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nogari9/100035093724

태어난지 7777일 되는 날

솔로 7777일의 의미도 있지만;; 그건 접어두고;;


오늘 명동에서 싱가폴에 단기유학을 다녀온 고등학교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고 친근하게

우리 평소 만나던 대로 자연스럽게 그냥 그렇게 만났다


서로 뭘 그리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지

뭘 그러 궁금한 이야기가 많은지

끊임없이 서로의 말을 토해내고


고등학교때 철없던 이야기를 나누던 우리

그때 어쨌느니 저쨌느니 말은 많이 했지만

지금을 사는 우리의 모습을 이야기할때만큼은

서로 진지하고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이야기 했지만


어쩄든 우리는

만나지 않은 동안에도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커나갔구나

너의 생각도 나의 생각도

우리 서로 다른 경험이지만

그것이 피와 살이되어 양분이 되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살찌웠구나

라는 생각이 드니 한편으로 뿌듯하고 한편으로 기특하고


좋은 친구, 오래된 친구들 끼리는

서로 지내면서 커가는 모습을 바라 보는것도

또다른 행복이 아닐까 싶다


7777일째 이런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숫자 만큼 참으로 기분좋은 행운이 아닐수가 없다

내가 많은 인연을 놓치고 버리고 살아왔지만

이런 친구들 만큼은 절대 놓치지 않고 언제나 함께 해나가리라 다짐해 봐야 겠다

by 태방 2007. 3. 9. 00:02
http://blog.naver.com/nogari9/100035061339

카레카노 보다가 떠오른 생각

 

내가 자주 언급하는 내 인생의 수치스러운 과거

나는 중1때 반 전체 애들에게 왕따를 근 한학기간 당했었고

고등학교때는 사실 약간 찌질이 스러운 아(웃)싸(이더)로 지내왔었다

 

대학다니면서

난 새로운 인간이 되겠다는 마음을 먹었고

나와 마음이 맞는 친구들을 알게 되었으며

새로운 집단에서 나만의 새로운 개성을 갖게 되었으며

(아직도 좀 모자라지만) 개념이라는 걸 챙기기 위해 눈치 보기도 많이 봤고

내 나름대로 부딫치고 경험하며 배우기 위해서 많이 노력도 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언제나 부단히 노력하며 나 자신을 개조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

(고 생각은 한다.. 실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남자와 그여자의 사정'에서 '아리마 소우이치로우'가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고민이 있다

그의 아버지는 패륜적이었으며 어렸을때의 아리마에게 폭력, 욕설등 온갖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결국 그의 부모는 큰 빛을 지고 가족을 버리고 도망을 가게 되었는데

집안의 망신이라며 자식인 아리마까지 친척들이 무시하고 냉대하는 것을

큰아버지와 큰어머니가 데리고 키워 지금의 아리마로 성장시켰다

 

아리마는 친척들에게 나쁘게 보이지 않기 위해

또 자신을 키워준 양부모에게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자신을 완벽한 인간으로 만들어야 했고 또 실제로 그런 인간이기도 하다

 

그러다 미야자와와 사랑에 빠진 후에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자연스러운 내면의 모습들이 드러나기 시작하고

그런 모습들 속에 예전의 아버지의 모습이 남아있지 않을까

진짜로 패륜아의 자식인 자신이 패륜아이지는 않을까 하는 의구심에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고민을 하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왕따도 한번 당해보고 아싸도 한번 겪어보고

난 오히려 내 자신의 못난 모습이랄까, 내 자신이 사람들로 부터

나쁘게 취급 받아온 경험이랄까 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나는 이미 본모습이 못났다는 것을 한번 인정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를 잘 가꾸고 좀 더 완벽해 지기 위한 노력들이

내 본성으로 녹아들지 못하고 그냥 내 이성속에서 제어 되는 그 정도로만 남아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그냥 내 편한대로, 내 생각대로 말하고 행하게 되면

행여나 예전 나의 못난 모습들이 다시 드러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항상 신중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었고

또 그동안 그렇게 지내기 위해 눈치도 많이 보고 소심해지기도 하고 그랬지만

사람들과 친해지고 정이 들고 나면

결국 그 사람들에게 내 자연스런 본모습이 드러나고

그런 내 못난 모습을 보고 다들 떠나가는건 아닐까 하는 그런 걱정

 

내 주변에 사람이 많지 않다고 느낄때가 가끔 있는데

그럴때마다 '내가 못난 점을 드러낸건가?'하는 생각이 들어 섬찟할때도 많다

나는 근본적으로 사람들과 친해지기는 어려운 '못난인간'은 아닌가 하는 생각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것 자체가 부자연 스러운 인간으로서

내 자연스러운 모습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고민을 하곤 한다

by 태방 2007. 3. 8. 01:38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893576

내일은 전자기사 필기시험 치는 날

시험을 치면 인덕원에 있는 회사로 두번째 면접을 보러 가게 된다

산업기능요원으로 취직하는거라 완전한 취직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회사에 취직하게 되면 나도 이제 사회생활 시작이 되는거겠지?


지금까지 세군데 회사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나는 무턱대고 회사에 들어간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지

회사가면 무슨일을 하는지, 나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내 생활은 어떻게 될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뭐 선배나 친구로부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는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지금 학교를 떠나 집에 있으면서는

주변에 그냥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취직을 준비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에

그냥 진짜 뭣도 모르고 취직자리를 알아보고 있는 중이다


메일은 어떻게 보내야 하는것이며, 전화를 하면 어떤말을 해야 하는 것이며

이력서는 어떻게 써야하는 것이며, 약속은 어떻게 잡아야 하는 것이며

뭐 까놓고 진짜 아는게 단 한개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지내다가 아는 분의 도움으로 한 회사로 부터 전화가 한통 걸려 왔다


나는 그냥 여러개의 회사를 알아보고 조건을 따져보자라는 조금은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었기에

(정말 모르면 괜히 시건방만 느는 경우가 많지 않는가)

전화 온 인사담당자한테 뭐 조건이 좋으면 일 할수 있겠다느니의 말을 했다


그러니까 전화한 사람이 말을 뭐 그렇게 하냐느니, 그냥 일 열심히 할 수 있다 한마디면 되는데

이래저래 말을 궁시렁궁시렁 다냐느니, 요즘 애들은 너무 자기밖에 모른다느니

이상한 말만 늘어놓기 시작을 했다 -ㅇ-

나는 갑자기 훈계를 들으니까 당황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연신 하기는 했지만

사실 취직하는 사람들 속내는 다들 그런 감정이 조금씩은 있는거 아니겠는가

요즘 세상에 누가 회사에 다 드러내고 모든걸 바쳐가며 죽어라 일하는 사람이 있는가

뭐 인사 담당자님도 약간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 조금은 있는거 같았지만

사실 뭐 내가 무조건 잘못이긴 하다 -ㅇ-

내가 회사를 골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무의식속에 있었으니

그런 태도가 나온거 아닌가도 싶다


다시한번 변을 하자면 난 정말 회사라는 집단의 속성이나 목표

내가 회사에 입사한다는 것의 의미나, 취직이 된 이후의 나의 주어진 임무들

그 어떠한 회사의 문화라할까는 것들에 대해 전혀 아는바가 없었기 때문에 나온 태도이지

내가 건방지게 알아서 나 데려가슈 태도로 굴었던것은 절대 아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난 정말 이런걸 알 경험이 전혀 없었다

나는 처음에는 회사가 '내 능력을 원하는 회사가 나를 선발하고, 내 능력을 마음껏 보여주는 곳'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다는 생각이 든다 -ㅇ-

사실은 '능력에 맞는 일 배워서 열심히 일하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물론 아직도 제대로 모른다

저거도 그냥 내 추측일 뿐이지

회사에 들어가서 일을 해봐야 회사가 어떤곳인지 제대로 알 수 있을텐데

조금 겁나지만 그래도 배우려는 자세로 임하면

1년이건 2년이건 최대한 빨리 적응 할 수 있지 않겠나

또 이게 경험이고 지식이 될테니 겁먹지 말고 덤벼야지 ㅎㅎ


어쨌든 그때 (사실 그 회사가 별로 맘에 안들기는 했다) 그쪽 의사 반 내쪽 의사 반으로

서로 면접 안보고 전화로만 땡 치고

다음 회사부터는 제대로 정신 차리고 이력서 들고가서 제대로 면접 보기는 했다

아무래도 중소기업들에는 확실히 고등인력이 모자라긴 모자라는거 같다

어떻게든 나를 쓰고 싶어서 안달인듯한 눈치가 보이긴 보였다

(내가 능력이 잘나서가 아니라 내가 달고있는 딱지들때문이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ㅇ-

또 시건방떠는 거 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냥 솔직하다고 봐주면 좋겠다 ㄷㄷ)

그래도 최대한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겠다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사람이 거만해지는 순간 발전은 없다


낼모레 시험 잘 치고

적어도 필기합격증이라도 들고 다녀야

회사 면접때도 좀 볼 면목이 있을터인데 ㅎㅎ


60점은 넘을 수 있겠지? ~_~

공부나 하자 -ㅇ-

by 태방 2007. 3. 3. 01:46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403363

(일부러 제목 한번 거창하게 지어봤다 -ㅇ-)

 

인생은 언제나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갈등이 존재한다

외부적 갈등이야 대화하고 협의하고 조정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지만

내면적 갈등의 문제는 한 자아 속의 다양한 가치관의 갈등이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쪽의 가치관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는

한쪽이 죽어야만 이기는 싸움이기에 더욱 복잡하고 고민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생 속에서 이러한 갈등은 사람을 한층 성숙되게 하고

바람직한 사고방향을 잡는다면 바람직한 인격형성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갈등들은 (철학적 고민이 아닌이상) 대부분 현실적인 고민을 동반한다

자신에게 여력이 있다면,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냥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결정을 해버림으로써 경험을 통해

내면적인 갈등을 해결해 버리는 방법이 있을수도 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20대의 패기와 열정으로 성숙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점점 사회에 가까운 인간이 되어가면서

잃기 싫은 것들, 잡고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놓치기 싫으면 결정하지 않고 가만히 순리대로 살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내면적 고민들을 애써 무시하고 현실로 돌아와 버리는 경우가 잦아진다

덕분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임에도 자기합리화하며 그저그런 인생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다

 

단순한 사람이 인생 편하게 산다고

이런 고찰을 열심히 안하면 선택이 바로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주하기 때문에

그냥 고민없이 간단하게 인생을 편하게 살 수 가 있다

잃을것이 없다면 그냥 아무거나 골라 버리는게

어찌보면 이리저리 재가면서 판단하는 거 보다 편할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대학생때가 한때

청년실업이다 뭐다 20대부터 챙기기에 열중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게다가 사실 아무것도 아닌것이지만 그나마 가진것을 지키기 위해 쓸데없이 억지 부리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 인생 한심하게 사는 날이 시작되는거 아닌가 하는 작은 걱정을 가지게 된다

 

인생 편하게 못살하도 인생 후회없이 살려고 했는데

결국 나란인간도 속물이 되어가는가

by 태방 2007. 2. 17. 02:40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340231

포항 생각은 더 이상 안하려고 했는데


전자전기공학과 03 김태현

前 포항공과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2005학년도 편집장


  어제 저녁 오랜만에 한 후배가 나에게 MSN 말을 걸어 왔다. 내가 몸담고 있던 교지편집위원회(이하 교편위)에서 작년까지 편집장을 맞고 있던 후배 녀석이었다. 교편위를 안한지는 몇 개월이나 지났지만 내가 전 편집장이었던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 친구 역시 교편위임은 변함이 없었다. 당연하게 우리는 자연스레 교편위 이야기를 이래저래 하게 되었다.


  나에게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다. 총학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한다. 이번 호 교지의 발행처에 '교지편집위원회'에다가 '총학생회' 자신들의 이름을 덧붙여 달라고 한단다. 그래야 광고 대행사에서 광고를 따기가 좀 더 쉽다고 했단다.


 난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게 과연 맞는 소리인가? 어느 학교에서도 총학이 관리하고 있는 교편위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발행처에 총학생회 이름을 넣을 수는 없었다.


  사실 현실적으로도 총학생회는 교편위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고 있지 않으며, 교지 발간에 학생회비는 거짓말 안하고 단 한 푼도 안 들어간다. 한국외대의 경우 연간 운영비만 3천만원이 넘게 지원을 받지만, 우리는 운영비로 한 백만 원쯤 받으면 많이 받은 거라고 좋아한다. 우리에게 관심은 있는가 모르겠다. 아마 총학생회에서 교편위 편집장이 누가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꺼라 본다.


  아마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아무 생각없이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했거나, 그들 머리에 교편위는 무시 받아 마땅한 단체라는 무의식속의 고정관념이 들어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 생각에는 후자가 거의 확실하지 않는가 싶다.


 그동안 우리는 학생들에게, 또 자치단체들에게 열심히 무시 받아왔고 또 그렇게 12년을 보내왔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학교 학생 중 우리가 교지를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이 몇 퍼센트나  될까? 내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교편위 활동을 했다고 말하면 교편위가 뭔지 물어보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2004년 까지는 공식명칭이 '청년과학'이었기 때문에 교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았었다.


  그런 교편위를 학생들에게 인식시키고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학생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나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력을 해왔다. 뭐 이제는 퇴물에 가까운 OB가 되었지만, 능력과 선택의 부족이었을 뿐 내 노력은 탓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안타깝지만 난 편집장 임기동안 좋지 못한 선택과 조금 부족한 리더십으로 학생들에게 여전히 무시 받는 교편위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자치단체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영 찬밥 신세이다. 학생들을 우선한다는 자치단체들이 자신들의 단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기 안달이다. 교편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몇주째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글을 미루고 미룬 것도 아니오, 3일 밤을 새가면서 편집 수정보고 아슬아슬 마감한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맹비난을 받으며 교편위의 무능함을 질책 받았던 것도 아니다. 나와 교편위에 함께 있는 많은 교편위원들의 노력과 만들어낸 성과물, 그 가치들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일이다.


  자치단체들로 부터 우리의 결과물들이 매도당하고 무시당하고 이용당한 일은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 유명한 사건은 여학생회와 관련된 일이다. 내가 3학년 때, 3월에 전 편집장 형이 만드신 교지가 나왔다. 그때 난 편집장이었고, 또 내가 쓴 글도 그 교지에 실려 있었다. 교지가 배포된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었다. 나는 전자과 3학년들이 제일 힘들어 한다는 전자회로1의 1차 중간고사를 치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기분 좋게 방에 들어가고 있었다.


  난데없이 내가 쓴 글이 앞뒤 잘려 난도질당한 채로 온 기숙사 정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뜬구름 같은 문장과 함께 볼펜과 A4에는 내 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실려 있었다. 그 종이 아래에는 여학생회라는 당당한 표식이 함께 있었다.


  난 여학생회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내 글이 왜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높은 형식으로 앞뒤가 잘려서 편집되어있는지가 황당했다. 내가 편집장이긴 했지만 국어실력, 어휘능력, 문장능력 등 그 어느 것 하나 잘난 구석이 없었고, 내가 쓴 글이 나조차도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 못할 정도로 초보 수준의 에세이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로 오해살 수 있도록 편집되어버리니 내가 읽어도 글 쓴 놈이 나쁜 놈으로 보이는 글이 되어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여학생회장과 집행부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너무나 당당했다. 이런 글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런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글쓴이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짜증나기 그지없었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난 그들에게, '글쓴이의 동의 없이 남의 글을 무단 편집, 도용하여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용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교지는 저작권이 없다느니, 학생 모두의 글이라느니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댔고, 오히려 오해를 살만한 글을 쓴 나에게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난 정신이 혼란했다. 과연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로 잘못을 한 것인가?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난 충분히 설명할 생각이 있었고, 그게 문제라면 나에게 이야기 하고 오해를 풀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를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미안한 마음 하나 없이 당당했다. 결국 내가 글에 대한 해명문과 오해를 불러일으킨데 대한 대자보를 붙이고 일이 정리되었다


  이것이 자치단체 속에서 교편위의 위치를 느끼게 된 가장 첫번째 사건중 하나이다.


  두 번째 사건은 좀 더 황당했다. 소위 말하는 내부자의 소행이랄까? 그 때문에 조금 더 타격이 컸다.

  2006학년도 20대 총학생회장을 맡은 학우는 3학년 초까지 나와 함께 교편위 활동을 해온 친구였다. 그러다 19대 총학생회 출범과 동시에 교편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총학생회와의 협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자신이 총학생회 편집부장으로 들어가 교편위의 활동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나는 뭐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또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총학에 아는 사람 하나 생기는 게 나쁜 것은 아니기에, 또 개인의 결정에 내가 간섭할 이유도 없기에, 그냥 좋다고 하고 형식상 그 친구는 교편위에서 총학생회로 이동했다.


  그 당시 총학생회장과 그 친구는 우리에게 Union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하였다. 당시 자치단체 사이에서 교편위는 ‘실무가 없는 놀고먹는 단체다’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난 그 허물을 탈피하고자 Union의 발간에 ‘적극 도움을 주겠다’ 약속을 하였다.


  난 처음에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교편위에서 주도를 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그래서 난 아예 우리가 전체적인 총괄을 다 할테니 그렇게 알라고 통보를 하고, Union을 만들 여력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솔직히 글 써본 것 이상의 활동을 안 해본 애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교지에서도 잘 하지않는 편집기술 확보에서 부터 기획, 편집, 발행, 배포에 이르기 까지 교편위를 중심으로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다른 다치단체들로 부터 우리가 일을 안 하는 단체는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고, 또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하는 대신 우리 이름을 걸고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책에 자부심과 당당함을 좀 더 담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진행하였다.


  덕분에 교편위 후배들만 죽어났다. 밤샘작업은 필수였고, 학업은 뒷전인 경우도 허다했다. 이제화서는 내가 뭔 짓을 시켰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어쨌든 자치단체들의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기 위해,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쨌든 정말 열심히 했다.


  덕분에 아주 성공적으로 Union 세권과 포카전 안내책자가 만들어 졌다. 나 또한 뿌듯했고, 위원들도 뿌듯해했다. 하지만 모두들 조금은 아쉬워했다. 우리가 책 만드느냐고 언론의 역할을 많이 못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기대가 있었다. 우리가 자치단체로 인정을 받고 다른 단체들처럼 함께 협력관계에 들어가면 우리가 언론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믿음과 기대는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 시작은 총학생회 선거 때이다. 20대 총학생회선거 1번 선본이 앞에서 언급했던 교편위 출신의 총학생회 편집부장이었다. 나 역시 이런저런 이유와 뜻을 품고 2번 선본으로 나섰기 때문에 상대 선본이 연설을 할때 듣고 있었다. 1번 선본의 찬조 연설자가 나와 1번 선본 총학생회장 후보를 찬조하고 있을때 였다.


  난 분명이 들었다. 총학생회장 후보의 여러 업적을 말하는 도중에 분명 Union 발간이 들어있었다. 게다가 마치 자신이 전부 만든 것과 같은 뉘앙스의 문장이었다. 나와 함께 있던 몇몇의 교편위 위원들은 정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비록 그들이 제안하기는 했지만 Union의 발간에 있어서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 그가, 나와 교편위 후배들이 1년간 힘들게 굴러가며 만든 그 책의 발간을 자신이 주도했고 많은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난 당장에 선거 토론회 때 이 점을 추궁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자신이 만든게 맞다'였다. 나는 기획, 편집, 발행, 배포까지 교편위가 다 했는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답변은 '아이디어가 중요한 거 아니냐?'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이었다. 같이 2년간 한솥밥 먹고, 더구나 1년간 우리가 고생한 거 눈으로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뻔뻔한 답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난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업적을 올리기 위해 교편위라는 단체를 그렇게도 철저하게 무시한 모습을 봤을때 난 분노와 함께 두번째 자괴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교편위를 위원회에서 자치단체로 인정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학기 초에 학생운영위원회에서 분명 우리가 너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자치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1년간 일 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자치단체로서의 역할, 언론으로서의 본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를 총학 산하의 위원회가 아닌 독립적인 자치단체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할 참이었다.


  내가 편집장으로 있는 마지막 운영위원회인 2005년 12월 운영위원회, 우리에게는 의결권도 없었고 오직 발언권만 있었다. 나는 교편위의 자치단체로의 승격과 관련한 학생회칙 개정을 발의하였고 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의 내용은 어이없고 중구난방이기 짝이 없었다. Union 몇 권 만든 게 일이냐는 둥, 학생들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둥, 너네는 총학 산하 아니냐는 둥, 다 듣고 보면 우리보다 너희가 못한 게 많다는 이유였다. 학생을 대표할 수 있는 언론을 자치단체로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도의 승격 논의였는데, 서로간의 공적 다툼만 하고, 본질은 없었다.


  그동안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일도 열심히 했고, 당시 회의 때 언론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까지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 뒤 다시 와라'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내리고 승격을 거부하였다.


우리는 또 한 번 찬물을 먹었다.


  그들이 게으름을 비판하여 본질까지 접어가며 노력했건만, 노력은 완전히 무시하고 다시 본질을 찾아오라는 똥개훈련식의 찬밥대우밖에 받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자치단체로 승격되지 못하여 지금 또 총학생회로 부터 교지 발행처 문제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받고 있다.


  교편위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 단체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 단체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할 말도 많고 의견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다들 우리 단체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가? 진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까놓고 교지를 열심히 읽어보기는 하는가?


  등록금 문제, 교수임면권 문제, 교수부당해임문제등 일련의 학교의 사태들에 대해 학생들이 전혀 발언권을 표할 수 없게 된 데에는 과연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가? 총학생회는 뭐했으며, 학과협은 뭐했으며, 동연, 기자회, 여학은 도대체 무얼 한 건가? 그들이 움츠리고 할일을 저버리며 학생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있을 때, 우리는 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관심도 없어 실망조차도 안겨 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자 다른 자치단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일도 마다않고 했으며, 우리가 자치단체로 인정받고 학생들에게 당당히 보일 수 있는 교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학생들로 부터의 무관심은 둘째 치고 자치단체들에게서 조차 무시도 이런 개무시를 당하고 보니, 지금 우리가 뭔 짓을 하는가 싶기도 하다.


  이럴꺼면 차라리 해체를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언론이고, 학생들의 입과 머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펜을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제 갈길 못가고, 학생들의 기대해 부합하지 못한다면 욕을 먹어도 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역할을 할 위치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며, 그럴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 스스로 열심히 하고 노력하겠다. 그때 못한다면 크게 꾸짖고 질책을 하여도 좋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예전에 K교수사건 관련하여 성명서를 썼을때, 한 학생이 너희가 뭔데 학생을 대표하냐냐는 말을 들었다. 5.18 관련 기념부스를 만들었을 때도 그 부스가 어디에서 설치한 것인지 조차 학생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좋은 의도로 좋은 역할을 하려고 해도 학생들로부터 전혀 관심을 못 받는다. 우리는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11호 교지를 내고 학우 3분이 우리 홈페이지를 친히 찾아와 격려의 글을 남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글을 너무나도 뜻 깊게 읽었다는 그 사람들의 글을 보고, 그때 정말 학생언론으로서의 크나큰 기쁨과 뿌듯함과 함께 우리가 아직 가능성은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교편위는 언론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있고 자질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 후배들이 잘해줄 거라 믿는다. 우리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며 학생들의 복지와 안녕에 힘쓰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편위에 대한 인식, 관심, 대우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본다.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욕좀 먹어봤으면 좋겠다.


  4학년때 교편위를 나간 이후로, 우리 학교 자치단체의 미래는 없다고 자위하며 나 스스로 학교와 멀어지기 위해 바깥에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많이 했다. 다시는 포항생각 안한다고 다짐하고 집에 올라와서 지내고 있었는데, 뜬금없는 후배 한마디 때문에 교편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이렇게 장문을 남기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


  애정인지 애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교편위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자치단체의 무능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자치단체들에서도 이를 이겨낼 만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교편위에서나마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 편집장으로서 아주 작게나마 가지고 있다. 나는 교편위가 제 위치에만 설 수 있다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분명히 믿는다.


  작은 희망이지만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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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본 장문이네

교지에 실어달라고 후배들에게 보낸 글이다

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ㅇ-

by 태방 2007. 2. 15. 12:14




"인생을 선택하라!!
직업을 선택하라!!
가족을 선택하라!!

TV와 세탁기도 선택하고 미래를 선택하라
그런데 내가 왜 이따위 선택을 해야하지?
나는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로 했다."




걱정마라

절대 당신을 원망하진 않겠다

선택은 내가한다

Choose Life!

by 태방 2007. 2. 12. 17:35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118374

그동안 잠시 아이디어가 안떠올라서 -ㅇ- 고민하던중

버스 타면서 떠오른 생각이 있어서 ㅎㅎ


내가 자주 고민하는 문제가 여러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리더에 관한 문제이다

리더십이라는 애매모호한 개념속에서

실제 리더가 가져야할 요건이라덜까 노력이라덜까 능력이라덜까


리더란 자리 참으로 책임이 막중한 자리이다

책임감도 강해야 하고 능력도 있어야 하며 대인관계도 원만해야 한다

또한 사람들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고 방향을 제시해야 하기도 한

뭔가 사람 다루는데 복잡한 위치인것은 사실이다


보통 리더들은 초심자에게는 잘 맞겨지지 않는다

그 책임이 막중할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신념이 없는 리더, 목표없는 리더 역시 언제나 배제당한다


결정권자, 통수권자, 책임자

다양한 역할을 가진 리더들에게 있어서

빠지기 쉬운 함정이 하나가 있다


그 위치에서 오래 활동하고 경험이 풍부하고

그동안 가진 생각이나 신념, 앞으로 이 그룹이 나아가야 할 방향들에 대해서

사실 그 사회의 어느 구성원보다 리더가 더 많이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 전체를 책임지는 리더가 될 수 있었던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만에 빠지기 쉬운게 리더이다

자신의 경험의 잣대로 구성원의 의견을 내쳐버리기도 쉬우며

참신한 아이디어나, 생각해봐야할 비판점에 대해서도

'쟤는 뭘 몰라'라는 식으로 묵살하고 넘겨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체적인 목표 설정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 단체에 리더의 가치관이 투영되어 다함께 공감하고 나아가는 경우보다는

리더와 구성원간의 목표가 달라 충돌하고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뚝심'이라는 것을 믿고 억지로 끌고 나가는 경우가 생긴다

물론 리더 입장에서는 자신이 책임자이고 결정권자이고

자신이 고민을 많이 했고 또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만

팔로워들은 팔로워들의 나름 입장이 있는것이고

리더들은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어야한 의무가 있고 필요성이 있다




반면 팔로워들도 리더에 대한 시각이 편견으로 가득차 있는 경우가 많다

이는 특히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조직에서 더더욱 그러하게 되는데

자신의 의견과 맞지 않다고 리더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사람이라 판단하고

자신의 의견이 맞는데 리더가 몰라주고 맘대로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고

맘에 안드는 것 천지인데도 신경 일일히 못쓰는것을 무능하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직접 리더를 해볼 경우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란걸 단박에 알 수가 있다

리더는 한사람의 의견을 따르기 보다는 모두의 의견을 수합해야 하며

그 의견들을 참고는 할 수 있지만 무조건 목소리 큰 사람을 따라갈 수도 없으며

그 사회의 구성원 모두를 일일히 다 챙겨줄 수는 없으며

작은것 보다는 전체적인 틀에서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그런점들을 팔로워들이 인식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때문에 트러블이 생기고 독단과 독선을 부린다는 편견이 생겨벼리는 때가 많다




서로 이해하고 존중해주어야 한다

리더도 팔로워들의 말을 잘 들을줄 알고 냉철하게 판단하여

옳은건 옳은거대로 받아들이고 그른건 그런것대로 설득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팔로워는 일단 리더의 생각과 신념과 가치관을 믿고 따르려고 노력해야 하며

자신의 생각과 부합하지 않는 경우는 정중하게 의견개진을 통해 공적으로 피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리더가 제대로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라면 차근차근 듣고 분명히 참고를 할 것이다

리더건 팔로워건 어쨌든 그 단체, 그룹, 사회가 잘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by 태방 2007. 2. 9.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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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년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내 인생에서 내 몸이 가장 힘들었던 순간


포항부터 강릉까지 300km를 열흘간 걷는 대 장정

다른 국토대행진과 다르게

개인 짐은 물론 코펠까지 직접 들어야 하고

텐트에서 자며 숙식을 직접 해결해야 하는 일정

하루에 걷는 거리고 30키로로 짧지 않은 거리

운동이 익숙치 않았던 나로써는 어찌보면 무리였을지도 모르는 도전


정강이 근육때문에 4일째에 병원에 가는 차에 탔을때는

정말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 쏟아질뻔 했었다

셋째날 하루 38키로를 걸을때는

스텝들이 어찌나 밉던지


갈수록 검게 타들어가던 피부와

아무리 가득채워도 어느새 깨끗히 비워지는 수통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나를 괴롭히던 지긋지긋한 물집

그리고 내 완주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린 다리의 통증


정말 엄청난 고통들이었지만

이제와서 다시 사진들을 보고있자니

그 고통들은 기억이 나질 않고

다시한번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건 왜일까


힘들었지만 참으로 좋은 추억

by 태방 2007. 2. 8. 16:29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902661

60억 인간이 사는 이 지구는 참으로 특별한 별이다

참으로 특별한 별에 별 특별할것도 없는 인간들끼리 부대끼면서

신기하게도 모두가 너무나도 다른 특별한 인생들을 살고있다


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지만

내 인생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내 인생을 멋지게 살기 위해서 우리 모두 노력하고 힘쓰고 있지만

서로 부대끼며 각자가 최고의 인생이 되기위해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은 언제나 높고 내 앞길을 가로 막는것 같기만 하고

내가 하려고 하는 일마다 자꾸 딴지를 걸기만 하는것 같아 답답해 미칠 지경이지는 않는가


이런 상황에서 나는 언제나 슈퍼스타를 꿈꾼다

나에게만 특별한 인생이 아닌 모두에게 특별해 보이는 나만의 인생

사실 모두에게 각자의 멋진 인생이 기대될 수 있는 포텐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너무 평범하게만 치부해 버리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60억중의 한명의 지구별의 인간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은 나의 나만의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는가

내 인생은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특별하고 의미있으며 값진 인생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인생 나는 남들에게 막 자랑하고 싶다

난 정말 괜찮은 놈이다 난 정말 멋진 인생 살고 있다

비록 실수 투성이에 못난점 투성이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성공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가끔은 나태하고 가끔은 불성실하고 가끔은 이기적이고 못된 인생을 살고 있지만

난 그래도 언제나 나만의 특별한 인생에 절대 후회남지 않도록

항상 도전하고 발전하고 역전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해 왔다고

나이 스물셋 먹은 대한민국 건장한 남성중 나만한 멋진 인생 살고 있는 사람 없다고

나만큼 똑똑하고 나만큼 현명하고 나만큼 생각하고 고민한 사람은 없다고

나만큼 낭만적이고 나만큼 사랑하고 나만큼 로맨스를 추구하는 사람은 없다고

나만큼 재미있고 나만큼 웃게 하고 나만큼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사람은 없다고

이 세상에 당당히 말하고 멋지게 이 세상의 중심이 될만한 인간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런 자신감과 포부를 가지고 있다


음식을 겉보기만 가지고 맛을 알 수 없듯

사람도 겉만보고 내실까지 알 수 는 없는 것이다

아직 내 겉포장이 투박하고 외관이 별로여서 그렇지

첫인상과 말투 행동등이 스타 기질이 적어서 그렇지

사실 제대로 알고보면 진국이다 제대로된 남자다라는 말 들을 수 있다는

그정도 자신감과 포부는 안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내 인생 당당하게 내걸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야 어께 딱 피고 어디다가 내 인생좀 보시오 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는가


누굴 이기고 누굴 앞서서 1등하겠다는 그런 슈퍼스타가 아니다

나에게 특별한 이 인생 이 세상에서도 특별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성공하지 못해도, 유명해지지 못해도 좋다

죽기 직전까지 단 한명에게서라도 내 멋진 인생을 인정받기 위해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언젠가 찾아온 기회에 나는 인생역전 슈퍼스타가 되어

사람들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는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자신있다

by 태방 2007. 2. 3. 01:18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856423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난 약간 장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ㅇ- (물론 오바다)

언어능력이 좀 많이 부족하지 않는가 싶다

같은 뜻을 글로 표현하는데도 유창하지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개념을 단어로 표현해내는 것도 능숙치 않으며

글을 읽어도 조금만 어려우면 쉽게 이해를 못하고 두번세번 넘게 읽어야 한다


고등학교때 국어, 문학, 영어, 독일어는

어떤 과목이건 90점을 넘겨본적이 한번도 없다

대학 붙고 정철어학원에서 3개월 코스 한번 다니고

어학연수 1개월 다녀와서 운좋게 대학때 들은 영어 과목들은 B0이지만

그 이후에 들은 불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단어시험 3연속 꼴등을 하였으며

고등학교때는 정규시험, 토플, 토익, 텝스, 듣기평가 전부 꼴등을 한번씩 해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ㅇ-

그만큼 난 언어능력이 좀 많이 부족하다(물론 노력부족도 일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런 내가 뭔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

대학때 교지편집위원회에 멋모르고 덜컥 가입을 하였다

(내 인생이 크게 바뀌게된 가장 큰 계기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고등학교때 교지편집위원회는 그냥 사람들이 쓴 글 모아서

이래저래 배치하고 교정하고 편집하는 정도의 일만 했었기 때문에

난 그 생각을 하고 참으로 당당하게도 교지편집위원회에 문을 두드렸다


1학년 수습기간은 내가 뭘 했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안난다

잃어버린 1년이랄까 -ㅇ- 이세상에 개념이라는게 존재한다는걸 알게 된게

아마 2학년때쯤부터라 추측이 되기 때문에 --;;;

당시 아주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재였는데다가

집밖에서 2년간 아싸로 막살았으니 성격이 어지간이 골치덩어리여서;;

내 1학년은 즐거웠지만 별로 좋아하는 1학년 기간은 아니다;;

뭐 암튼 사설이 길어졌다.. 그건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내 교편위 생활의 시작은 2학년 부터다


교지편집위원회, 뭐 일단 교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생판 한번도 안해본 글쓰기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오는 내 글이 학교 학생들이 모두 보는(줄로만 알았던)

교지에 거의 맨 앞에 실렸을때 그때 기분은

정말이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그런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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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글을 쓴 교지의 표지와 내 글의 속표지다

http://youngs.postech.ac.kr/backup/9.pdf


 

우리학교 교편위는 다른학교 교편위와 달라서

그냥 정말 친목모임 이상의 일들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의 그런 감동이 유지된 상황에서 내가 2학년때 편집장이 되신 형이

그래도 나름 교지의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

토론회의, 세미나등 1학년때 통틀어 3번정도 했나 어렴풋이 기억나던

그런 이 사회의 지성인으로서의 고민들의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그때부터 학교, 사회,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마구 넘처 흐르기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내 생각을 쉴새없이 표현하고

친구들과 술먹으면서 밤새 생각과 고민들에 대해 교환하고 토론하고

머릿속에서 자아와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을 막상 교편위에서는 풀어내는데 약간 문제가 있었다

내가 워낙 토론 태도가 당시에는 저돌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토론을 원하고 의견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나의 태도때문에 일단 반감을 먹고 들어갔고

게다가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교편위 후배들과 이야기하는게 아직도 어렵다)

뭐 중립적 입장을 즐겨하시는 성모형이나 나와 코드가 가장 유사했던 찬수정도

그 외의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교편위 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내가 어쨌든 내 생각을 글로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글 쓰는거 자체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형식있는 글에 내 생각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담아 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지내가 난 어느새 편집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내 두번째 교지(청년과학10호)에 '사회성'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남자와 여자간의 인간관계(이성관계가 아닌 약간은 다른 두 인간으로서의 관계)

를 다룬 소주제가 내 글 속에 있었는데

우리학교는 남자가 여자보다 5배가 많기 때문에

'양성이 평등하다지만 서도 남자와 여자에 대한 배려를 1:1로 해줄 수 없다

이건 학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라는 의도로 쓴 글이

여학생회에서 앞뒤 짤라먹고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라는 것 처럼 보이게

교묘하게 편집을 당해서 이 글에대해 의견을 묻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내 글이 온 기숙사 방문앞에 모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진짜로 울고 싶었다

전자과 3학년 마의과목 전자회로1의 7번의 시험중 첫 시험을 끝내고

'우리도 이제 고생시작이다' 라고 친구들끼리 위로주 한잔씩 먹고

이번학기도 열심히 해보자라며 기숙사로 들어오고 있는 길이었는데

내가 한달간 고민하고 고민하며 쓴 글이 누더기 편집이 되어

아주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가 드러나는 모습으로 방문앞에 붙어있으니

(여학생기숙사에 붙어있던 종이에는 나에대한 온갖 욕도 있었다고 한다)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여학생회장을 주먹으로 한대 패도 기분이 나아질까 말까 했지만

최대한 이성을 찾고 여학과 대화를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것도 없이 여학회장과 집부들은 나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고

남의 글을 무단 편집, 도용하여 악의적으로 명예 훼손한 면에 대해서 전혀 뉘우치지 않고

오해를 살 수 있는 문구를 넣어 글을 쓴 점에 대해서만 내가 공개 사과및 해명문을 쓰고

사태가 마무리 되었다


그 이후로

편집장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록 글도 못쓰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내 생각하나 제대로 표현 못하는 그런 놈이지만

내 후배들까지 그러기는 정말 싫었다

내가 3년째 몸두고 있던 그런 교편위에 함께했던 후배들이기에

그들에게는 좀 더 자랑스러운 교편위를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그렇게 힘들어하였지만 몇일이고 밤샘작업도 시키고

글도 깐깐하게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고생도 많이 시켰다

그때 내 이름 달고 나온 책이 총 합쳐 5권이나 된다


의도는 좋았지만 나에게 약간의 판단미스가 있었다

나는 교편위의 역량 강화를 위해 편집디자인기술을 직접 확보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또 게다가 다른 자치단치들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기술 확보 하나 하는데 애들이 힘을 다써버려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데

시간을 거의 투자하지 못해버렸다

(덕분에 교편위 후배들은 내가 생각하는 의도대로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1년이 가고 애들은 편집프로그램인 쿽익스프레스에 도사가 되어있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교지를 만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내 이름으로 교지를 만든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최대한의 가치있는 교지를 만들기 위해 1년간 못해온 아이들의 머리 키우기를

짧지만 3달간이라도 조금은 혹독하게 시켰다

인수인계를 위해 차기 편집장인 진아에게 조금 나누라고 한상이가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난 내 이름 달고 나오는 책에 책임감을 넣고 싶었고

내가 3년간 지낸 교편위라는 곳에서 만드는 나의 마지막 결실이 이 교지라는 생각에

정말 심혈을 기울어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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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11호 교지의 표지이다




결론적으로는 90점쯤 줄 수 있는 교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10점 감점은 내 글이 들어가서 감점이었다

내 글은 이번에도 논란을 일으켰으며, 지난번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히 글 때문에 욕먹었다

왜 내 생각은 확고한데 그 글에는 그런 생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가 엄청 괴로워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교지가 나왔다

조금 두꺼운 편인 까슬까슬한 표지의 교지를 받아 포장을 열고

책을 펴보면서 주루룩 훑어보고 가만이 가슴속에 책을 뭍고 꼭 안고있던 그 순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3년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민하고 고생했던 그 모든것들이

그 하얀 책 한권을 들자마자 모두 한번에 사라지는것 같았다

그때의 감격은 정말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런 감격에 나를 한번더 비행기 태운 사건이 있었다

난 정말 이때 감격에 북바쳐 올라 누군가 붙잡고 울뻔 했던거 같다






  최지웅 (2006-03-14 17:34:58, Hit : 345, Vote : 65)
 청년과학 11호, 기쁩니다!

조금 펴보고 단번에 '우리 학교도 책다운 책이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POSTECH의 구성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나온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편집위원회 여러분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계간 IYF를 펴내는 사단법인 국제청소년연합 출판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책 만드는 것의 고통을 잘 압니다. 보람 또한 알고요.
끝까지 공대인 이전에 사회인으로서, 지성인으로서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을 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01학번 컴공과 최지웅입니다. &

  김상혁 (2006-03-16 21:47:14, Hit : 361, Vote : 60)
 청년과학 11호 감사합니다.

2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생각이 자라지 않음에 스스로를 한심해하던 사람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보아 오던 대학생의 모습이 현재의 내모습인가에 대한 의문감에
항상 고민했었지요

성숙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그저 눈앞의 현실에 치여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보지 못하는 학교의 구성원들을 바라보며 가슴아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내실있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하는
교지가 편찬되었으면 합니다.

  박명진 (2006-03-27 10:30:49, Hit : 303, Vote : 57)
 안녕하세요

저는 물리학과 석사 05학번 박명진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기숙사 휴게실에서 줏어보게 된 청년과학 11호를 보고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직설하자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다 읽고 난 뒤에 속이 확 트이는 기분과 이렇게 적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도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자 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교지를 읽어나가면서 학부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학부는 포항공대 아닌 다른 곳에서 보냈기에 지금 제가 느끼는 포항공대의 분위기가 그때의 그것과 더욱 선명하게 대조할 수 있었습니다. 교지에서 나오는 절절한 내용들은 제가 일년간 포항공대에 있으면서 고민하고 때로는 비난도 하던 부분들이었기에 교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와닿았습니다.
다시 한번, 교지편집위원회를 알게 되어 반가웠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제 포항공대에 2년 있었지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형식으로든 교지편집위원회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요~^^
내년에도 멋진 청년과학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지요. 건필하시길.

가기전에 뱀발 : 편집위에 메일을 보내고 싶었는데 홈페이지에 메일링크를 걸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길래요~~ 투고하는 글이 적었던 이유도 교지 101페이지 눈에 안띄는 곳에 단 한 곳 밖에 없어서 찾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런 글이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





글을 올려준 사람이 3명이나 되는데

내 교지를 읽고 이렇게 생각해준 사람은 이보다 많을꺼라는 생각에

감격이 정말 넘쳐 흘러 어쩔줄 몰라 했던거 같다

정말 이맛에 책을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책 만드는데 재미를 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내가 글쓰는건 자신 없어 이렇게 블로그에 쓰는 정도 이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단순히 책을 만들고 읽는 사람이 그것을 행복하게 받

 

아들여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나에게는 크나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그 이후 민평연에서 대학생 아카데미 사업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료집 만드는 일은 내가 먼저 나서면서

지금까지 또 3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


몸은 힘들고 짜증은 나지만

사람들이 글 안주고 디지인 안떠오르면 짜증나고 귀찮기도 하지만

다 만들고 난 이후의 그 희열을 잊을수가 없기에

컴퓨터에서 쿽 익스프레스를 지울수가 없다 ㅎㅎ

by 태방 2007. 2. 1. 2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