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nogari9/100033856423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난 약간 장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ㅇ- (물론 오바다)
언어능력이 좀 많이 부족하지 않는가 싶다
같은 뜻을 글로 표현하는데도 유창하지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개념을 단어로 표현해내는 것도 능숙치 않으며
글을 읽어도 조금만 어려우면 쉽게 이해를 못하고 두번세번 넘게 읽어야 한다
고등학교때 국어, 문학, 영어, 독일어는
어떤 과목이건 90점을 넘겨본적이 한번도 없다
대학 붙고 정철어학원에서 3개월 코스 한번 다니고
어학연수 1개월 다녀와서 운좋게 대학때 들은 영어 과목들은 B0이지만
그 이후에 들은 불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단어시험 3연속 꼴등을 하였으며
고등학교때는 정규시험, 토플, 토익, 텝스, 듣기평가 전부 꼴등을 한번씩 해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ㅇ-
그만큼 난 언어능력이 좀 많이 부족하다(물론 노력부족도 일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런 내가 뭔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
대학때 교지편집위원회에 멋모르고 덜컥 가입을 하였다
(내 인생이 크게 바뀌게된 가장 큰 계기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고등학교때 교지편집위원회는 그냥 사람들이 쓴 글 모아서
이래저래 배치하고 교정하고 편집하는 정도의 일만 했었기 때문에
난 그 생각을 하고 참으로 당당하게도 교지편집위원회에 문을 두드렸다
1학년 수습기간은 내가 뭘 했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안난다
잃어버린 1년이랄까 -ㅇ- 이세상에 개념이라는게 존재한다는걸 알게 된게
아마 2학년때쯤부터라 추측이 되기 때문에 --;;;
당시 아주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재였는데다가
집밖에서 2년간 아싸로 막살았으니 성격이 어지간이 골치덩어리여서;;
내 1학년은 즐거웠지만 별로 좋아하는 1학년 기간은 아니다;;
뭐 암튼 사설이 길어졌다.. 그건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내 교편위 생활의 시작은 2학년 부터다
교지편집위원회, 뭐 일단 교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생판 한번도 안해본 글쓰기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오는 내 글이 학교 학생들이 모두 보는(줄로만 알았던)
교지에 거의 맨 앞에 실렸을때 그때 기분은
정말이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그런 기분이었다
내가 처음 글을 쓴 교지의 표지와 내 글의 속표지다
http://youngs.postech.ac.kr/backup/9.pdf
우리학교 교편위는 다른학교 교편위와 달라서
그냥 정말 친목모임 이상의 일들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의 그런 감동이 유지된 상황에서 내가 2학년때 편집장이 되신 형이
그래도 나름 교지의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
토론회의, 세미나등 1학년때 통틀어 3번정도 했나 어렴풋이 기억나던
그런 이 사회의 지성인으로서의 고민들의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그때부터 학교, 사회,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마구 넘처 흐르기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내 생각을 쉴새없이 표현하고
친구들과 술먹으면서 밤새 생각과 고민들에 대해 교환하고 토론하고
머릿속에서 자아와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을 막상 교편위에서는 풀어내는데 약간 문제가 있었다
내가 워낙 토론 태도가 당시에는 저돌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토론을 원하고 의견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나의 태도때문에 일단 반감을 먹고 들어갔고
게다가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교편위 후배들과 이야기하는게 아직도 어렵다)
뭐 중립적 입장을 즐겨하시는 성모형이나 나와 코드가 가장 유사했던 찬수정도
그 외의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교편위 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내가 어쨌든 내 생각을 글로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글 쓰는거 자체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형식있는 글에 내 생각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담아 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지내가 난 어느새 편집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내 두번째 교지(청년과학10호)에 '사회성'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남자와 여자간의 인간관계(이성관계가 아닌 약간은 다른 두 인간으로서의 관계)
를 다룬 소주제가 내 글 속에 있었는데
우리학교는 남자가 여자보다 5배가 많기 때문에
'양성이 평등하다지만 서도 남자와 여자에 대한 배려를 1:1로 해줄 수 없다
이건 학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라는 의도로 쓴 글이
여학생회에서 앞뒤 짤라먹고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라는 것 처럼 보이게
교묘하게 편집을 당해서 이 글에대해 의견을 묻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내 글이 온 기숙사 방문앞에 모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진짜로 울고 싶었다
전자과 3학년 마의과목 전자회로1의 7번의 시험중 첫 시험을 끝내고
'우리도 이제 고생시작이다' 라고 친구들끼리 위로주 한잔씩 먹고
이번학기도 열심히 해보자라며 기숙사로 들어오고 있는 길이었는데
내가 한달간 고민하고 고민하며 쓴 글이 누더기 편집이 되어
아주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가 드러나는 모습으로 방문앞에 붙어있으니
(여학생기숙사에 붙어있던 종이에는 나에대한 온갖 욕도 있었다고 한다)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여학생회장을 주먹으로 한대 패도 기분이 나아질까 말까 했지만
최대한 이성을 찾고 여학과 대화를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것도 없이 여학회장과 집부들은 나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고
남의 글을 무단 편집, 도용하여 악의적으로 명예 훼손한 면에 대해서 전혀 뉘우치지 않고
오해를 살 수 있는 문구를 넣어 글을 쓴 점에 대해서만 내가 공개 사과및 해명문을 쓰고
사태가 마무리 되었다
그 이후로
편집장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록 글도 못쓰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내 생각하나 제대로 표현 못하는 그런 놈이지만
내 후배들까지 그러기는 정말 싫었다
내가 3년째 몸두고 있던 그런 교편위에 함께했던 후배들이기에
그들에게는 좀 더 자랑스러운 교편위를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그렇게 힘들어하였지만 몇일이고 밤샘작업도 시키고
글도 깐깐하게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고생도 많이 시켰다
그때 내 이름 달고 나온 책이 총 합쳐 5권이나 된다
의도는 좋았지만 나에게 약간의 판단미스가 있었다
나는 교편위의 역량 강화를 위해 편집디자인기술을 직접 확보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또 게다가 다른 자치단치들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기술 확보 하나 하는데 애들이 힘을 다써버려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데
시간을 거의 투자하지 못해버렸다
(덕분에 교편위 후배들은 내가 생각하는 의도대로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1년이 가고 애들은 편집프로그램인 쿽익스프레스에 도사가 되어있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교지를 만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내 이름으로 교지를 만든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최대한의 가치있는 교지를 만들기 위해 1년간 못해온 아이들의 머리 키우기를
짧지만 3달간이라도 조금은 혹독하게 시켰다
인수인계를 위해 차기 편집장인 진아에게 조금 나누라고 한상이가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난 내 이름 달고 나오는 책에 책임감을 넣고 싶었고
내가 3년간 지낸 교편위라는 곳에서 만드는 나의 마지막 결실이 이 교지라는 생각에
정말 심혈을 기울어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만든 11호 교지의 표지이다
결론적으로는 90점쯤 줄 수 있는 교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10점 감점은 내 글이 들어가서 감점이었다
내 글은 이번에도 논란을 일으켰으며, 지난번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히 글 때문에 욕먹었다
왜 내 생각은 확고한데 그 글에는 그런 생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가 엄청 괴로워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교지가 나왔다
조금 두꺼운 편인 까슬까슬한 표지의 교지를 받아 포장을 열고
책을 펴보면서 주루룩 훑어보고 가만이 가슴속에 책을 뭍고 꼭 안고있던 그 순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3년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민하고 고생했던 그 모든것들이
그 하얀 책 한권을 들자마자 모두 한번에 사라지는것 같았다
그때의 감격은 정말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런 감격에 나를 한번더 비행기 태운 사건이 있었다
난 정말 이때 감격에 북바쳐 올라 누군가 붙잡고 울뻔 했던거 같다
조금 펴보고 단번에 '우리 학교도 책다운 책이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POSTECH의 구성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나온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편집위원회 여러분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계간 IYF를 펴내는 사단법인 국제청소년연합 출판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책 만드는 것의 고통을 잘 압니다. 보람 또한 알고요. 끝까지 공대인 이전에 사회인으로서, 지성인으로서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을 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01학번 컴공과 최지웅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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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생각이 자라지 않음에 스스로를 한심해하던 사람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보아 오던 대학생의 모습이 현재의 내모습인가에 대한 의문감에 항상 고민했었지요
성숙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그저 눈앞의 현실에 치여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보지 못하는 학교의 구성원들을 바라보며 가슴아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내실있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하는 교지가 편찬되었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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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물리학과 석사 05학번 박명진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기숙사 휴게실에서 줏어보게 된 청년과학 11호를 보고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직설하자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다 읽고 난 뒤에 속이 확 트이는 기분과 이렇게 적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도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자 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교지를 읽어나가면서 학부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학부는 포항공대 아닌 다른 곳에서 보냈기에 지금 제가 느끼는 포항공대의 분위기가 그때의 그것과 더욱 선명하게 대조할 수 있었습니다. 교지에서 나오는 절절한 내용들은 제가 일년간 포항공대에 있으면서 고민하고 때로는 비난도 하던 부분들이었기에 교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와닿았습니다. 다시 한번, 교지편집위원회를 알게 되어 반가웠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제 포항공대에 2년 있었지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형식으로든 교지편집위원회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요~^^ 내년에도 멋진 청년과학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지요. 건필하시길.
가기전에 뱀발 : 편집위에 메일을 보내고 싶었는데 홈페이지에 메일링크를 걸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길래요~~ 투고하는 글이 적었던 이유도 교지 101페이지 눈에 안띄는 곳에 단 한 곳 밖에 없어서 찾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 |
요런 글이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
글을 올려준 사람이 3명이나 되는데
내 교지를 읽고 이렇게 생각해준 사람은 이보다 많을꺼라는 생각에
감격이 정말 넘쳐 흘러 어쩔줄 몰라 했던거 같다
정말 이맛에 책을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책 만드는데 재미를 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내가 글쓰는건 자신 없어 이렇게 블로그에 쓰는 정도 이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단순히 책을 만들고 읽는 사람이 그것을 행복하게 받
아들여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나에게는 크나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그 이후 민평연에서 대학생 아카데미 사업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료집 만드는 일은 내가 먼저 나서면서
지금까지 또 3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
몸은 힘들고 짜증은 나지만
사람들이 글 안주고 디지인 안떠오르면 짜증나고 귀찮기도 하지만
다 만들고 난 이후의 그 희열을 잊을수가 없기에
컴퓨터에서 쿽 익스프레스를 지울수가 없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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