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nogari9/100034820146


보드 (Board) ScratchPad
글쓴이 (From) yoyofly (써니)
날짜/시간 (Date) 2007년 2월 28일 17시 20분 54초
제 목 (Title) 어제 중앙일보 기사의 후배와 24시간을 함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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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안쓰러워 이렇게 글을 씁니다.

 

며칠전 중앙일보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포항공대 수석입학에 수석졸업

서울대 의대에 편입한 학생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만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서울대 의대, 법대, 경희대 한의대를 입학한 사람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고 매년 졸업시즌에 각 학교 수석 졸업자들을 인터뷰 하

는 경우가 많아, 자신의 기사도 그런 종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인터뷰에

응했겠죠..

 

한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처음부터 계속~ 고등학교때 이야기, 대학교

때 이야기, 과학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 또한 의학도로서의 비전,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 졸업식 약력소개에 나올만한 예상했던 질문들이 이어졌다고 합

니다. 그리고는 공식 인터뷰가 끝나 갈때 쯤, 기자가, 요즘 이공계 위기다 뭐다

말이 많은데, 우리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볼까요? 했다고 하네요. 그래서

이 학우는 '그런 주제로는 제가 함부로 이야기 할 위치에 있지 않고, 또 학교와

학교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누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그랬더니 기자가 아~ 이건 전혀 기사화 되지 않을거라고

말하며 자신이 아는 사람도 그 쪽에 있어서 그쪽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 좀 듣고

싶어서 그런다고 말했다고 하네요. 말하면서 몇번이나 이 말들은 기사화 시켜

서는 안된다고 확인하면서 말했고 서로 인터뷰가 아니라 여담으로 친구처럼 이

야기 했다고하더라구요. 기사에 실린 일문일답은 그 때 나온 이야기일 것입니

다. 아다르고 어다른 우리 말에 기자의 선정적인 단어 선택과 글짓기로 아주 자

극적인 글하나가 완성된것이죠.

 

저는 사실 중앙일보 1면에 자기 기사가 실린다고 저한테만 자랑하는 그 아이를

보면서 대학 수석 졸업자의 수기가 1면에 실릴만한 이야기인가 생각되어 시사

적인 이야기를 끄집어 내지 않을까 걱정이 됐었고, 그 말을 했지만 그 아이는

그런거 아니라며 그 쪽 이야기를 좀 하긴 했는데 기사에 쓰지는 않기로 했다면

서 그냥 지금까지의 수석 졸업자 기사같은 거라고 전혀 의심없이 말했습니다.

저는 신문이 나오는 날 아침에 그 아이의 울먹이는 전화 통화 소리에 잠을 깼습

니다. 전후 내용은 몰랐지만.. "그런 나쁜 아저씨가 어디있어." 이 소리만 반

복해서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잠이 들었다가 깨서 눈이 빨개진 채로 기사

를 보고 있는 그 동생을 보고 깜짝놀랐습니다. 저도 그 기사를 보고 가슴이 내려

앉는 느낌이었습니다. 기가막힌 제목에 따가울 정도로 자극적인 문장...

교묘한 기사더군요. 분명 아이가 그런 뉘앙스의 말을 기자가 말한 '여담' 타임에

하긴했겠지만, 그 말이 저렇게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놀라울 지경이었습니다.

중학교때 과학 선생님이 멋져보여서 과학경시를 했고, 과학고를 입학하고, 화학

경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우리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면서 이 아이는 저

처럼 혹은 저 이상으로 자신의 택한 과학의 길에 확신과 자긍심이 있었을 것입

니다. 그러다가 자세한 내막은 저도 모르지만 2~3학년 때 부터 이 길에 실망하

기도 하고 진짜 자기 적성이 무엇인가 고민하며 많이 방황했다고 하네요. 그 동

안 선배님 그리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이런저런 이공계가 고쳐야 할 점들

을 듣기도 했겠죠. 기자가 학생이 생각하는 이공계 위기의 원인에 대해 물었

을때, 그 때 들었던 이야기나, 방황하던 시기에 자신이 생각하던 이야기가 나

왔을 것입니다. 기사에 실려있던 글들은 사실은 제가 생각했던 이공계의 문제

들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깜짝놀랐습니다.

 

어제 하루종일~ KBS, MBC 각종 신문사, 악플들에 시달리는 후배를 보며 드는

생각은.. 만약 저 아이가 이공계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때

문에 저렇게 공격을 받는거라면, 저건 나, 그리고 저와 이야기를 나눴던 수

많은 제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을 대신해서 혼자 맞는거구나.. 였습니다.

만약 문제 의식의 내용이 그닥 틀린 것이 아니라면 기자의 흑심을 전혀 의심

하지 않았던, 좀 더 경험이 풍부하지 못했던 잘못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리고 그 잘못이라면, 그 벌은.. 너무.. 너무너무 너무 크다는 생각이 들었

습니다.

 

기자한테 전화했더니 기자는 자기는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는데 부장이

여담부분만 강조해서 기사를 쓰라 했다고 책임회피하고, 어렵게 부장하고 연결

해서 따졌더니, 한 번은 터져야할 사회 문제고, 학생이 적당한 상징이 될 것 같

아 기사로 냈다고 했다더군요. 결국은 자신들이 하고 싶던 얘기였는데 학생이

관심을 유발하기 적당한 상징물이라 그 후배는 '상징물'로 쓰이고 자신들이 쓰

고 싶었던 글을 쓴거죠.

 

오후에 왔던 KBS 직원과의 통화에서, '중앙일보 기사가 잘못 된 것이라면 뉴스

에서 육성으로 해명하는게 낫지 않겠느냐?' 라는 제안에 불에 덴 듯, 너무 상

처를 많이 받아서 이제 더이상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다고 웅크리는 그 아이

를 보며.. 저도 함께 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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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OSB

 

사실 나였으면 저런 인터뷰 하고도 남았겠다 싶어서

그냥 그려려니 하고 있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우리학교 나온 사람중에 저렇게 당당한 어체로

이공계 기피문제를 적나라하게 인터뷰 할 사람이 많지 않을 뿐더러

영은이가 학교 문제에 대해 저렇게 심각하게 신문기사에 보도될 내용을

인터뷰했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았었는데

역시저러한 이유가 있었구나

저런저런

 

중앙일보 이색히들은 진짜 용서가 안돼

by 태방 2007. 3. 1. 01:59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741194

포스텍 수석 입학·졸업 → 서울대 의대 편입
[중앙일보 2007-02-27 09:05]    
[중앙일보 권호 기자] 부산 과학고 재학 때부터 각종 과학경시대회 금상을 휩쓴 재원, 고등학교 2년 만에 조기 졸업, 포항공대 수석 입학.수석 졸업(화학과), 제1기 대통령 과학 장학생….
 

14일 열린 포스텍(옛 포항공대) 졸업식에서 학부 수석 졸업자의 영예를 차지한 김영은(22.여.사진)씨. 22년의 짧은 이력만 봐도 '한국 과학계의 미래'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김씨는 졸업과 함께 실험실을 뛰쳐나왔다. 의사가 되기 위해서다. 그는 서울대 의대 편입시험에 합격해 다음달부터 본과 수업을 듣는다.

왜 '잘 나가는 과학자'의 꿈을 접었을까. 기자는 포스텍 수석 졸업자가 서울대 의대로 옮겼다는 얘기를 듣고 김씨를 접촉했다. 26일 낮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날 수 있었다. 김씨는 "이공계에선 박사 학위를 따도 미래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답답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공계 위기는)우수한 인재가 오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비전을 제시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진단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지금까지의 경력만 보면 과학자로 대성할 가능성이 큰데.

"교수님께서 유학만 가면 어렵지 않게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고, 교수직도 개런티(보장)가 되는 길이라고 말해주셨을 때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초과학자가 되겠다는 미련을 버린 지금은 인체로 관심을 돌리고 있다."

-과학자 꿈은 어떻게 가지게 됐나.

"중학교 때 만난 과학선생님 영향이 컸다. 칠판에 쓰고 외우는 과학이 아니라 비커와 스포이트를 이용해 직접 실험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호기심이 과학자의 길로 이끈 것 같다."

-대학생활은 어땠나.

"1학년 때부터 3학년까진 생화학 공부에 빠지면서 과학자의 길을 차근차근 밟았다. 그러던 중 연구실의 선배들을 보면서 회의가 들었다. 유명 저널에 논문을 실으려고 연구하는 것 같았다. 뛰어난 과학자가 아닌 유수 대학의 교수가 목표였다. '연구는 수단에 불과하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실망하기 시작했다."

-이공계의 위기라고 하는데.

"우수 학생이 몰리지 않는 것이 아니다. 비전이 없기 때문이다. 학부 졸업하고 일반 기업에 취업하면 허드렛일이나 한다. 화학과는 설거지(실험기구 청소), 공대는 공장 관리를 맡는다고 자조 섞인 말들을 한다."

-박사가 되면 다르지 않겠나.

"박사를 따도 마찬가지다. 진급에 한계가 있고, 이른 나이에 잘릴까봐 걱정하는 선배가 많다."

-실험실의 분위기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의 실험실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놀아도 연구실에서 놀아야 한다' '아파도 쉰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게 불문율이다. 효용과 창의성을 기대하기 힘든 풍토다."

-교수들은 어떤가.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교수가 왕'이라는 생각이 일반화된 것 같다. 학생을 '내가 성장시켜야 할 인재'라고 감싸는 게 아니라 부리는 존재로 보는 듯하다.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며 가르쳐 주기보다 복종을 강요할 때가 많다. '대학원생은 군인과 똑같다'는 말도 있다."

권호 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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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방(nogari9)...

예전에 동아리 한학기 정도 같이했었던 친군데;;
뭐 틀린말은 하나도 아니지

by 태방 2007. 2. 27. 09:08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737959


피지알을 돌던중 어떤 글에 있던 리플

본문 내용은 요약하면

어찌저찌해서 어떤 여자와 사귀게 되었는데

배려도 많이 해주고 자신을 많이 좋아하기도 하고

자신도 많이 좋아해서 잘 사귀고 있다가

여자가 편입준비를 시작한 이후로 바빠져서 일부러 남자를 멀리하다가

결국은 연애할 시간이 없다며 남자에게 이별을 통보한다는 내용



 

하얀그림자 (2007-02-26 23:31:41)
원래 남자는 사랑과 일이라던가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움켜쥐려고 하지만 여자는 대부분 한쪽은 포기하더군요. 뭐 그냥 시간이 약이다 생각하세요. 어차피 시간 지나면 다 잊혀질겁니다. 그리고 정말 그 여자분을 좋아하신다면 그 편입준비 하는데 방해 되지 않는 게 올바른 판단 아닐까요.




Sex and the City에서도 이런 장면이 하나 나온다

빅이 캐리와 상의 없이 갑자기 파리로 사업차 떠난다는 말을 하는데

(몇달이었나 기억이 나질 않는다만 꽤 오랜기간동안)

캐리는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파리로 가버린다는 사실에 분노를 하고 심하게 다툰다

하지만 캐리는 빅을 용서하고 자신이 같이 파리로 따라가서 글을 쓰면 된다며

파리에 가겠다고 하지만 빅은 캐리가 빅을 위해 자신의 생활을 포기하는 것을 보고

너무 마음쓰지 말라고 하고, 캐리는 이에 분노하며 둘은 결별을 하게 된다


대충 빅은 사랑도 중요하지만 일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잠시 일을 다녀오겠다는 마음이었을테고

캐리는 빅과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일도 포기했지만 빅이 이를 이해해주지 않자 화가나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궂이 일과 사랑을 구분지어 놓고 생각할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 두가지가 충돌하게 되는 경우는 주변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그럴때 남녀가 선택하는 방법의 차이랄까

사실 나도 두가지 모두 함께 할 수 있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섹스앤더시티를 보면서도 캐리의 행동이 전혀 이해가 가질 않았었기도 했다

하지만 저 리플을 보고 나니, 남녀간에 그러한 차이가 있을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르겠다

뭐가 정답이다 확언할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은 마음의 문제이고 일은 현실의 문제인데

이 두가지중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가 가질 않는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둘 다 할 수 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꼭 만나야만 사랑이 아니고 꼭 데이트해야만 사랑은 아닌데도

그렇게 생각하고 일을 위해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모습들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아직 내가 풋내기라 이런 생각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by 태방 2007. 2. 27. 02:22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707090

대한민국에만 있는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는 이성관계에 있어서 남자가 선빵을 먼저 날려야 하는 구조이다

남자가 먼저 맘에드는 여자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고 구애하고 정성을 들이며

여자를 설득시켜 사랑을 쟁취하는 구조랄까


사실 이거는 남성중심의 입장이고

여성의 입장에서 보면

남자의 사랑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여성은 평소에 자신의 매력을 발산하며

주변의 맘에드는 남자들에게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어필을 하고

그 어필에 남자가 다가오기를 기다리는 그런 구조


이러한 정형화된 구조 내에서

남자건 여자건 모두 불만을 가지는것은 당연하다

남자의 경우는 먼저 다가가서 선빵을 날려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용기와 선빵의 능력이 부담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반면 여자의 경우는

여자가 먼저 좋아하더라도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는게 부담스러울 뿐 더러

자신의 선택권보다는 타인에게 선택받아야 하는 수동적 상황이 되어버린다


남자들도 불만이고 여자들도 불만이지만

사실 이러한 구조내에서(남성을 두둔하는 의미에서)

남자만이 가지는 불만이 한가지가 더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누굴 좋아하다가 아니게 되는 경우 생기는 심적 부담은

이러한 구조 내에서는 남성이 모두 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우 수동적 입장이기 때문에

사귀기 전의 심적 부담이 심리적으로 훨씬 적지만

남자의 경우 적극적 입장이기 때문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적극적으로 대시를 하다가 낭패를 볼 경우

그 심적 부담을 스스로가 모두 안아야 한다는 문제가 생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 심적부담은 심히 과한것이며

그런 의미에서 이런 심적부담을 이겨내고 과감히 다가간 남성들의 용기가

결코 가벼운 용기가 아니라는거 역시 강조하고 싶다


뭐 모든 경우가 남성이 능동적이고 여성이 수동적인 경우는 아니며

모두가 이러한 불만을 가지고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사랑 싸움에 있어서 선빵의 용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에 대해

여성들이 조금이나마 알아주었으면 하는 바람과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 역시 이러한 용기를 가지며 적극적 입장을 가지는 문화가

한국 사회에 자리잡았으면 하는 의미에서 -ㅇ-


사실은 이런 현실이 쬐꼼은 억울해서;; ㅎㅎ

by 태방 2007. 2. 26. 12:11
by 태방 2007. 2. 24. 08:15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403363

(일부러 제목 한번 거창하게 지어봤다 -ㅇ-)

 

인생은 언제나 외부적이든 내부적이든 갈등이 존재한다

외부적 갈등이야 대화하고 협의하고 조정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지만

내면적 갈등의 문제는 한 자아 속의 다양한 가치관의 갈등이고

그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쪽의 가치관을 상실하지 않는 이상 해결될 수 없는

한쪽이 죽어야만 이기는 싸움이기에 더욱 복잡하고 고민이 많기 마련이다

 

하지만 인생 속에서 이러한 갈등은 사람을 한층 성숙되게 하고

바람직한 사고방향을 잡는다면 바람직한 인격형성에 도움을 준다

 

이러한 갈등들은 (철학적 고민이 아닌이상) 대부분 현실적인 고민을 동반한다

자신에게 여력이 있다면,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냥 현실적인 고민에 대해 결정을 해버림으로써 경험을 통해

내면적인 갈등을 해결해 버리는 방법이 있을수도 있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20대의 패기와 열정으로 성숙하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점점 사회에 가까운 인간이 되어가면서

잃기 싫은 것들, 잡고싶은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놓치기 싫으면 결정하지 않고 가만히 순리대로 살 수밖에 없기에

이러한 내면적 고민들을 애써 무시하고 현실로 돌아와 버리는 경우가 잦아진다

덕분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정임에도 자기합리화하며 그저그런 인생을 사는 경우가 늘어나게 된다

 

단순한 사람이 인생 편하게 산다고

이런 고찰을 열심히 안하면 선택이 바로 경험이 되고

그 경험이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의 성공과 실패를 좌주하기 때문에

그냥 고민없이 간단하게 인생을 편하게 살 수 가 있다

잃을것이 없다면 그냥 아무거나 골라 버리는게

어찌보면 이리저리 재가면서 판단하는 거 보다 편할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대학생때가 한때

청년실업이다 뭐다 20대부터 챙기기에 열중하는 사회 분위기에 맞춰

게다가 사실 아무것도 아닌것이지만 그나마 가진것을 지키기 위해 쓸데없이 억지 부리는 내 모습을 보며

나도 이제 인생 한심하게 사는 날이 시작되는거 아닌가 하는 작은 걱정을 가지게 된다

 

인생 편하게 못살하도 인생 후회없이 살려고 했는데

결국 나란인간도 속물이 되어가는가

by 태방 2007. 2. 17. 02:40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340231

포항 생각은 더 이상 안하려고 했는데


전자전기공학과 03 김태현

前 포항공과대학교 교지편집위원회 2005학년도 편집장


  어제 저녁 오랜만에 한 후배가 나에게 MSN 말을 걸어 왔다. 내가 몸담고 있던 교지편집위원회(이하 교편위)에서 작년까지 편집장을 맞고 있던 후배 녀석이었다. 교편위를 안한지는 몇 개월이나 지났지만 내가 전 편집장이었던 사실은 변함이 없고, 그 친구 역시 교편위임은 변함이 없었다. 당연하게 우리는 자연스레 교편위 이야기를 이래저래 하게 되었다.


  나에게 상담하고 싶은 게 있는 것 같다. 총학에서 무리한 요구를 한다고 한다. 이번 호 교지의 발행처에 '교지편집위원회'에다가 '총학생회' 자신들의 이름을 덧붙여 달라고 한단다. 그래야 광고 대행사에서 광고를 따기가 좀 더 쉽다고 했단다.


 난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게 과연 맞는 소리인가? 어느 학교에서도 총학이 관리하고 있는 교편위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그 어떠한 명분으로도 발행처에 총학생회 이름을 넣을 수는 없었다.


  사실 현실적으로도 총학생회는 교편위에 아무런 영향력을 주고 있지 않으며, 교지 발간에 학생회비는 거짓말 안하고 단 한 푼도 안 들어간다. 한국외대의 경우 연간 운영비만 3천만원이 넘게 지원을 받지만, 우리는 운영비로 한 백만 원쯤 받으면 많이 받은 거라고 좋아한다. 우리에게 관심은 있는가 모르겠다. 아마 총학생회에서 교편위 편집장이 누가 되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일 꺼라 본다.


  아마 둘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아무 생각없이 우리에게 그런 제안을 했거나, 그들 머리에 교편위는 무시 받아 마땅한 단체라는 무의식속의 고정관념이 들어 있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듯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말이다. 내 생각에는 후자가 거의 확실하지 않는가 싶다.


 그동안 우리는 학생들에게, 또 자치단체들에게 열심히 무시 받아왔고 또 그렇게 12년을 보내왔다. 까놓고 말해서 우리학교 학생 중 우리가 교지를 만들고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학생이 몇 퍼센트나  될까? 내 주변 친구들에게 내가 교편위 활동을 했다고 말하면 교편위가 뭔지 물어보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심지어 2004년 까지는 공식명칭이 '청년과학'이었기 때문에 교지가 있다는 것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았었다.


  그런 교편위를 학생들에게 인식시키고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최종적으로는 우리가 학생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기 위해 나름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노력을 해왔다. 뭐 이제는 퇴물에 가까운 OB가 되었지만, 능력과 선택의 부족이었을 뿐 내 노력은 탓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 안타깝지만 난 편집장 임기동안 좋지 못한 선택과 조금 부족한 리더십으로 학생들에게 여전히 무시 받는 교편위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자치단체들 사이에서도 우리는 영 찬밥 신세이다. 학생들을 우선한다는 자치단체들이 자신들의 단체의 이익을 위해 서로 헐뜯고 깎아내리기 안달이다. 교편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몇주째 아이디어가 안 떠올라 글을 미루고 미룬 것도 아니오, 3일 밤을 새가면서 편집 수정보고 아슬아슬 마감한 것도 아니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맹비난을 받으며 교편위의 무능함을 질책 받았던 것도 아니다. 나와 교편위에 함께 있는 많은 교편위원들의 노력과 만들어낸 성과물, 그 가치들이 철저히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일이다.


  자치단체들로 부터 우리의 결과물들이 매도당하고 무시당하고 이용당한 일은 정말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첫 번째 유명한 사건은 여학생회와 관련된 일이다. 내가 3학년 때, 3월에 전 편집장 형이 만드신 교지가 나왔다. 그때 난 편집장이었고, 또 내가 쓴 글도 그 교지에 실려 있었다. 교지가 배포된 지 몇 주 안 되었을 때었다. 나는 전자과 3학년들이 제일 힘들어 한다는 전자회로1의 1차 중간고사를 치고,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지며 기분 좋게 방에 들어가고 있었다.


  난데없이 내가 쓴 글이 앞뒤 잘려 난도질당한 채로 온 기숙사 정문에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뜬구름 같은 문장과 함께 볼펜과 A4에는 내 글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실려 있었다. 그 종이 아래에는 여학생회라는 당당한 표식이 함께 있었다.


  난 여학생회로부터 어떠한 소식도 듣지 못했다. 아니 그보다 내 글이 왜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높은 형식으로 앞뒤가 잘려서 편집되어있는지가 황당했다. 내가 편집장이긴 했지만 국어실력, 어휘능력, 문장능력 등 그 어느 것 하나 잘난 구석이 없었고, 내가 쓴 글이 나조차도 그다지 자랑스러워하지 못할 정도로 초보 수준의 에세이기는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정도로 오해살 수 있도록 편집되어버리니 내가 읽어도 글 쓴 놈이 나쁜 놈으로 보이는 글이 되어버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여학생회장과 집행부를 만나 이유를 물었다. 그들은 너무나 당당했다. 이런 글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이런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글쓴이 앞에서 그렇게 말하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짜증나기 그지없었지만 최대한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난 그들에게, '글쓴이의 동의 없이 남의 글을 무단 편집, 도용하여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사용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교지는 저작권이 없다느니, 학생 모두의 글이라느니 하면서 이상한 소리를 해댔고, 오히려 오해를 살만한 글을 쓴 나에게 비난을 퍼붓기 시작했다.


  난 정신이 혼란했다. 과연 내가 이런 대우를 받을 정도로 잘못을 한 것인가?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난 충분히 설명할 생각이 있었고, 그게 문제라면 나에게 이야기 하고 오해를 풀면 그만이었다. 그들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극단적인 방법으로 나를 비난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미안한 마음 하나 없이 당당했다. 결국 내가 글에 대한 해명문과 오해를 불러일으킨데 대한 대자보를 붙이고 일이 정리되었다


  이것이 자치단체 속에서 교편위의 위치를 느끼게 된 가장 첫번째 사건중 하나이다.


  두 번째 사건은 좀 더 황당했다. 소위 말하는 내부자의 소행이랄까? 그 때문에 조금 더 타격이 컸다.

  2006학년도 20대 총학생회장을 맡은 학우는 3학년 초까지 나와 함께 교편위 활동을 해온 친구였다. 그러다 19대 총학생회 출범과 동시에 교편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총학생회와의 협력이 필요하고, 그러기 위해 자신이 총학생회 편집부장으로 들어가 교편위의 활동을 지원해 주겠다는 제의를 했다.


  나는 뭐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또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총학에 아는 사람 하나 생기는 게 나쁜 것은 아니기에, 또 개인의 결정에 내가 간섭할 이유도 없기에, 그냥 좋다고 하고 형식상 그 친구는 교편위에서 총학생회로 이동했다.


  그 당시 총학생회장과 그 친구는 우리에게 Union을 만들어 볼 것을 제안하였다. 당시 자치단체 사이에서 교편위는 ‘실무가 없는 놀고먹는 단체다’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난 그 허물을 탈피하고자 Union의 발간에 ‘적극 도움을 주겠다’ 약속을 하였다.


  난 처음에 총학생회가 주도하는 일인 줄 알았는데, 교편위에서 주도를 해달라는 요청도 들어왔다. 그래서 난 아예 우리가 전체적인 총괄을 다 할테니 그렇게 알라고 통보를 하고, Union을 만들 여력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솔직히 글 써본 것 이상의 활동을 안 해본 애들이었기 때문에, 다른 학교 교지에서도 잘 하지않는 편집기술 확보에서 부터 기획, 편집, 발행, 배포에 이르기 까지 교편위를 중심으로 일을 진행시켜 나갔다. 다른 다치단체들로 부터 우리가 일을 안 하는 단체는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었고, 또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관장하는 대신 우리 이름을 걸고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책에 자부심과 당당함을 좀 더 담고 싶었기 때문에 그렇게 일을 진행하였다.


  덕분에 교편위 후배들만 죽어났다. 밤샘작업은 필수였고, 학업은 뒷전인 경우도 허다했다. 이제화서는 내가 뭔 짓을 시켰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난 어쨌든 자치단체들의 그런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고 나는 그들이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기 위해, 조금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쨌든 정말 열심히 했다.


  덕분에 아주 성공적으로 Union 세권과 포카전 안내책자가 만들어 졌다. 나 또한 뿌듯했고, 위원들도 뿌듯해했다. 하지만 모두들 조금은 아쉬워했다. 우리가 책 만드느냐고 언론의 역할을 많이 못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난 기대가 있었다. 우리가 자치단체로 인정을 받고 다른 단체들처럼 함께 협력관계에 들어가면 우리가 언론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을꺼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믿음과 기대는 전혀 실현되지 못했다. 시작은 총학생회 선거 때이다. 20대 총학생회선거 1번 선본이 앞에서 언급했던 교편위 출신의 총학생회 편집부장이었다. 나 역시 이런저런 이유와 뜻을 품고 2번 선본으로 나섰기 때문에 상대 선본이 연설을 할때 듣고 있었다. 1번 선본의 찬조 연설자가 나와 1번 선본 총학생회장 후보를 찬조하고 있을때 였다.


  난 분명이 들었다. 총학생회장 후보의 여러 업적을 말하는 도중에 분명 Union 발간이 들어있었다. 게다가 마치 자신이 전부 만든 것과 같은 뉘앙스의 문장이었다. 나와 함께 있던 몇몇의 교편위 위원들은 정말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비록 그들이 제안하기는 했지만 Union의 발간에 있어서 거의 역할을 하지 않았던 그가, 나와 교편위 후배들이 1년간 힘들게 굴러가며 만든 그 책의 발간을 자신이 주도했고 많은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난 당장에 선거 토론회 때 이 점을 추궁했다. 하지만 그의 답변은 '자신이 만든게 맞다'였다. 나는 기획, 편집, 발행, 배포까지 교편위가 다 했는데 어떻게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있냐고 다시 물었다. 답변은 '아이디어가 중요한 거 아니냐?'라는 앞뒤가 맞지 않는 대답이었다. 같이 2년간 한솥밥 먹고, 더구나 1년간 우리가 고생한 거 눈으로 다 봤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뻔뻔한 답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난 어이가 없었다.


  자신의 업적을 올리기 위해 교편위라는 단체를 그렇게도 철저하게 무시한 모습을 봤을때 난 분노와 함께 두번째 자괴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교편위를 위원회에서 자치단체로 인정은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다. 학기 초에 학생운영위원회에서 분명 우리가 너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자치단체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1년간 일 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에, 자치단체로서의 역할, 언론으로서의 본 역할을 수행하고 싶었기 때문에, 우리를 총학 산하의 위원회가 아닌 독립적인 자치단체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할 참이었다.


  내가 편집장으로 있는 마지막 운영위원회인 2005년 12월 운영위원회, 우리에게는 의결권도 없었고 오직 발언권만 있었다. 나는 교편위의 자치단체로의 승격과 관련한 학생회칙 개정을 발의하였고 토론이 진행되었다.


  토론의 내용은 어이없고 중구난방이기 짝이 없었다. Union 몇 권 만든 게 일이냐는 둥, 학생들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둥, 너네는 총학 산하 아니냐는 둥, 다 듣고 보면 우리보다 너희가 못한 게 많다는 이유였다. 학생을 대표할 수 있는 언론을 자치단체로 인정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도의 승격 논의였는데, 서로간의 공적 다툼만 하고, 본질은 없었다.


  그동안 그들이 그렇게 원하던 일도 열심히 했고, 당시 회의 때 언론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하겠다는 의지까지 보여주었는데, 그들은 '언론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한 뒤 다시 와라'라는 어처구니없는 결론을 내리고 승격을 거부하였다.


우리는 또 한 번 찬물을 먹었다.


  그들이 게으름을 비판하여 본질까지 접어가며 노력했건만, 노력은 완전히 무시하고 다시 본질을 찾아오라는 똥개훈련식의 찬밥대우밖에 받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자치단체로 승격되지 못하여 지금 또 총학생회로 부터 교지 발행처 문제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받고 있다.


  교편위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는 단체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 단체인지에 대해서는 다들 할 말도 많고 의견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다들 우리 단체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는가? 진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하고 어떠한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알고 있는가? 까놓고 교지를 열심히 읽어보기는 하는가?


  등록금 문제, 교수임면권 문제, 교수부당해임문제등 일련의 학교의 사태들에 대해 학생들이 전혀 발언권을 표할 수 없게 된 데에는 과연 누구에게 문제가 있는가? 총학생회는 뭐했으며, 학과협은 뭐했으며, 동연, 기자회, 여학은 도대체 무얼 한 건가? 그들이 움츠리고 할일을 저버리며 학생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고 있을 때, 우리는 말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고 관심도 없어 실망조차도 안겨 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고자 다른 자치단체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주는 일도 마다않고 했으며, 우리가 자치단체로 인정받고 학생들에게 당당히 보일 수 있는 교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하지만 학생들로 부터의 무관심은 둘째 치고 자치단체들에게서 조차 무시도 이런 개무시를 당하고 보니, 지금 우리가 뭔 짓을 하는가 싶기도 하다.


  이럴꺼면 차라리 해체를 주장하고 싶다.


  우리는 언론이고, 학생들의 입과 머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펜을 움직일 준비가 되어있다. 우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제 갈길 못가고, 학생들의 기대해 부합하지 못한다면 욕을 먹어도 싸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역할을 할 위치도 아니고, 상황도 아니며, 그럴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우리 내부에서 우리가 어떠한 역할을 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우리 스스로 열심히 하고 노력하겠다. 그때 못한다면 크게 꾸짖고 질책을 하여도 좋다. 하지만 지금으로써는 우리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예전에 K교수사건 관련하여 성명서를 썼을때, 한 학생이 너희가 뭔데 학생을 대표하냐냐는 말을 들었다. 5.18 관련 기념부스를 만들었을 때도 그 부스가 어디에서 설치한 것인지 조차 학생들은 알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좋은 의도로 좋은 역할을 하려고 해도 학생들로부터 전혀 관심을 못 받는다. 우리는 언론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위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예전에 11호 교지를 내고 학우 3분이 우리 홈페이지를 친히 찾아와 격려의 글을 남겼던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글을 너무나도 뜻 깊게 읽었다는 그 사람들의 글을 보고, 그때 정말 학생언론으로서의 크나큰 기쁨과 뿌듯함과 함께 우리가 아직 가능성은 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교편위는 언론기관으로서 역할을 할 준비가 되어있고 자질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나는 내 후배들이 잘해줄 거라 믿는다. 우리가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며 학생들의 복지와 안녕에 힘쓰기 위해 노력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편위에 대한 인식, 관심, 대우로는 도저히 안 된다고 본다.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욕좀 먹어봤으면 좋겠다.


  4학년때 교편위를 나간 이후로, 우리 학교 자치단체의 미래는 없다고 자위하며 나 스스로 학교와 멀어지기 위해 바깥에서 이런저런 활동들을 많이 했다. 다시는 포항생각 안한다고 다짐하고 집에 올라와서 지내고 있었는데, 뜬금없는 후배 한마디 때문에 교편위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이렇게 장문을 남기는 헛짓거리를 하고 있다.


  애정인지 애증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교편위에서는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한다. 이 학교에서 학생들이 꿔다놓은 보리자루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는 자치단체의 무능이라고 본다. (개인적으로) 어떠한 자치단체들에서도 이를 이겨낼 만한 희망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교편위에서나마 작은 희망을 찾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전 편집장으로서 아주 작게나마 가지고 있다. 나는 교편위가 제 위치에만 설 수 있다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분명히 믿는다.


  작은 희망이지만 큰일을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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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써본 장문이네

교지에 실어달라고 후배들에게 보낸 글이다

실어줄지는 모르겠지만 -ㅇ-

by 태방 2007. 2. 15. 12:14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265778

"경부운하? 번거롭고 느릴 텐데...<BR>그래도 시멘트를 팔 수 있어 좋아"
[오마이뉴스 2007-02-13 09:07]    
유력 대선후보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부운하' 사업을 놓고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경부운하, 축복일까 재앙일까'란 주제의 심층 기획을 통해 이 사업의 효용성을 검증합니다. 이번 기획은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 생태지평'과 공동으로 진행합니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허환주 기자]
▲ 지난해 11월 13일 한반도대운하연구회 주최 심포지움 '한반도대운하 국운융성의 길'에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인사말을 마친 뒤 웃으며 연단을 내려오고 있다.
ⓒ2006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부운하를 이용해 시멘트를 운송한다고요? 글쎄요…. 하지만 운하를 건설하려면 시멘트는 엄청 필요하겠네요." (시멘트업계 한 관계자)

"100시간도 넘게 걸릴 운하에 컨테이너 화물을 맡길 사람이 있을까요? 상식적으로 되는 말입니까." (컨테이너업체 한 관계자)


우리나라 물동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업계 핵심 관계자들의 말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 등 경부운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적어도 운송 부분에서만큼은 경제적 이득을 볼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막상 운하가 건설되면 주 이용객이 될 사람들은 대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일까.

철도수송 컨테이너 화물의 기착지별 처리실적

구간

철도수송 컨테이너 화물
처리실적(2005년)

부산지구→경인지구

409,737TEU

부산지구→천안지구

43,143TEU

부산지구→대전지구

83,054TEU

부산지구→구미지구

45,987TEU

부산지구→울산지구

18,537TEU

부산지구→마산지구

9,442TEU

부산지구→익산지구

34,976TEU

부산지구→광주지구

13,021TEU

부산지구→영주지구

5,077TEU

* 철도청 참고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고정미
'한반도대운하연구회(대운하연구회)'는 그동안 "컨테이너·시멘트·유연탄 등의 운송이 경부운하에 흡수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2011년을 기준으로 컨테이너의 경우 물동량의 20%인 52만TEU(컨테이너 단위)를 운송할 수 있고 시멘트는 404만톤(20%), 유연탄은 46만톤(12%)을 각각 운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상호 세종대 경제통상학과 교수가 내놓은 수치다.

그렇다면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업체들은 현 운송시스템을 포기하고 운하를 통한 뱃길을 이용할 수 있을까.

당초 <오마이뉴스>는 경부운하가 건설될 경우를 가상해 '사용자 예측 조사'를 실시하려 했다. 하지만 조사 대상자들이 경부운하 문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인지 자신을 드러내놓기를 극히 꺼렸고, 대부분의 인터뷰는 익명을 전제로 진행됐다.

[컨테이너 업계] "운하 이용하려면 배에 선착장, 장비까지 많게는 수백억 든다"

"2006년도 우리나라의 컨테이너 물동량이 1057만4천TEU. 이 중 수도권과 부산을 오가는 물동량이 670만TEU다. 즉, 수출입 컨테이너 물동량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경부 축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2011년 52만TEU, 2020년 181만TEU 물동량을 흡수할 수 있다."

대운하연구회가 내놓은 추정치이다. 경부운하가 건설되면 컨테이너 업계는 값싸고 안전한 운하를 이용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컨테이너 운송업체의 한 관계자는 "컨테이너 운송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을 정확히 산술적으로 계산한 뒤 나온 결과인지 의문스럽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부산지역 수송수단별 물동량(컨테이너)

수송수단

물동량(부산지역)

연안해송

85,000TEU

1.3%

철도운송

686,000TEU

10.3%

도로운송

5,893,000TEU

88.4%

* 부산청 PORT-MIS및 철도청 자료참고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고정미
"우선 배가 필요하다. 적게는 수십억원에서 많게는 수백억원이 든다. 업체에서 과연 이런 돈을 주고 배를 살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컨테이너 수요가 있는 역마다 선착장이 있어야 한다. 이 선착장에는 최소 3천평 가량의 야적지가 필요하다. 또 트랙터·하역장비 등 대규모의 컨테이너 처리시설이 필요한데, 트랙터 한대 값이 작게는 수천만원에서 크게는 1억이 넘는다.

결국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어 만든 여러 부대조건들이 충족되어야만 컨테이너 운송 배를 띄울 수 있는 기본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싣고 내리고 싣고 내리다 보면 100시간 넘게 걸릴 것"

항만별 컨테이너화물 집중도

컨테이너화물 집중도(2005년)

전국

15,216,460TEU


부산항

11,843,151TEU

77.8%

광양항

1,441,259TEU

9.5%

인천항

1,148,666TEU

7.5%

울산항

316,432TEU

2.1%

기타항

466,952TEU

3.1%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고정미
이러한 기본조건이 갖춰진다면 컨테이너운송 업체들은 운송수단을 운하로 변경할까? 그들의 대답은 '노'였다. 또다른 컨테이너운송업체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자.

"화주의 80%는 물건을 빠르게 보내고 받으려 한다. 수출 일정을 맞춰야 하고 재고 관리하는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운송시간이 많이 드는 기차나 배를 잘 이용하지 않는 것이 업계의 추세이다. 그런데 누가 엄청난 시간이 소비되는 운하를 이용하겠나"

경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수도권에서 부산까지의 운하 소요시간을 40시간이라고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코웃음을 쳤다.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컨테이너 운송업자들이 말하는 계산법을 들춰보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부산항에서 내린 컨테이너를 다시 배에 싣고 운하를 통해 운반을 한 뒤 다시 컨테이너를 내리고 또다시 차에 태워 운송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실제 운하에서 걸리는 시간은 100여 시간 이상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운송 작업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컨테이너는 포터 로테이션(짐을 내리는 순서)에 따라 쌓아야 한다. 예를 들어 배가 부산-대구-대전-서울 순으로 운송한다면, 서울행 컨테이너가 제일 밑이고 다음이 대전-대구-부산 순이다. 순서가 어긋나 항구마다 컨테이너를 재배열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결국 운하를 통해 컨테이너를 이동시킨다면 이런 일이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수익성은 있을까. 또다른 컨테이너 업체 관계자는 과거 한진해양에서 부산-인천간 운항했다가 결국 폐지된 '부인선'을 예로 들면서 수익성이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과거 한진해양은 20TEU당 2만원의 국가보조금을 받고 주 2항차, 2대의 배로 컨테이너 150TEU를 부산에서 인천으로 운송했다. 하지만 수익이 남지 않자 주 1항차, 1대로 줄였다. 결국 이것 역시 적자가 누적돼 부인선을 폐지했다. 정부보조금을 받고도 해송운송이 적자를 봤는데, 운하가 과연 수익을 가져다 줄지 의문이다. 정부가 상당한 보조금을 준다면 모를까."

[시멘트업계] 운송 동선은 '횡'인데, 경부운하는 '종'

▲ 월악산 국립공원을 관통하는 경부운하 터널 시작 예정지역. 경부운하는 월악산국립공원과 백두대간을 관통하여 25km의 터널을 뚫을 예정이다.
ⓒ2006 생태지평 장지영

대운하연구회는 2020년 경부운하가 유치가능한 시멘트 물동량을 총 1292만2천톤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시멘트업계도 경부운하의 효용성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잘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시멘트는 뭐라 단정할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수요와 공급으로 단순 도식화해서 가격을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잡한 시멘트 운송체계로 인해 현재 물동량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수단을 통해 얼마나 이동하는지 정확한 데이터도 없는 실정이다. 앞으로 경부운하가 개통된다고 해서 물동량이 경부운하로 이동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시멘트 업체 핵심 간부)

현재 양회협회에 가입되어 있는 시멘트 업체는 총 11개인데, 연안에 공장을 세운 연안사와 내륙에 공장이 있는 내륙사로 나뉜다. 이들 회사의 생산능력은 6200만톤. 하지만 작년 생산량은 5459만톤에 그쳤다.

각 업체에서 생산한 시멘트는 곧장 수요지로 가지 않고 출하기지로 보내진다. 수요지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서도 시멘트를 일정기간 동안 저장할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중적인 비용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운하연구회 측은 남한강과 낙동강을 연결해 서울부터 부산까지 경부운하를 건설하면 시멘트 업체들의 상당수가 운하를 이용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특히 내륙에 생산기반을 둔 시멘트업체의 유연탄 반입과 시멘트 반출을 위한 수송수단으로 경부운하가 유용하게 작용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연안사의 한 시멘트업체 관계자는 "운하가 건설된다 하더라도 공장과의 접근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우리 회사와는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연간 전체 시멘트의 절반 이상(약 2500만톤)을 생산하고 있는 쌍용양회와 동양시멘트의 경우 공장이 삼척·동해 등 해안에 있는데, 대부분 연안운송을 이용해 대전·대구·울산·부산 등의 출하기지로 이동된다. 옥계와 신기 등에 공장이 있는 라파즈 한라시멘트의 경우 수도권·삼호·광양 등으로 생산품을 운송한다.

내륙에 생산공장이 있는 시멘트 업체는 단양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한일 시멘트와 성신양회가 대표적인데, 이들의 출하기지들은 수요자와의 접근성 때문에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다. 1600만톤을 생산하는 단양공장의 시멘트는 서울·경기·홍성·논산·창원 등으로 옮겨진다.

이들의 생산기지와 출하기지의 위치를 살펴보면, 경부운하는 한반도를 종으로 가로지르고 있다면 시멘트의 물동선은 횡으로 가로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멘트업체들이 운하 건설 기다리는 속사정

항만별 시멘트 입하량

시멘트

입항(2004년도)

부산

2,263,000RT (외항 108,000 연안 2,154,000)

인천

4,388,000RT (외항 1,289,000 연안 3,099,000)

광양

3,044,000RT (외항 1,419,000 연안 1,626,000)

마산

2,374,000RT (외항 0 연안 2,374,000)

(*시멘트는 연안에서 연안으로 이동되는 물량이 많다)
*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자료 참고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고정미

시멘트업계에서 경부운하를 이용하기 어려운 점은 또 있다.

경부운하를 이용하려면 생산공장에서 운하까지 차나 철도로 시멘트를 이동시켜야 한다. 이후 하역작업을 하고 시멘트를 내린 뒤 다시 배에 시멘트를 싣고 운하를 이용한다. 그리고 목적지에 시멘트를 보내기 위해 또다시 시멘트를 배에서 내려 차에 싣는 등, 싣고 내리는 작업을 여러 차례 반복해야 한다.

과연 업계에서는 이런 복잡한 운송시스템과 시멘트를 싣고 내림으로서 발생하는 물류비용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옥계·신기·광양·포항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는 연안사 업체 라파즈 한라시멘트의 관계자는 신중한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강원도 지역의 생산 공장과 동해·남해 등지에 있는 출하기지와의 거리를 고려해야 한다"며 "하지만 경부운하가 어떤 노선을 그려나갈지 알 수 없기에 섣부른 판단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럼 내륙 회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륙사인 아세아시멘트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아세아시멘트 업체 관련자는 "직접 비교하기는 어려움이 있다”라며 “경부운하를 이용할 때 단가, 운송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현재는 어떠한 데이터나 자료가 나와있지 않은 상태이기에 비교, 평가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한일시멘트 관계자도 "출하 기지는 철도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멘트는 철도를 통해 운송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운하를 통한 운송에 대해 고민한 바가 없다"고 말했다.

또다른 시멘트 업계 관계자는 경부운하를 반겼다. 하지만 그 이유는 한반도대운하연구회에서 주장하는 운송비 절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엉뚱하게도 시멘트 수요가 늘어나는 '운하건설 특수'.

그는 "경부운하가 운송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생각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시멘트 업체에게는 희소식이 될 것"이라며 "엄청난 길이의 운하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시멘트가 필요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오마이뉴스>는 이밖에도 20여명 이상의 업계 관계자들과 접촉해 경부운하 이용 여부를 물었지만 대부분 "정치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유연탄업계] 수요는 대부분 항만에 집중... "왜 그런 낭비를"

항만별 유연탄 입하량

유연탄

입항(2003년도)

삼천포

17,603,000톤

광양

12,978,559톤

태안

6,877,012톤

포항

6,423,305톤

* 해운항만 물류 정보센터 자료 참고

ⓒ 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고정미
발전소·제철소·시멘트 회사 등에서 소비되는 유연탄은 한국에서 생산되지 않아 전량 수입에 의존한다.

2003년 기준으로 삼천포·광양·포항 등에서 6073만3천톤의 유연탄이 수입됐다. 이 중 50%는 발전소에 사용되고 30% 정도가 제철소, 10%가 시멘트 생산에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발전소와 제철소가 인접해 있는 항만 지역에 유연탄이 유입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유연탄 유입 항만을 살펴보면 삼천포(1760만3천톤)-광양(1297만8559톤)-태안(687만7012톤)-포항(642만3305톤) 순이다. 이 중 삼천포와 태안의 경우 설비용량이 300만㎾를 넘는 발전소들이 위치해 있고, 광양과 포항의 경우 인근에 발전소와 제철소가 위치해 있어 이들이 유연탄을 대부분 소비하고 있다.

결국 유연탄을 필요로 하는 제철소와 발전소가 대부분 서해안과 남해안에 집중된 셈이다. 따라서 유연탄업계가 경부운하를 이용하는 데는 한계가 명확하다.

그나마 한반도대운하연구회는 "포항에서 입하된 유연탄을 단양· 제천 시멘트 공장으로 운반하는 데 경부운하가 유용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업계에선 회의적이다.

"운하에서 짐을 내리고 올리는 비용, 또 그에 따른 시간, 수송수단을 바꾸는 번거로움…. 경부운하가 건설된 뒤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굳이 그런 시간적· 물적 낭비를 하려고 하는 업체가 있을까요." (유연탄 수입업체 관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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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방 2007. 2. 13.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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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대 중반의 시작

크게 신경쓰지 않고 지내려고 했지만

아직도 충분히 어린 나이지만

자꾸만 나약해져 가는 나를 느끼며

나에대한, 인생에대한 슬픔과 회의가 조금씩 생겨난다


정말 모든지 다 할 수 있을꺼 같았다

아니 그건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난 아직도 자신있고 의욕있고 힘이 넘친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런 열정과 패기와 자신감만으로는

안되는 일이 너무나 많은 곳으로 들어선것 같다

아직 못해본것도 많고 하고 싶은것도 많지만

스물 셋 이후 내 머릿속에 그려진 인생에는

그 어느곳에도 하고싶은 것을 다 할 수 있을 거란

그런 기대와 망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 백번 양보해서

이 악물고 버티고 할 수 있다고 치자

아직 내 왕성한 혈기 하나 믿고

으차차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점점 나 자신이 나약해져 간다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느끼는 만큼 느끼고 그만큼 행동하고

망치로 내리 쳐도 부셔지지 않을 만큼

내 심장은 튼튼하고 굳건했지만


자꾸만 때리고 맞고 부딫치고

그러는 동안 자주 고쳐주지를 못했다

내 심장의 상처에서 새 나오는 피를 고름을

닦아주지 못하고 치유해주지 못했다

그 상처가 쌓이고 쌓여

내 심장은 점점 물러지고 약해져 간다


상처 따위 이기는건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직 내 심장은 튼튼하니 버틸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느닷없이 스물세번때 떡국 먹을 나이가 되서

이제는 건드리기만 해도 아파온다


아픔은 참을 수 있지만

누가 건드리려 하면 더 다칠까봐

누가 다가오려 하면 더 해칠까봐

점점 방어막을 치고 불안에 떨어한다


아직 문을 닫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남은 희망과 열정을 믿고

몇번은 더 버틸 수 있을거라는 생각으로

아직은 문을 닫지는 않았다


그래도

상처가 생기면 제때제때 치유해주어야

상처가 아물고 면역도 생기고

더 튼튼한 심장이 될 수 있을텐데

나는 그 튼튼했던 심장은 어디가고

상처투성이 지저분한 심장만이 남아있다


이럴때는

눈물이 나오지는 않는 내 눈이 원망스럽다

by 태방 2007. 2. 13. 11:26


http://blog.naver.com/nogari9/100034264639


너무나 아름다운 BGM으로도 유명한 대항해시대 2

정말 옛날이구나

by 태방 2007. 2. 13. 1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