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theonion.egloos.com/

여기 좀 짱인듯 ㅋㅋ
공돌이 마인드 충만한 블로그

리뷰는 천천히
by 태방 2008. 8. 7. 01:19
일을 조직화하고 계층화하고 서로의 일을 나누는 일은 왜 생겼는가
에 대한 고민을 문득 한적이 있다
공동체 생활을 어지간히 이곳저곳에서 하면서
또 수많은 조직을 만들고 없어지고 흥하고 망하는 꼴을 보면서
우리는 왜 조직을 계층화하고, 분업을 구조화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을 문득 하게 되었다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여 남들보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으며
수많은 조직원을 동원하고, 모집하여 힘빨로 밀어 붙이는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한명의 카리스마있는 리더십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원하는 일을 깔끔하게 수행해 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중에 최고 으뜸을
자발적인 구성원을 통해 무조건 앞으로만 나갈 수 밖에 없는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직의 방향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가장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그 파악한 방향을 능동적이고 발전적으로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으려면
아는 사람이 직접 발로 뛰면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봐야 한다
어짜피 하나의 조직이 여러 환경에 부딫치면서 생기는 시행착오는
어느조직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하지만 위의 여러가지 과정(분업이니 동원이니 카리스마니)하는 방법에서는
그 경험을 조직의 구성원들이 습득하지 못하고 발전에 방해요소로만 작용하지만
능동적인 구성원들이 조직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하게 되면
그 모든 성공과 실패의 과정들이 조직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조직의 성공으로 이끄는데 최고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치자
동아리를 만들자마자 하는일이 분업이라면
그 동아리는 할게 없다. 왜? 일도 없는데 일을 나눴으니 말이다
아무리 할일이 정해지더라도 일단 나누고 나면 관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리자는 일을 다방면으로 두루두루 한 사람이
긴안목과 큰 시야를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조직이라는게 그렇게해서 쉽게 돌아가지가 않는다는것이 현실이요
이사회가 그렇게 분업화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복잡한 일들이 많은것이 현실이다
갓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을 데려다 뭔 부장이나 뭔 차장이니 맡겨놓고
대학 갓 2~3년 다닌 선배들이 이거 주문하고 저거 주문하고 하는 식은
아무리 잘해봐야 전년도 선배들이 한거 답습하는 수준 이상을 못벗어 나는것이 대부분이다

조직동원은 뭐 말할것도 없이 일회성 성공 이상은 거둘수 없는 구성이고
카리스마적 리더십도 사실상 리더의 능력에 의존할 뿐 발전성은 전혀 없는 조직의 체계이다

하지만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조직된 단체는 상황이 다르다
활발한 의견개진과 충돌, 그 속에서 생산적인 결론(이게 젤로 중요)이 나오게 되면
그 결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구성원들이 움직이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기일이라고 생각하며 덤비면서, 자연스래 개선안과 아이디어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왜? 능동적이면 생각이 많아지고 많은 생각이 모이면 당연히 좋은 생각이 나오기 마련이다
즉 자기일이라고 마음먹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어떤 일이 담당인지, 어떤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고
생각과 경험을 모아모아 가면서 그 조직을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난 분업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특히나 큰 조직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상적 분업이 아닌 조직적 분업은, 자신의 일의 영역을 한정시켜 놓는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요리할때 나눠서 하는 분업을 생각하면 안된다
회사에서 기획은 기획만, 영업은 영업만, 홍보는 홍보만 하는 식의 분업을 의미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남의 일은 남의일이고 나의 일은 나의 일일 뿐이다
남일에 내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남일이니 거들떠도 안볼 것이고,
남일에 내가 좋은 경험이 있어도 남일이니 전혀 줄 마음도 없을 것이다(아니 받을 마음도 없다 애초에)
보통 조직들이 그렇게 돌아간다
일이 하나 있으면 "그건 어디서 하는 일이잖아요"를 너무나 쉽게 외치는 조직은
사실상 큰 발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정량의 체계화는 필요하지만
결국 자기일이 아니라고 넘겨버리는 식의 조직은 능동성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분업이 생긴 이유가 그게 아닐까?
난 이일 하기 귀찮으니 이일 할사람 따로 두자
난 나한테 쉬운 이거만 할꺼니까 어려운거는 남 주자
그런 마인드로 생긴 것이 바로 분업이 아닐까 한다
(라는 생각 진짜 많이많이 드는 요즘이다)

능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논의로 하는것은 둘째로 하더라도
일단 그 능동성을 조직에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조직을 만드는데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라고 경영학의 ㄱ도 모르는 공돌이가 글을 남긴다 -ㅇ-)

아 경영학 왠지 배워보고 싶은 학문이다.
by 태방 2008. 8. 5. 01:03
삶의 굴곡이 많은 사람들이나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양한 사람들은
강한 정신력과 대범한 자신감
그리고 넓은 포용력을 삶의 무기로 얻게 된다

시련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라는
궂이 너무나도 뻔한 명언을 꺼내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주어진 나쁜 경험들은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곧 좋은 경험으로 승화되게 된다

훌륭한 인간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성공한 인간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좀 무서운 말이지만
고생끝에 낙이온다라는 말은 좀 즐겁지 않은가?
낙을 얻기위해서는 우리는 고생을 반드시 필연조건으로 가져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져보는 인생의 대표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에 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거니만은
그 행복이 고생끝에 올 수 있다는 명제를 누가 당당히 내밀 수 있겠는가
고생은 힘들다, 고생을 달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행복의 마음을 느껴본 사람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고생이 고생을 낳기도 하는 마당에, 나약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세계에 얼마나 싸워서 이겨낼 지도 의문이다
고생끝에 낙이 올것을 기다리기에는 우리 인생은 그닥 길지도 않으며
사회가 보장해주는 청춘은 더더욱이나 짧디 짧기만 하다

젋은 시기에 겪는 고생들은 대부분 상상할 수 없는 고생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시기에 겪는 고생을 미리 알고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 않은가
청춘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들로 항상 목놓아 울고 있으며
그 울음뒤에는 언제나.. 는 절대 아니고, 역시 좀 센스가 있다 싶은 사람들만
아니면 작은것도 깊게 생각하고, 아니면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니면 모든일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멘탈이 아주 강한 사람들에게
그 고생의 경험은 깨달음으로 다가오게 한다

훌륭한 선자, 선인들이 왜 그렇게 되었겠는가
인간이 공부로 알 수 있는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터
깊고 깊은 자아성찰의 기회는 분명 젊은 시기의 고생에서 씨앗을 찾을 수가 있는 법이다
인간이 유식하기도 하지만 무식하기도 해서 몸으로 부딫치지 않으면
절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사회와 적극적으로 부딫치는 청춘이라면 그 방향은 더욱 정교해진다
어짜피 수많은 사람과 만나가며 살아가는거, 그 사람들에게 받는 시련이라면
그 시련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아니 타인을 이해하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더없이 좋은 씨앗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 씨앗이 깨달음으로 성장하는건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씨앗의 품종은 개인에서 나온것 보다 타인에게서 나온것이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청춘은 낭떠러지에 백만번이고 떨어져봐야 하는 것이다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한다, 고생끝에 낙이온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따위의 이해 불문 암기식 명언을 꺼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고 나 역시 바로 선 인간이 되기위해
남들이 밀어낸 낭떠러지로 여러번이고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떨어져서 떨어지는거지 떨어지기위해 떨어지는건 참 웃긴일이다)
그 낭떠러지의 깊이가 깊다면 더더욱 좋다
그 깊이가 깊다는 것은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니 말이다
물론 내가 갈 길이 옮은 길일지는 도저히 모르는 일이자만
그 길과 거리가 멀다면 낭떠러지는 더더욱 깊어질 것이고
나에게 돌아오는 시련은 더더욱 커질 것이며
내가 느끼게 될 깨달음은 더더욱 변화무쌍해 질 것이다

운동을 하면 건강이 생긴다
운동을 즐길줄 아는 사람은 건강의 행복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비록 행복은 모르고 있는 슬픈 청춘이라 할지라도
건강해질 내 모습을 생각한다면 슬플때 슬프더라도
시련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계속 되뇌이며 살아야 겠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by 태방 2008. 7. 23. 00:18
끝이 보일것 같지 않은 여행의 발을 움직인지
벌써 어언 한달이 넘어가는것 같습니다
관광은 목적이 있지만 여행은 목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냥 지금의 이곳을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속세의 우리들은 지금 서있는 이 땅을 떠나는 것이
그리 쉬운일 만은 아닙니다
그래도 지금의 이 한걸음 한걸음에 큰 의미가 있음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이렇게 열심히 자갈밭의 돌들을
하나하나 내 등뒤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여행의 끝에는 내가 도착해야 할 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 마지막 손님이 있을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많은 손님들을 만나면서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첫날에는 가까운 지인을 만나 잠시 머물렀습니다
하지만 그 지인 역시 멀리 여행을 떠나려는 길이었기 때문에
짧은 만남후 작별의 인사를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화려한 축제가 열린 곳에서 몇일을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그 축제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깊이 친해지는데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축제는 나의 여행중에 언제나 함께 하기 때문에
기쁨을 느끼고 싶은 날이 있다면 언제든 달려 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친구가 되 줄것 같습니다

얼마전에는 소중한 손님을 만났습니다
소중한 손님은 나에게 특별한 기분을 들게 해주었습니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에 있을 마지막 손님과 많이 닮아있습니다
그 역시 힘든 여행속에서 나와같이 지쳐있는 것 같았습니다
나를 잠시나마 여행을 떠나게 마음먹었던 여행전의 기억으로 되돌려 보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여행에 지쳐 목말라 있는 나에게 물한잔을 건네기도 하며
정신을 놓아 어디로 가야할지 갈피를 못잡고 있을때 정신차리게 훈계하기도 합니다

생각없이 목적없이 떠났던 정신없던 여행에
잠시 쉼표가 될 손님을 만나
나는 잠시 이 자리에 짐을 풀고 머물고 있습니다
이 여정의 끝을 향하는데 훌륭한 지도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첫번째 쉼터가 될 이곳에서
나는 어김없이 깊고 혼란스러운 생각속에서
다시 다음 여행을 준비할 채비를 갖춥니다
by 태방 2008. 7. 14. 23:44
1. 이상형

  난 밝은 사람이 좋아요. 그냥 하염없이 밝은 사람, 이유없이 밝은 사람. 엉뚱해도 좋아요. 조금 실없진 않았으면 해요. 하지만 중요한건 스스로 밝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거에요. 자아도취에 빠져 신나가 자기 이야기만 떠드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거도 아니고, 언제나 밝게 웃을 수 있는, 나에게 웃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발랄하고 샤방해도 괜찮아요. 예상치 못한 일들로 큰웃음을 주면 좋아요. 말과 표정과 생각은 무거워도, 갑자기 모든것을 툴툴 털어버리고 가볍게 다시 밝아질 수 있는 그런 푸르름을 잃지 않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난 진지한 사람도 좋아요. 밝은 표정속에 깊은 자아를 가진 사람이면 좋겠어요. 인생의 쓴맛을 안다는 티가 팍팍 나지 않아도 좋아요. 하지만 고민속에서 진실을 찾고 그 진실이 자아에 심어들어간 사람이면 좋겠어요. 언제나 자기 인생에는 속깊은 철학자가 되고, 세상의 문제에는 근심어린 논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속에서 진실됨을 찾기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가득한 사람. 남들이 즉흥적이고 탐욕적인것만을 찾더라도, 그 속에서 좀 더 담담하게, 혹은 치열하게 내면을 이해하고 고통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푸르르고 마는 잡초들과는 달리 곧게 뻗은 심지 굵은 줄기를 가진 나무같은 사람이면 좋겠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건, 나의 영혼을 들여다 봐 줄 수 있는 눈을 가지면 좋겠어요. 궂이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수 있는 그런 눈을 가진 사람. 나 자체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 나의 뿌리에서 부터 나의 모든것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어요.

  물론 이쁘면 더 좋아요.


2. 단점

  난 단점이 많은 사람이에요. 일단 자신감이 많이 부족해요. 꼭 중요한 순간에는 어긋난 선택을 하고 말죠. 절대 물러서기 싫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하고, 멍하니 있다가 시간에 빼앗기기도 해요. 언제나 동굴속에 들어가 내 마음속 폭풍이 잠재워질때까지 이리저리 휘둘리죠. 그러다가 비가 그쳐서 잠깐 기어나와 보면 내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어요. 그러면 나는 또 한번 허탈함에 절벽앞에 앉아 고개를 까딱까딱 숙이죠. 참으로 슬픈 일이에요.

  난 눈치도 참 없어요. 모든 일을 내 기준으로 사고하는데 익숙해 있어요. 상황에 맞게 눈치를 본다는 건 상대방의 기분을 미리 파악해야 한다는 건데, 그게 익숙치가 않아요. 이제는 파악하는거도 조금씩 할 수 있겠는데, 행하는 것이 그렇게 되지 않아요. 내가 원하면 먼저 해야해요. 그 때문에 상대를 기분좋게 하는데에 매우 서툴러요. 웃기는건 어렵지 않은데 기분을 좋게 하는건 정말 힘든 일이에요.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으로 안되는 것들이 많아요. 이런것들은 정말이지 100번 센스 있다가도 한번에 날려먹어버릴 큰 문제에요.

  솔직한것을 좋아하면서도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요. 그 때문에 이리저리 방황하게 되는 경우가 많죠. 난 이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시간이 지나보니 나조차도 이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늦은 경우에요. 자기 마음조차 못다스리게 되었으니 어떻게 남의 마음을 얻을 수 있겠어요. 큰일이에요 큰일.

  하지만 난 걱정하지는 않아요. 난 무엇을 하든 평균이상 하겠다고 하고 살아가기 때문에, 결국 난 평균을 넘고, 또 자신있게 시작하겠죠. 하지만 분명 내 눈앞에 놓여있는 여러가지 장애물들은 나를 정신없이 흔들어놓기 마련이죠. 덕분에 많이 성장하지 못했고, 아직 평균을 넘는데도 실패했어요.


3. 변명

  그동안 많이 힘들었어요. 시작 단추부터 잘못 되었던 거죠. 난 세상과 너무 멀리 살아왔어요. 소설책에서나 볼법 한 생각들 때문에, 나의 일상은 소설책에서나 나올법한 일상이 되어 버렸어요. (하지만 그리 재미는 없는 소설일꺼에요. 분명히) 하지만 영화도 혼자 찍는게 아니듯 나도 세상속에서 나 혼자의 일상만을 찍을 순 없어요. 트루먼쇼도 아니고 말이죠. 그래서 다시 노력중이에요. 정말 끝까지 개같이 말도 안되는 일을 겪고 나서야 소설책을 던져버릴 수 있었어요. 소설책은 나중에 쓰면 되요. 그때까지는 그냥 만화책 처럼 살아갈꺼에요. 내가 아무리 진지하고 심각해봤자 어짜피 만화책은 잼있다는건 변함없는 진리에요. 나는 그 진리를 애써 감추고 소설책만 봐왔던 거죠. 책은 그렇게 읽어도 사람은 그렇게 읽을 수 없어요. 일단 만화책 표지를 짚어 들겠어요. 그 속이 소설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눈이 좋기 때문에 그정도는 미리 식별할 수 있어요.

  조금 서툴고 어색하지만
  조금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조금 성장하기 위해선 필요한 여유니까요

  그 여유를 찾을때 까지
  포스트잇에 꼭꼭 써 놓으세요
by 태방 2008. 7. 12. 04:23

  절망의 골짜기에는 바닥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절망의 골짜기에서는 스스로 올라오지 않으면 박차고 갈 바닥도 없다. 내버려진 인생의 내버려진 좌절들은 사람을 바닥이 없는 절망으로 내밀어 버린다. 그리고 그 절망은 갈수록 깊이를 깊게 가져간다. 반사신경이 멈춰버리고, 나는 팔을 뻗어야할 절벽의 나뭇가지들을 하나씩 보내 버린다. 이제는 벽에 긇힌 상처들이 굳은살이 되어 가는 시기. 굳은살 속의 흐르는 뜨거운 피는 더이상 보이지 않는다. 흐르지 않는것은 아니지만, 흐른다고 느끼지 않는데 무슨 소용인가. 찔러서 피 한방울 안나는 사람이 되지는 않을꺼라 생각했지만, 끝도없는 좌절의 골짜기는 나에게 강제적으로 주사바늘이 부러질 내 방어막을 만들어 냈다.
  할 수 있는것이 이제 많지 않다. 100장의 카드중 90장이 뻥카라면 도박을 할 맛이 날까. 인생은 도박이라고 했다. 만가지 진실중 구천구백가지가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이제 대강 100가지쯤 남은거 같다. 하나하나 내 속을 갉아먹어가는 식충이 같은 사실들은 내 진실을 흐르는지 안흐르는지도 모르는 핏속으로 꼭꼭 숨겨놓는다.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가는 사람도, 투석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사람도, 애초에 피가 흐르지 않는 사람도 모두 잘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죽지도 않고, 치료를 받지도 않으며, 피가 모두 떨어지지도 않았다.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심장이 뛰고 있다. 하지만 세상은 병들어 내게 남아있는 젖살은 이제 다 사라져가는 듯 하다. 말은 열정을 외치고 행동은 수정을 담는다. 목에 핏대 세우고 스물 넷의 마음을 담아내는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그렇다고 평범하게 70억분의 1이 되어 소소한 기쁨들로 채워나가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은 더더욱이나 없다.
  여전히 나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나면 그래도 내가 아직 건강한 피가 흐르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안심을 한다. 하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꿈속에서 나는 처절하게 눈물을 흘린다. 일상의 소소한 슬픔들, 내가 잃어버린 구천구백가지의 진실들이 하루하루 내 마음속에서 밟힌다. 포스트잇 떨어지듯 그렇게 바닥에 내동댕이 친 마음의 조각들은 손을 뻗어버리지도 못한채 더럽혀져 간다. 하지만 이 병실에서는 그게 정상이다. 말못하는 짐승일뿐인 나는 떨어져 가는 진실들을 애써 숨긴채 굳은살 벗겨내는데 열중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조금은 웃을 수 있는 안정을 찾기 위해서, 나는 어디까지 기다려야 할까. 도전의 용기가 사라지진 않았지만, 행복의 여유가 더더욱 필요한 시기이다. 화전민의 버려진 땅이 아닌 거름이 두둑한 비옥한 토양이 되고 싶기 때문에.

by 태방 2008. 7. 5. 02:23
경향신문 1면‘GG광고’에 담긴 숨은 사연은...
광고국 관계자 “<조선> 광고 사정 힘들긴 힘든 모양”
입력 :2008-07-01 13:58:00  
▲ 6월 27일 경향신문 1면 하단의 스타크래프트 팬까페 PGR21 의견광고 
지난 27일 경향신문 1면 하단에는 스타크래프트 팬사이트인 'PGR21'이 낸 "국민 지지(支持)를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당장 GG를 치십시오"라는 제목의 대통령 비판 의견광고가 실렸다.

그러나 그 날짜, 한겨레를 제외한 주요일간지 1면 하단에는 경총과 전경련 등 경제단체의 '이제는 경제를 생각할 때입니다"라는 의견광고가 실렸다.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에만 이 경제단체의 의견광고가 빠졌다. 경향신문에 전경련의 광고가 빠지고 스타크래프트 팬까페의 의견광고가 실린 것에는 특별한 사정이 있었다.

이 광고가 나가기 전날인 26일, 광고비를 십시일반한 PGR21사이트 자유게시판에는 그간의 광고진행에 관한 경과글이 닉네임 '분수'의 이름으로 올라왔다. '분수'는 경향신문 광고가 나가기로 한 바로 그 지면에 경제5단체의 의견광고가 접수되었고, 그 가격차이가 무려 5배가 난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해, PGR21의 의견광고 추진팀은 다른 날짜로 광고를 옮기거나, 지면을 3면으로 바꾸는 등의 문제를 경향신문 광고국 측과 긴밀히 논의했다. 그들은 경향신문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이미 공지가 나갔고, 다른 팬까페 등에도 광고가 되었다. 우리 의견대신 전경련 광고가 나간다면 허탈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했다.

곡절 끝에 경향신문은 오후 6시쯤, 5배의 가격차이를 감수하고 PGR21의 광고를 1면에 그대로 싣기로 결정했다.

이로 인해, PGR21 사이트 댓글에는 환호성이 올랐고, 경향신문의 용기있는 결정에 대한 칭찬이 수십건 올라오기도 했다.

"승리의 경향.... 리플 캡춰해서 보내드리면 경제적 타격으로 우울해하실지 모를 (경향광고국) 담당자분들에게 힘이 되겠는데요...", "언론학 학도로써 경향의 선택이 얼마나 힘든 선택이었고 얼마나 훌륭한 언론의 모습인지 더욱 절절히 깨닫고 있습니다" 등의 댓글로 경향신문의 결정을 칭찬하는 분위기였다.

경향 의견광고에 숨겨진 이 이야기의 또다른 비하인드 스토리를 시사주간지 '시사인'은 전하고 있다.

경제단체 광고와 PGR21 광고의 5배 가격차이는 "경총이 제시한 가격"과의 차이가 아니라 "경향이 부른 가격"과 5배 차이가 났다는 것이다. 경향 측은 당연히 '늘 부르던 정가' 그대로를 부르고, 경제단체 측에서는 '그 가격은 조선일보 광고가랑 똑같지 않느냐?'면서 "가격할인"을 시도했다는 것.

경제단체가 흥정을 제시한 가격표를 받아든 경향신문 광고국은 "그 가격이면 굳이 1면에 실을 이유가 없다"고 배짱있게 PGR21과의 의리를 지키게 되었던 것.

경향 광고국 담당자는 "우리는 그냥 평소대로 가격을 불렀다. 아마 조선일보 측에서 가격을 다운 시킨 것 같다. 그쪽이 힘들긴 힘든 모양"이라고 말했다.

하승주 기자
by 태방 2008. 7. 1. 17:13

'비폭력' 일깨운 사제단, "이명박도 사랑한다"

다시 그들이었다. 국가권력이나 금권에 의해 마땅히 지켜져야 할 가치가 왜곡될 때, 그들은 거리에 서 있었다. 지학순 주교에서부터 김용철 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걸고 싸워야 하는 양심의 목소리가 태동될 때에도 그들은 자리를 함께 했다.

 

2008년 6월 30일 저녁, 그들은 다시 거리로 나섰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미국산 쇠고기'로부터 촉발된 촛불시위가 전경의 군홧발에 의해 상상을 초월한 과잉폭력진압 속에서 피를 흘리자 서울시청 광장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한달을 조금 넘긴 사이, 시계가 순식간에 20~30년 전으로 돌아가버린 지금, 어쩌면 우리는 1987년의 그들을 기억하며 기다렸을지도 모른다.

 

사제단은 저녁 7시 30분에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미사를 진행했다. 천주교의 종교행사였지만, 이 행사는 반드시 천주교인만의 것은 아니었다.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에 앉아 촛불을 들고 그들의 미사를 경청했으며, 신부와 스님이 손을 맞잡으며 거꾸로 돌려진 시계를 걱정하며 시대를 걱정했다. 종교의 화합, 그리고 시민의 화합, 종교를 초월해 뜻을 모으면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연출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경찰과 대비돼 더욱 빛난 아름다움

 

이 아름다움은, 경찰의 변함없는 대처와 대비돼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경찰은 또다시 전경버스로 시청 앞 광장을 봉쇄했으며, 미사 이전에 전경과 약간의 실랑이를 벌인 시민을 "시민이 전경을 폭행했다"는 이유로 강제연행했다가 항의가 이어지자 "경미한 폭행이었다"는 조금은 우스운 해명과 함께 풀어줬다.

 

1시간 가량 이어진 행진이 끝난 이후에도 정복경찰을 동원해 시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려다가 사제단 신부들의 간곡한 호소에 호응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해산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슬그머니 머쓱하게 철수했다.

 

수십년 넘게 단련된 양심의 목소리가 나타나고 시민들이 그에 호응하면서, 경찰의 과잉대처는 오히려 개그처럼 느껴진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비폭력'의 힘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제단의 김인국 신부는 시민들에게 '간곡한 호소'를 남겼다. 늦은 시간까지 시민들이 전경과 대치하다가 피를 흘린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염려한 것 같았다. 밤 10시를 넘기면서 시민들에게 '귀가'를 호소했으며, "국민들에게 힘이 될 때까지 사제단이 단식기도회를 계속하겠다"는 선언도 남겼다.

 

나로서는, 이 선언이 가질 힘을 유추해보려고 노력했다.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졌으며, 그 영향력에 걸맞은 실천을 끊임없이 보여줬던 사제단이 시청 광장에 '계속' 남는 것만으로도 그 상징은 클 것 같았다. 그들은, '비폭력'이 가진 힘을 시위참가자와 경찰 모두에게 진실되게 보여줄 것이다. 안그래도 컸던 사제단의 존재, 더욱 크게 보였다.

 

미사 도중에도 사제단은 '사랑'을 이야기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사랑하자고 주문했으며, '경찰 형제'에게도 사랑과 애정을 보낸다고 했다. "대통령의 힘과 교만을 탄식했"지만, '사랑'과 '용서'를 말하는 신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은 것 같았다.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했다던가? 진실된 목소리에, 시위참가자들도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 자신의 힘과 교만을 탄식하면서도 자신에게 '사랑'을 주문하는, 신을 섬기는 자 본연의 목소리를 말하며 그 자세를 지킨 사제단으로부터 무엇을 느꼈을까? 참고로 오는 3일에는 개신교인들의 기도회가 예정돼 있다. 아마, 그들도 '힘'과 '교만'에 빠진 누군가를 탄식하며 '사랑'과 '용서'를 이야기할 것이다.

 

행진 후의 작은 축제들

 

행진 후의 시청 앞 광장은 말 그대로 '평화 속 작은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잔디밭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시민들, 단식농성을 시작하는 신부들을 찾아가 웃음꽃을 피우며 "힘내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시민들, 사제단의 자문 변호사로서 모습을 드러낸 김용철 변호사에게 사인을 받고자 하는 시민들, 촛불을 모으며 작지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드는 시민들, 현장을 뜨지 않은 통합민주당 국회의원과 토론을 나누는 시민들, 시민과 종교인, 그리고 정치인까지 어우러진 작은 축제의 모습이었다.

 

진정으로 기다려왔던,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그동안 이어진 대치 속에서 피를 흘리며 싸워가는 시민들의 모습을 눈 앞에서 지켜봐왔던 나로서는, 그 작은 평화들이 새삼 소중하게 느껴졌다. 소중하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대하지 못하다가 눈으로 보면 그 소중함에 눈물마저 나는 경우를 살면서 종종 겪는다. 나는 그것을 느꼈다.

 

그 축제 속에서, 인터뷰를 시도하고자 하는 기자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졌다. 그 대열엔 나도 포함돼 있다. 다음은, 김인국 신부가 기자들과의 즉석 인터뷰에서 남긴 이야기들이다.

 

-오늘 이 자리(시청 앞 광장)에서 미사를 진행한 취지는 어디에 있나?

"시민들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소통 장애'가 무서운 그림자를 불러왔다. 시민들은 짓밟힌 자존감 속에서 감정이 격앙돼 있다. 시민들과 이명박 대통령 사이의 무서운 그림자에 호소하고자 한다.

 

-그동안 '폭력시위' 논란이 유발된 적이 있었다.

"'폭력'에 대해서는 시민들도 책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시민들은 애초에 비폭력 기조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정부에서 폭력을 유도한 경향이 있다. 우리는 공안기관의 강경기조도 이명박 대통령의 진심이 아니라 기관장들의 '과잉'이라고 믿고 있다. 그속에서 촛불에 담긴 시민들의 마음을 지킬 필요가 있는 듯하다."

 

-특정 보수언론에도 목소리를 내세웠는데?

"우리 사회의 진실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 특정 보수언론은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주 입장을 변화시킨다. 후안무치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책회의 측은 '이명박 퇴진' 구호를 내걸고 있다.

"글쎄, 대책회의는 대책회의고, 우리는 우리다.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도 사랑한다. 그가 국민적 기대가 부응하는 바를 실현하는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

 

여기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싶다. 마지막 질문은, 내가 요즘 들어 안면을 트고 가끔씩 인사를 나누는 <문화일보> 기자가 던진 질문이다. <문화일보>의 논조가 깊게 스며든 질문이라, 나로서는 김인국 신부의 발언을 받아적는 와중에도, 그 <문화일보> 기자를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언론에 소속된 기자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까?

 

그 다음으로 주목받은 인사가 있다면, 김용철 변호사일 것이다. 사인 요청이 잇따르자 다소 쑥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에게 다가가 인터뷰를 시도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언론 인터뷰를 질리도록 했던 경험이 깊게 묻어져 있다. 무엇을 묻든 즉답을 피했으며, 철저하게 원론만 이야기했다.

 

-이 자리엔 어떻게 오셨나.

"사제단의 자문 변호사가 3명이다. 그중 하나가 나(김용철 변호사)다. 사제단의 자문 변호사로서 신부님들과 함께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촛불집회에 단 한번도 참석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이 자리에는 신부님들이 오시면서 자문 변호사로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나왔다."

 

-삼성....

"아아, 그 부분은 이야기하지 말자. 재판중인 사건인데…."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느꼈다. 민감한 부분이라 섣불리 말할 수 없었을텐데 말이다. 어쨌든, 가까이에서 보고 직접 이야기를 나눠 본 김용철 변호사는 앞서 이야기했듯이 수많은 언론 인터뷰를 보면서 단련된 흔적이 역력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라고 소개했을 때의 김용철 변호사의 반응도 재미있다.

 

"어? 거기, 아무나 다 기자잖아?"

 

웃으면서 시도했던 내 반박은 다음과 같았다. 나는 목걸이로 차고 있던 명함을 들어올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에이, 이 명함은 아무나 안줘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명함은,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되거나 3개월간 메인노출기사 5개 이상 작성한 시민기자가 발급대상이다.

 

'사제단'의 등장, 본질을 일깨우다

 

촛불시위가 애초에 내건 명분은 '비폭력'이었다. 하지만, 이야기하자면 2박 3일은 충분히 소비될 그 과정들을 통해 폭력이 오가면서 전경과 시민들이 피를 흘린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사제단의 등장과 간곡한 호소 덕분에 '본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사제단의 등장으로써,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명분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가톨릭 신부'라는 신분도 정부가 쉽사리 건드릴 수 없는 특이점이 있다. 사제단의 등장은 시위참가자들에게 마음의 위안과 함께 그런 보호벽을 제공해줬다.

 

'본질'의 싸움이다. 사제단의 등장으로써, "촛불시위 진압을 공세적으로 바꿀 것"이라던 경찰의 방침은 상당부분 명분을 잃었다. 현장에서만 봐도, 시청 앞 광장을 빈틈없이 포위했던 전경버스도 두세대 가량만 남겨두고 철수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시민 중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질긴 놈이 이기는 것"이라고. 그렇다. 나는 거기에 한마디 더 보태고 싶다. "질기게 명분을 지키는 놈이 이기는 것"이다. 경찰은 이미 1980년대식 진압방식을 동원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천명한 것 자체에서 명분싸움에서 지고 있다.

 

그런 진압으로 사람들이 기가 죽어 시위를 하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그렇게 대치하고도 아직도 본질을 모르는 것에서 안타까움을 느낄 따름이다. '본질'을 다시 깨달은 촛불시위, 또다른 국면을 맞이할 7월은 그렇게 새로 다가왔다.

 

[알림] 사진 및 동영상은 집에서 곧장 업데이트하겠습니다. 광화문 인근 PC방인데, 오류가 계속 뜨는군요.



출처 : http://blog.daum.net/ctzxp/11973567

by 태방 2008. 7. 1. 08:49

창밖은 눈이 내리고
나는 눅눅한 창고에 앉아
조용히 땅바닥을 뒤척인다

2007년 11월 24일
나도모르게 열린 문틈 사이로
진주가 또로로 굴러 들어오다

2007년 12월 6일
문이 열리고
빛이 스며들다
하지만 난 그 빛을 느끼지 못한다
언제나 그렇듯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2008년 2월 4일
창문앞의 지나가는 사람에게
마지막 구원의 손길을 요청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신경쓰이지 않는다

2007년 2월 21일
2007년 3월 6일
진주알이 한알씩 더 굴러 들어오다

2008년 3월 14일
눈이 그치고
창문으로 총알 한방이 들어왔다
맞아도 죽지 않을 곳에 맞았다
한동안 가만히 앉아서 상처를 치료한다

2008년 3월 25일
진주의 주인인듯한 사람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내 상처를 치료해준다
작은 풀잎 한장이 상처를 금새 낫게 한다
그 사람이 돌아가자 이제서야
문이 열려있고, 빛이 들어오고 있음을 알게된다

2008년 3월 31일
그 사람을 찾아
창고속에서 계속 내 상처를 치유해주기를 원한다
문을 열고 나가 상처를 치유해준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2008년 4월 5일
무릎이 너무 아파 견딜수가 없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미 나를 잊은듯 하다

2008년 4월 11일
상처에 붙어있는 풀잎을 기억하며
다시 일어나 그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2008년 4월 25일
다시 총알이 날아올까 겁먹기 시작한다

2008년 5월 1일
나를 부랑자 취급한 경찰들이
나를 구치소로 끌고간다

2008년 5월 21일
내가 찾고있던 사람이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로 가버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2008년 5월 29일
구치소를 나온다

2008년 6월 30일 오늘
창고로 돌아왔을때는
남아있던 진주알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아팠던 상처들은 거의다 나은듯 하다
그동안 소중하게 지켜왔던
상자속 보물들은 잠시 좌물쇠를 잠궈두고
모포 한장을 걸친채 문 밖을 나선다
눈을 맞으며 정신없이 세상을 돌아다니다
그 사람이 이곳에 돌아오게 되면
다시 창고의 보물을 열어
아름다운 진주를 담아두기 위해

by 태방 2008. 7. 1. 00:48
감당할 수 없는 무한함의 의문이 있었다

도대체 왜 사람들은
진정 원하는 사랑을 먼저 찾지 않고
맘에 드는것만 고르려 할까

살을 빼기 위해 감자튀김은 쓰레기통에 버릴 줄 알면서
가시가 박혀있는 쵸코릿 봉지는 평생 마음에 안고 살아갈까

던져버리지 못하는 그 한줄기 미묘한 혈관은
심장으로 이어져 우리의 마음을 숨쉬게 한다
하지만 그 혈관은 우리의 영혼의 심장을 꺼버리게도 한다
정말, 이해할수 도, 이해하기도 어려운 의문
왜 인간은 그러해야만 할까

그 의문의 답은 없다
하지만 그 의문의 문 넘어서는
모두가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 모두의 행복이 있다
그저 그렇게 지내고 만나고 놀며 즐기는
그것이 곧 행복이 되는 그러한 곳이 있다

그 두 곳은 작은 창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대부분은 문으로 들어가 볼 생각은 안한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은 사랑에 빠지게 되면
그 창문속 너머의 새로운 곳의 사랑을 바라보곤 한다
그곳에는 사랑으로 함께 되는 진정한 행복이 숨어 있다
그 행복은 짧지도 않고, 일회성도 아닌
두뇌속의 호르몬 분비에 의지하지 않아도 영원할 수 있는
영혼이 느끼는 사랑이다
하지만 심장으로 느끼는 사랑의 시작은
그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렇게 다시 돌아서 버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대부분 그렇게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문에 서서 너머로 넘어올 생각을 안한다

나는 처음부터 문 너머 창문속의 세상에 갇혀 있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5년간 갖혀있는 미숙아는
그 속에서 창문너머 세상을 바라보며
저곳은 행복에 가득찬 세상이라 상상하며
그렇게 계속 머리를 땅바닥에 짓찧고 있었다
한번이라도 저 문이 열리기를 기도하며
열리지 않는 창문으로 계속 소리만 치고 있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나는 드디어 문지방 앞에 서 있다
너무나 갈망하던 창문밖의 세상을
나 스스로 찾아가기 위해 나섰다
내가 있던 골방이 슬픈 기다림의 공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창문너머 있던 세상이 언제나 축복으로 가득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완벽의 사랑은 없다 할지라도,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
나는 문턱에 서서 사람들에게 소리를 친다
창문너머를 궁금해 하던 사람들에게,
좀더 멋진 문턱너머 세상의 사람인 나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렇게 나는 행복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다

잠깐 이기적일 것이고
잠깐 욕심도 낼 것이며
잠깐 실수를 하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난 이 방을 탈출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는 것에 매우 만족한다

비록 문을 넘기 직전
가까스로 찾아낸 진주를 잃어버렸지만
그것에 미련을 두지는 않기로 했다
조급해 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조개는 비록 굳게 입을 다물었지만
영원한 아름다움은 기다림으로 여물어
진주로 다시 태어나게 될것임을 난 믿고 있다

그때까지 난
문턱에 서서 세상에서 물어오는
행복의 공기를 마음껏 쐬고 있을 작정이다
by 태방 2008. 6. 24. 00:56
| 1 2 3 4 5 6 7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