 있었구나
저런저런
중앙일보 이색히들은 진짜 용서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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