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nogari9/100033856423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난 약간 장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ㅇ- (물론 오바다)

언어능력이 좀 많이 부족하지 않는가 싶다

같은 뜻을 글로 표현하는데도 유창하지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른 개념을 단어로 표현해내는 것도 능숙치 않으며

글을 읽어도 조금만 어려우면 쉽게 이해를 못하고 두번세번 넘게 읽어야 한다


고등학교때 국어, 문학, 영어, 독일어는

어떤 과목이건 90점을 넘겨본적이 한번도 없다

대학 붙고 정철어학원에서 3개월 코스 한번 다니고

어학연수 1개월 다녀와서 운좋게 대학때 들은 영어 과목들은 B0이지만

그 이후에 들은 불어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단어시험 3연속 꼴등을 하였으며

고등학교때는 정규시험, 토플, 토익, 텝스, 듣기평가 전부 꼴등을 한번씩 해보는

기염을 토하기도 하였다 -ㅇ-

그만큼 난 언어능력이 좀 많이 부족하다(물론 노력부족도 일부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런 내가 뭔 생각을 했는지 모르지만 --;;;

대학때 교지편집위원회에 멋모르고 덜컥 가입을 하였다

(내 인생이 크게 바뀌게된 가장 큰 계기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고등학교때 교지편집위원회는 그냥 사람들이 쓴 글 모아서

이래저래 배치하고 교정하고 편집하는 정도의 일만 했었기 때문에

난 그 생각을 하고 참으로 당당하게도 교지편집위원회에 문을 두드렸다


1학년 수습기간은 내가 뭘 했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안난다

잃어버린 1년이랄까 -ㅇ- 이세상에 개념이라는게 존재한다는걸 알게 된게

아마 2학년때쯤부터라 추측이 되기 때문에 --;;;

당시 아주 잘 만들어진 웰메이드 영재였는데다가

집밖에서 2년간 아싸로 막살았으니 성격이 어지간이 골치덩어리여서;;

내 1학년은 즐거웠지만 별로 좋아하는 1학년 기간은 아니다;;

뭐 암튼 사설이 길어졌다.. 그건 그렇고

그렇기 때문에 내 교편위 생활의 시작은 2학년 부터다


교지편집위원회, 뭐 일단 교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나는 생판 한번도 안해본 글쓰기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오는 내 글이 학교 학생들이 모두 보는(줄로만 알았던)

교지에 거의 맨 앞에 실렸을때 그때 기분은

정말이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그런 기분이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처음 글을 쓴 교지의 표지와 내 글의 속표지다

http://youngs.postech.ac.kr/backup/9.pdf


 

우리학교 교편위는 다른학교 교편위와 달라서

그냥 정말 친목모임 이상의 일들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나의 그런 감동이 유지된 상황에서 내가 2학년때 편집장이 되신 형이

그래도 나름 교지의 분위기를 만들고자 하는 마음에

토론회의, 세미나등 1학년때 통틀어 3번정도 했나 어렴풋이 기억나던

그런 이 사회의 지성인으로서의 고민들의 시간을 마련해 주셨다


그때부터 학교, 사회, 인생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마구 넘처 흐르기 시작했다

홈페이지를 만들어 내 생각을 쉴새없이 표현하고

친구들과 술먹으면서 밤새 생각과 고민들에 대해 교환하고 토론하고

머릿속에서 자아와 가치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고민들을 막상 교편위에서는 풀어내는데 약간 문제가 있었다

내가 워낙 토론 태도가 당시에는 저돌적이었기 때문에

내가 토론을 원하고 의견을 제시하면 사람들은 나의 태도때문에 일단 반감을 먹고 들어갔고

게다가 나와 의견을 같이하는 사람이 많지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지금도 그러하다 그래서 솔직히 지금 교편위 후배들과 이야기하는게 아직도 어렵다)

뭐 중립적 입장을 즐겨하시는 성모형이나 나와 코드가 가장 유사했던 찬수정도

그 외의 사람들과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교편위 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내가 어쨌든 내 생각을 글로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글 쓰는거 자체에 자신감이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형식있는 글에 내 생각을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담아 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지내가 난 어느새 편집장이 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내 두번째 교지(청년과학10호)에 '사회성'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남자와 여자간의 인간관계(이성관계가 아닌 약간은 다른 두 인간으로서의 관계)

를 다룬 소주제가 내 글 속에 있었는데

우리학교는 남자가 여자보다 5배가 많기 때문에

'양성이 평등하다지만 서도 남자와 여자에 대한 배려를 1:1로 해줄 수 없다

이건 학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라는 의도로 쓴 글이

여학생회에서 앞뒤 짤라먹고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없다'라는 것 처럼 보이게

교묘하게 편집을 당해서 이 글에대해 의견을 묻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내 글이 온 기숙사 방문앞에 모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진짜로 울고 싶었다

전자과 3학년 마의과목 전자회로1의 7번의 시험중 첫 시험을 끝내고

'우리도 이제 고생시작이다' 라고 친구들끼리 위로주 한잔씩 먹고

이번학기도 열심히 해보자라며 기숙사로 들어오고 있는 길이었는데

내가 한달간 고민하고 고민하며 쓴 글이 누더기 편집이 되어

아주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가 드러나는 모습으로 방문앞에 붙어있으니

(여학생기숙사에 붙어있던 종이에는 나에대한 온갖 욕도 있었다고 한다)

진짜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여학생회장을 주먹으로 한대 패도 기분이 나아질까 말까 했지만

최대한 이성을 찾고 여학과 대화를 시작했다

자세한 이야기를 할것도 없이 여학회장과 집부들은 나와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고

남의 글을 무단 편집, 도용하여 악의적으로 명예 훼손한 면에 대해서 전혀 뉘우치지 않고

오해를 살 수 있는 문구를 넣어 글을 쓴 점에 대해서만 내가 공개 사과및 해명문을 쓰고

사태가 마무리 되었다


그 이후로

편집장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비록 글도 못쓰고 말도 제대로 못하고

내 생각하나 제대로 표현 못하는 그런 놈이지만

내 후배들까지 그러기는 정말 싫었다

내가 3년째 몸두고 있던 그런 교편위에 함께했던 후배들이기에

그들에게는 좀 더 자랑스러운 교편위를 만들어 주고 싶었기 때문에

후배들이 그렇게 힘들어하였지만 몇일이고 밤샘작업도 시키고

글도 깐깐하게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고생도 많이 시켰다

그때 내 이름 달고 나온 책이 총 합쳐 5권이나 된다


의도는 좋았지만 나에게 약간의 판단미스가 있었다

나는 교편위의 역량 강화를 위해 편집디자인기술을 직접 확보하자는 생각을 했는데

(또 게다가 다른 자치단치들에게 대놓고 무시를 당하는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에)

기술 확보 하나 하는데 애들이 힘을 다써버려서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데

시간을 거의 투자하지 못해버렸다

(덕분에 교편위 후배들은 내가 생각하는 의도대로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아무튼 그렇게 1년이 가고 애들은 편집프로그램인 쿽익스프레스에 도사가 되어있었다

한해를 마무리하는 교지를 만들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난 내 이름으로 교지를 만든다는 것을 상기하면서

최대한의 가치있는 교지를 만들기 위해 1년간 못해온 아이들의 머리 키우기를

짧지만 3달간이라도 조금은 혹독하게 시켰다

인수인계를 위해 차기 편집장인 진아에게 조금 나누라고 한상이가 이야기 하기도 했지만

난 내 이름 달고 나오는 책에 책임감을 넣고 싶었고

내가 3년간 지낸 교편위라는 곳에서 만드는 나의 마지막 결실이 이 교지라는 생각에

정말 심혈을 기울어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내가 만든 11호 교지의 표지이다




결론적으로는 90점쯤 줄 수 있는 교지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10점 감점은 내 글이 들어가서 감점이었다

내 글은 이번에도 논란을 일으켰으며, 지난번만큼은 아니더라도 어지간히 글 때문에 욕먹었다

왜 내 생각은 확고한데 그 글에는 그런 생각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가 엄청 괴로워 했었다


아무튼 그렇게 교지가 나왔다

조금 두꺼운 편인 까슬까슬한 표지의 교지를 받아 포장을 열고

책을 펴보면서 주루룩 훑어보고 가만이 가슴속에 책을 뭍고 꼭 안고있던 그 순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3년간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민하고 고생했던 그 모든것들이

그 하얀 책 한권을 들자마자 모두 한번에 사라지는것 같았다

그때의 감격은 정말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이런 감격에 나를 한번더 비행기 태운 사건이 있었다

난 정말 이때 감격에 북바쳐 올라 누군가 붙잡고 울뻔 했던거 같다






  최지웅 (2006-03-14 17:34:58, Hit : 345, Vote : 65)
 청년과학 11호, 기쁩니다!

조금 펴보고 단번에 '우리 학교도 책다운 책이 나오는구나' 싶었습니다.
POSTECH의 구성원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 나온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편집위원회 여러분들 너무 수고하셨습니다.

계간 IYF를 펴내는 사단법인 국제청소년연합 출판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책 만드는 것의 고통을 잘 압니다. 보람 또한 알고요.
끝까지 공대인 이전에 사회인으로서, 지성인으로서 읽어야 할 좋은 책들을 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저는 01학번 컴공과 최지웅입니다. &

  김상혁 (2006-03-16 21:47:14, Hit : 361, Vote : 60)
 청년과학 11호 감사합니다.

2년간 학교생활을 하며 생각이 자라지 않음에 스스로를 한심해하던 사람입니다.
제가 어린 시절 보아 오던 대학생의 모습이 현재의 내모습인가에 대한 의문감에
항상 고민했었지요

성숙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고 그저 눈앞의 현실에 치여 자기 스스로를 돌이켜
보지 못하는 학교의 구성원들을 바라보며 가슴아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 이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런 내실있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이켜 볼 수 있게 하는
교지가 편찬되었으면 합니다.

  박명진 (2006-03-27 10:30:49, Hit : 303, Vote : 57)
 안녕하세요

저는 물리학과 석사 05학번 박명진이라고 합니다. 우연히 기숙사 휴게실에서 줏어보게 된 청년과학 11호를 보고 이 글을 적게 되었습니다. 직설하자면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다 읽고 난 뒤에 속이 확 트이는 기분과 이렇게 적은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집단에서도 사회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자 하는 집단이 있다는 것에 대해 반가운 마음을 느꼈습니다.
교지를 읽어나가면서 학부시절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학부는 포항공대 아닌 다른 곳에서 보냈기에 지금 제가 느끼는 포항공대의 분위기가 그때의 그것과 더욱 선명하게 대조할 수 있었습니다. 교지에서 나오는 절절한 내용들은 제가 일년간 포항공대에 있으면서 고민하고 때로는 비난도 하던 부분들이었기에 교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게 와닿았습니다.
다시 한번, 교지편집위원회를 알게 되어 반가웠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이제 포항공대에 2년 있었지만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의무를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형식으로든 교지편집위원회에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뭐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요~^^
내년에도 멋진 청년과학을 기대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줄이지요. 건필하시길.

가기전에 뱀발 : 편집위에 메일을 보내고 싶었는데 홈페이지에 메일링크를 걸어주셨으면 합니다. 아무리 찾아도 안보이길래요~~ 투고하는 글이 적었던 이유도 교지 101페이지 눈에 안띄는 곳에 단 한 곳 밖에 없어서 찾기가 힘들어서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런 글이 자유게시판에 올라왔다





글을 올려준 사람이 3명이나 되는데

내 교지를 읽고 이렇게 생각해준 사람은 이보다 많을꺼라는 생각에

감격이 정말 넘쳐 흘러 어쩔줄 몰라 했던거 같다

정말 이맛에 책을 만드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책 만드는데 재미를 들리기 시작했다

비록 내가 글쓰는건 자신 없어 이렇게 블로그에 쓰는 정도 이상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단순히 책을 만들고 읽는 사람이 그것을 행복하게 받

 

아들여 준다는 것 자체만으로

정말 나에게는 크나큰 기쁨이고 행복이었다


그 이후 민평연에서 대학생 아카데미 사업을 하면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료집 만드는 일은 내가 먼저 나서면서

지금까지 또 3권의 책을 만들게 되었다


몸은 힘들고 짜증은 나지만

사람들이 글 안주고 디지인 안떠오르면 짜증나고 귀찮기도 하지만

다 만들고 난 이후의 그 희열을 잊을수가 없기에

컴퓨터에서 쿽 익스프레스를 지울수가 없다 ㅎㅎ

by 태방 2007. 2. 1. 21:18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804324

사람들이 음악을 듣는 방식은 다양하다

최신가요를 주로 즐겨 듣는사람

몇몇 장르를 즐겨 듣는 사람

몇몇 가수를 즐겨 듣는 사람

아니면 좋은 노래를 찾아 듣는 사람


나같은 경우는 가수 장르 시기를 불문하고

좋은 앨범을 찾아 즐겨 듣는 편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노래보다

좋아하는 앨범이 더 많이 각인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르는 거의 가리지 않는다

덕분에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골고루~는 아니더라도;;

장르의 편식성은 남들에 비해 좀 적은 편이다


궂이 장르를 가릴 이유는 없지만 서도

장르에 어울리는 가사들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에는 이런 가사가 들어오면

그 노래가 한층 좋다고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고나 할까


뭐 말하지 않아도 발라드는 연가가 제일 어울린다

사랑 이별 이야기를 하나의 소설처럼 써내려가는 가사는

발라드의 느낌을 담아 노래하는게 왠지 어울린다


거북이가 그런말을 했었던것 같다

신나는 댄스음악에 가사가 신나지 않으면 안된다고

뭐 그말은 맞는말 같다 댄스 음악에 슬픈사랑이야기 이런거보다

댄스음악은 신나고 경쾌한 가사가 제일 좋다

쿨 코요테 거북이 등등 많지 않은가 ㅎㅎ


힙합은 감성적인 가사보다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가사가 어울린다

특히나 라임이 강한 노래들은 더더욱 그런 느낌이 강하다

가사의 운율이 노래의 80% 이상을 차지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느낌을 담아내는 힙합노래는 그닥 많지 않은거 같다(물론 없는건 아니지만)

에픽하이 cd2가 이상하게 안끌리는 이유가 그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소프트한 락 노래들 혼잣말 독백 가사가 제일 어울린다

시끌시끌한 노래속에서 가슴속에 담아둔

말하고 싶은 것들을 외치는 기분이랄까

사실 대부분의 가사들이 그렇기도 하고


재즈는.. 흠..

잘 안들어서 -ㅇ-

어떻게 즐기는지 누가 좀 도와줬음 좋겠다 ㅎㅎ

by 태방 2007. 1. 31. 15:26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675369


1.

요즘 주변에서 소개팅 타령이 늘고 있다

이성친구 없다고 난리치는 친구들의 구제법중 하나

또 이제 곧 OT가 끝나고 학교별로는 신입생들이 우루루 들어올텐데

그러면 또 선배들의 작업러쉬가 시작되겠지


연애라는 행위가 지금 어떻게 인식되고 있건 말건

어쨌든 그 근원은 사랑에서 온 것이다 (그것이 에로스이든 플라토닉이든)

하지만 요즘 세상에 누가

연애가 사랑이고 사랑이 연애이고 하는 고리타분한 방식으로 접근할까

그냥 여자친구가 없다고 우는 남자들이 사랑찾아 소개팅을 하는걸까

그 많은 신입생들을 그렇게 사랑해서 다들 밥한끼 사준다고 왕창 불러내는 걸까


나는 소개팅도 안해보고 여자친구도 안사귀어 봤다

나는 연애 자체에 대한 큰 집착도 없고 아쉬움도 없다

뭐 해봤어야 있지

그래서 그런가 연애하고 사랑하는거(요즘 청년들의 연애가치기준일 것이다)

사랑해서 연애하는거(근원적인 연애의 가치기준일것이다)

이 두가지 사이에서 심한 가치 혼돈을 느끼고 있다


누가 그러더라

일단 사귀다 보면 정들고 맘에 들면 사랑하게 될 수도 있단다

뭐 틀린말은 아니지만

사랑하는 마음이 통해서 만나는 연애와

그 가치를 비교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연신 놓칠 수 없게 된다

(어찌보면 고리타분하고 어찌보면 순진한 발상이라 할수도 있겠지만)


2.

뭐 그런거 다 놓는다 치고

일단 후자로 선택을 했다 치자

그렇다면 연애는 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뭐 소위 짝사랑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이 의미있는 것은

서로 주고 받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할 수 있다

(아가페적 사랑은 논외로 하고)

그렇기 때문에 짝사랑은 힘들도 아프다라는 말 많이 한다

뭐 이정도는 만인이 아는 기본 상식


여기서 또 문제가 된다

짝사랑이 아프고 힘든것은 사실이지만

어쨌든 모든 일이 큐빅처럼 딱딱 맞게 돌아가는것도 아니고

누군가 사랑을 시작해야 그 마음이 전해져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거 아니겠는가

그러면 짝사랑은 어찌보면 필수 불가결한 사랑의 과정중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을 참고 이겨내는것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금전적으로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너무나 큰 고통이고 아픔이다


이런 상황에서

짝사랑의 상대가 나에게 관심없음을 표현한다면

나는 그 사랑을 이루기 위해 계속 그 상대에게 구애를 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앞으로 받게 될 크나큰 상처들을 막기위해 포기해야 하는 것인가


물론 그때그때 상황과 상대방의 성격

인연의 정도에 따라 그 수준은 조절할 수 있겠지만

어짜피 인간의 행동은 머리에서 조정되는거도 어느정도 있는 편이니

자신의 가치관에 맞게 행동하게 되는 경우도 다수 있지 않는가


지금까지 몇몇의 여자를 짝사랑 해왔고

사실 실현 가능성의 여부를 두고 저울질하며

기다리는 일은 무의미 하다는 생각으로 쉽게 포기하며 살아왔지만


이제 조금씩 사랑에 대한 희망을 만들어 가는 상황에서

내 사랑을 얻으려면 얼마나 어느정도나 기다리고 구애하며 지내야 하는지

도통 감이 오질 않는다


이게 두번째 고민


3.

아직 연애를 해본것은 아니지만

이별에 대한 고민도 잠깐 해봤다


일방적인 통보에 의한 이별은 인연을 끊는 행위중 죽음 다음으로 잔인한 방법이랄까

차라리 다툼을 하거나 서로간의 합의하에 문제를 동감하며 헤어지는건

준비할 시간도 있을 것이고 마음의 정리도 할 수 있을 것이고

상처를 최소화 할 수 있는 많은 장치 들이 있겠지만


만약 내가 누군가와 연애를 하다가

상대쪽의 사랑이 식어 나에게 이별을 요청한다면

물론 이래저래 핑계를 대며 그 이별을 막아보려 노력하겠지만

결국 이별하게 된다면

난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나 혼자서 많은 노력을 하면 될 것이다

그런거야 (슬픈 이야기지만) 뭐 이미 익숙해진지 오래이고


하지만 만약 내 사랑이 식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난 이별을 청할수가 있을까

남에게 상처주는거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상

내 사랑이 식었다고 난 상대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억지로 질질 끌고가거나 하지는 않을것이다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으려 하겠지만

만약 남은 해결책이 이별 통보밖에 없다면

난 그 말을 상대에게 진심으로 전해 줄 수 있을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다는 말들 많이 한다

물론 헤어짐의 두려움때문에 만남을 꺼리는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건 매한가지

by 태방 2007. 1. 28. 11:20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539723


뉴스 : [영스팟] 인맥쌓기, 방법도 가지가지

[영스팟] 인맥쌓기, 방법도 가지가지
[스포츠서울 2007-01-24 11:39]    
대학생들 사이에서 ‘인맥쌓기’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면서 온·오프라인으로 인맥쌓기가 인기를 끌고 있다.

학벌이나 실력도 중요하지만. 요즘에는 ‘인맥이 곧 자산’이라고 할만큼 인맥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인맥쌓는 방식은 보통 교내·연합 동아리. 기업·정부산하·NGO 등에서 주최하는 대학생 대상 프로그램. 체험형 공모전. 인턴십프로그램. 인맥 페스티벌. 인맥 관련 카페와 클럽. 인물 검색 사이트 등 온·오픈라인으로 다양하게 이뤄진다.

다음의 카페 ‘교육인맥당 ’(cafe.daum.net/edupower)의 경우 인맥 관리와 관련된 다양한 칼럼. 노하우를 공유하는 곳이다. 개인소개를 올리고 분야별로 인맥을 나누어 주기적으로 인맥페스티벌을 연다. 강사를 초빙하여 인맥쌓기에 관한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이 카페의 경우 회원수가 무려 7800여명에 이른다.

지난 12월 오픈한 인물키워드 검색사이트 ‘피플투’(www.people2.co.kr)의 경우 일반인들이 자신을 대표하는 키워드들을 입력하고 필요한 인맥을 검색을 통해서 찾을 수 있게 해두었다. 기자. 마케터 등 자신이 원하는 인맥을 키워드로 검색. 멘토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멘토와는 ‘프리젠테이션 잘 하는 요령’을 귀띔해주거나 소개팅을 시켜주는 등 서로 소소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포항공대 김태현씨(23)는 “한 정당에서 주최한 정치캠프에 참여해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다. 인맥도 쌓고 사회경험도 쌓는 즐거운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김민지(숭실대)명예기자

by 태방 2007. 1. 24.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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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를 보면 죽어가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생각나요”
나는 스타벅스에 가지 않는다

<편집인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생김새만큼이나 참 다양하다.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으로 어떤 것을 거부하면서 살아가기도 한다. 가령,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도 있고, 주민등록번호를 사용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개인정보의 누출 우려 때문에 신용카드를 쓰지 않는 사람, 이마트에 가지 않는 사람, 자가용 차를 타지 않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이유로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기획 연재 - 내 삶의 불복종]에서는 무언가를 의식적으로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듯, 무언가를 거부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삶의 방식을 굳이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려 하지도 않는다. 다만, 소통의 힘을 믿는다. 자신의 문제의식을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이 자신의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또 그런 사람들이 늘어난다면 그것은 ‘운동’이 될 것이다. 그런 운동은 삶을 변화시킬 뿐만 아니라 부조리한 사회의 문제들도 바꿔나갈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자, 당신에게 강요하는 대신 자신의 삶의 방식을 그저 묵묵히 실천하며 나지막히 읊조리고 있는 우리 옆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하루는 사람들과 명동에서 캠페인을 열기로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스타벅스 커피매장 앞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날 우리는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만날 수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서로 다른 스타벅스 매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명동에만 스타벅스가 세 곳이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심 속에서 스타벅스는 공공기관만큼이나 주요한 위치에서 흔히 눈에 띄곤 한다. 커피가격이 만만치 않음에도 불구하고 신기하리만치 매장 안은 늘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으며, 그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음료를 마시며 수다를 떨거나 여유롭게 책을 읽는 모습들은 밖을 지나치는 사람들로 하여금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휴식의 공간’으로 들어가고픈 유혹에 빠져들도록 한다.

나 역시 그 곳을 자주 드나들었던 적이 있다. 진한 커피가 기호에 맞기도 했고 지인들과 만나는 장소로도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유난히 커피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스타벅스 커피나 가게 안에 진열된 제품들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그런 경험 탓에 스타벅스는 어느덧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로 성장했고 사람들의 일상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음을 절감할 수 있었다.

스타벅스와 시오니즘

하지만 이제 나는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물론 사람들을 만나는 약속장소로도 그 곳을 잡지 않는다. 일종의 보이콧을 선언한 셈이다. 그렇다고 나의 스타벅스 보이콧은 마치 담배를 끊는 행위처럼 지나치게 의식적이거나 단계적이지는 않았다. 매우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언제부터 발길을 끊고 그 곳 커피를 거부하게 되었는지 정확한 시일이나 동기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짐작컨대 작년 말 즈음 이스라엘의 시오니즘을 자세히 접하고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현실을 간접적으로 목도하게 되면서부터 스타벅스를 악마와도 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 같다. 스타벅스를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공시킨 신화의 주인공인 하워드 슐츠 회장은 오늘날 과격 시오니스트 중 대표적인 인물로 대두되고 있다. 그는 공공연히 아랍인들을 비하하거나 테러리스트라고 매도하는 발언을 공식석상에서 내뱉었고, 실제로 스타벅스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이스라엘의 군수산업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정보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아랍 언론인 알바와바닷컴은 스타벅스가 이스라엘 군인 단체인 ‘볼 포 이스라엘(bowl 4 Israel)’을 후원하고 있다고 비난한 바 있다. 또한 하워드 회장이 수상한 “이스라엘 건국 50주년 공로상”은 바로 팔레스타인에서의 제닌 학살을 주도한 모파즈가 회장으로 있으며, 결국 이 기금은 이스라엘과 미국, 유럽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이스라엘의 무기박람회를 후원하는데 쓰였다고 한다.

이 같은 사실들은, 내가 무심코 지불하는 커피 값이 축적될수록 팔레스타인인들의 억압과 고통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관계를 각성하게 만들었다. 가만 보면 현대인들은 이미 주체성을 상실한 종속적인 소비 패턴 속에서 커피를 사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이 결국에는 중동지역에서의 극단적인 희비를 낳는 야만적 자본주의 경제 질서의 종속이라는 점이 매우 경악스럽게 보였다. 그마저도 심각한 ‘이미지의 오류’를 겪고 있다는 인식에 나는 더욱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이미지의 오류란 이런 것이다. ‘스타벅스’ 하면 대개 도시적이면서 개방적이고 아늑한 이미지로써 사람들의 감성을 휘어잡고 있다. 하지만 흔히 ‘이미지’라는 것이 실체를 가리는 수단으로 이용되듯, 스타벅스의 실체에 기반하고 있는 진실의 이미지란 팔레스타인에서 시오니즘 부흥과 동시에 한 세기가 넘도록 벌어지고 있는 바로 이스라엘의 학살과 착취가 아닌가?

팔레스타인의 평화와 인권을 짓밟는 이스라엘의 식민주의

그들의 식민주의는 갈수록 끔찍해지고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을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인 고립장벽에 가두어 놓고 이동의 자유를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오랜 세월 불법 점령과 무자비한 파괴도 모자라 매일같이 비대칭적 군사공격을 가해 ‘살아있을 권리’마저 박탈하는 일들을 벌여왔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인권유린 행위들을 스타벅스에 그대로 투영시키고 난 다음에 그곳에서 편안히 커피를 마시는 일은 웬만해선 힘들어졌다. 더욱이 하루를 멀다하고 들려오는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이스라엘군의 끔찍한 범죄소식들은, 나에게는 하루 1달러가 없어 굶주리는 어느 나라의 어린이들이나, 혹은 1달러를 더 벌기 위해 커피 농장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들 문제보다도 더 참혹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살육’에 대한 양심의 고동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오늘날 부와 현대 도시생활의 상징으로 손꼽히는 스타벅스는 나에겐 살육을 상징하는 것일 뿐이다. 그래서 난 더 이상 스타벅스에 가지도,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스타벅스 로고에 새겨진 별이 곳곳에서 밝게 빛날수록 팔레스타인인들의 평화와 인권은 명멸해 간다. 스타벅스에 저항을! 팔레스타인에 평화를!

[인권오름 제23호] 지은

* 지은 님은 [경계를 넘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활동가입니다.


 
by 태방 2007. 1. 23. 11:26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428993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

아주 오래된 고전명언이지만 현실에서 가장 잘 먹히는 명언중의 하나

꽤나 완벽한 말이라 볼 수 있지


내 인생을 살아가는 여럿의 가치관중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중의 하나

의식적이 아닌 습관적으로 택하고 있는 진리중의 하나

무슨 뜻인고 하면 또 나불나불 주절대보면


이런말하면 웃기게 들리겠지도 모르겠지만

난 최대한 착하게 살려고 많이 노력중이다

결론적으로는 이게 내 인생을 가치있고 성공으로 이끌어 줄 것이라 믿고 있다


소위 착한 사람들은 인생에서 손해를 많이 본다고 한다

물론 각각의 것에서 약삭빠르고 야비하고 이기적인 사람들에 비해

착한사람이 손해를 좀 보고 살아가는 것 처럼 느낄 수 있다

이러한 문제와 한계에 나는 보완점 같은 것을 두고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 백승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를 착하고 괜찮고 멋진 인간으로 갈고 다듬어

내가 어떠한 인간이고, 내가 얼마나 가치있는 인간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으면

나의 본 모습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수 있고

그 모습을 느끼게 하면 상대에게 나를 인정받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건 착한척 한다거나 허세부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나를 바라보는 눈을 모두 속일수는 없다 본질 자체가 멀쩡한것이 제일 이득이다

내가 좀 못난 부분이 없지않아 있더라도 그런 부분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고치는 것이

참된 나의 모습을 만드는데 속이는 것보다 훨씬 더 이득이라고 본다


이런 나의 모습을 알고 있다 할지라도

나를 이용해먹고 나를 밟고 올라가려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을 괴롭히며 자신의 것을 가지려는 놀부같은 사람들에게는

당하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럴때 적을 확실히 파악하고 분석해야 한다

착하고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는 사람과는 진심으로 다가가서 함께 상생하고

나를 이용하고 괴롭히고 밟으려는 사람들에게는 착하게 대할 필요가 없다

그사람들에게는 조금은 나쁘게, 하지만 이유있게 나쁘게 지내면 된다

본질이 나쁜 사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 나쁨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에게 진정성을 가지고 나쁘게 대함으로서 그사람의 본질의 모습을 드러내고

그와 반대로 나와 맞고 착하고 좋은 사람이라 느껴지는 사람들과는

진심으로 다가가며 서로 상생하고 함께 일한다면

착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하면서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본다


뭐 바뀔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경험적으로 느끼는 내 인생의 철학

좋은 사람에게는 분명 좋은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을 찾는 눈을 가지면 된다

by 태방 2007. 1. 22. 00:49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397792

솔로 인생 7731일, 만 21년 60일

길다면 길수도, 짧다면 짧을수도 있는 혼자 지낸 기간이지만

경험도 적고 만남도 적고 조금은 초라해보이는 사랑성적이지만

느낀것은 많고 생각도 많이하며 언제나 되새기고 있는것이 나의 사랑생각이다


사랑에서 처음이라는 것은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가진다

첫사랑, 첫고백, 첫연애, 첫키스, 첫이별.. 등등

처음인 만큼 충격도 크고 그만큼 느끼는것도 많은

사랑의 계단식 성장의 핵심 키포인트 들이랄까

언제나 익숙한 사랑은 없고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사랑을 맞이해야 하는 입장에서

사람을 좋아하고 사람을 만나고 사람과 함께하는 일들을 함에 있어

처음의 마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의미있고 중요하다


사랑의 감정을 알게된 이후로

사랑의 뜨거움을 느끼고, 사랑의 괴로움을 느끼고,

작게나마 사랑의 행복함도 느끼고, 잠시나마 했던 수많은 기대와 상상들

그 모든것들이 처음일때 가장 크고 성대했다는 사실은

사랑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쉽게 알고있는 사실중의 하나이다


나는 사랑은 변하지 않는 것인줄 알았다

한 사람의 사랑하는 감정이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지만

그보다는 '사랑'이라는 절대 불변의 진리가 무언가 존재하여

그 감정 하나를 알고 깨닫는것이 중요하다

인생에서 사랑은 단 하나의 존재이다라고 생각해왔다


예전에 어느 인문사회학부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잡설을 풀던 도중

하던 말이 사랑의 정의는 각자 다르다고 했었다

예전이라면 나는 그말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말이 조금은 이해가 가려고 한다

사랑이란건 그사람이 겪은 경험에 따라 혹은 생각에 따라

그사람이 고민하고 느낀대로 정의되고 그렇게 진행되어간다는 것

궂이 사랑의 정의를 내리고 내 사랑이, 혹은 남의 사랑이 옳고 그른지에 대해 판단할 필요가

그다지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있다


내 사랑의 패턴과 방식 역시 많은 변화가 있다

사랑의 감정과 사랑에 대한 내 마음속의 암묵적 정의 역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처음 느꼈던 사랑과 지금의 사랑은 어느정도 차이가 있으며

앞으로 변화할 것이고 그것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경험을 하느냐에 따라

바뀔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지금 역시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어렸을때는 항상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는것을 알게 된 이후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기간과 그렇지 않은 기간과의

내 인생 살이의 변화는 너무나도 뚜렷하다


참으로 불행하게도 나에게는

사랑하지 않는 기간이 사랑하고 있는 기간보다 인생이 건강하고 착실한 편이다

아무래도 내 능력을 이성이 아닌 감정의 문제에 일부 제공하고 있는것이

일상을 조금이나마 불편하게 만든달까?

그만큼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나는 사랑에 투자하고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난 지금 누구를 좋아하고 있어요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려면

어떠한 조건이 필요할까?

(나는 연애를 하기 전까지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을 최대한 아끼려 한다

사랑한다는 말에는 책임이 존재한다고 본다 짝사랑중일때는 그 책임을 질 용기가 안난다)

그 조건이 만족하면 좋아하게 되는 것일까?


그 판단기준은 결국 자신이다

자신이 좋아하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이 의미를 가지고

결국 머릿속으로 자신에게 맞는 조건과 감정의 수위를 결정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그 조건의 변화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변화이고 각자에 대한 정의이다

내 마음속에서는 그 사랑이 정의된 정도를 내 경험과 주변 환경들에 따라

내 가치관의 변화에 맞게 고찰하고 고민하면서 결정하고 바꿀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사랑에 대한 각자의 기준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사랑의 기준은 첫사랑을 하게된 이후로 지속적으로 조금씩 변화해왔다

(변화일 뿐 발전은 아니다 사랑의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이 없는 이상 그냥 변화하는 것이다)

그 변화의 방향은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단순하고 강렬한 것에서

좀 더 복잡하고 이성적인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인데 이성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것은 어찌보면 모순적이다

이러한 방향의 변화는 최종적으로는 사랑의 소멸을 만들게 되는 경우도 있다


중2때 반 친구를 처음 좋아하던 때가 생각난다

누군가가 좋아진 그 감정을 나 스스로 주체할 수가 없어

밤낮을 지새우던 시간이 참 많았던것 같다

수업도 안듣고 그 여자애만 멍하니 보고있었던 기억

그때는 그게 사랑이었고 행복이었다


고등학교때 했던 사랑은 좀 더 현실에 가까워진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중학교때는 그냥 좋아하면 그만이었고 그것에 충실하고 매진했지만

고등학교때는 나를 꾸며야 했고, 잘보여야 했으며, 친해져야만 했다

그것이 사랑의 지속을 가능케 하고, 내 사랑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사랑에 조금이나마 이성적 문제를 포함시키는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쉽게 말하면 '작업의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게 고민을 하고 많은 노력이 시도되었다


내 사랑인생의 제대로된 시작은 대학교때부터로 봐야 옳지 않을까 싶다

학업으로 비유하자면 고등학교때 까지는 개론서 읽으면서 대충 훑기만 했다면

대학교때부터는 전공서적을 보면서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푸는 연습을 많이했다


대학 1학년때의 한 분반친구를 좋아했던 경험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사랑의 카테고리에서 빼버릴 수도 있구나 라는 고민을 던져준

내 사랑인생에 있어서 상당히 커다란 쇼크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사랑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고, 나만의 문제가 아닌 남과의 문제이기 때문에

노력을 해도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은 거의 없다는것

그때문에 감정을 쉽게 내어주고 사랑에 모두 던져버리는 것은

나는 물론 남에게도 커다란 부담을 주고 책임을 던져 준다는 것

사랑 성공의 확률이 높지 않는 나로서는 그것이 화살로 되돌아 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

그 사실을 알게되고 깨닫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겠어'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랑을 해야하는 경우와 하지 말아야 하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 이후의 경험들에도 다양한 의미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한 여자들 죽 읇는 것이 큰 의미가 있는것 같지도 않고 해서

그 이야기까지는 쓸필요 없지 않나 싶다


요즘 다시 사랑에 대한 고민이 늘고 있다

본 활동 무대를 포항에서 서울로 옮긴 이후로

학교에서 느꼈던 몇 안되는 이성들에 대한 사랑의 경험들에 비해

훨씬 다양하고 넓은 이성들과의 만남은 문화적 쇼크로서 다가올만 했었고

그속에서 또다른 사랑을 발견하기위한 다양한 노력과 경험들이

사랑의 가치관 변화에 또 다르게 작용하고 있다


요즘 고민하는 가장 큰 고민은 '좋은 사람'과 '좋아하는 사람'의 고민이다

좋게 말하면 관심의 스펙트럼이 넓고, 나쁘게 말하면 눈이 낮다고 할 정도로

나는 내 주변의 많은 이성들에게 매력을 찾고 느끼고 있다

공대생활을 하는동안 한 경험과 다른 경험때문에 생긴 순간적인 역효과 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내주변의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매력을 느끼고 좋다고 느끼고 있다


물론 그 정도의 경중이 존재하기에

누가 더 좋고 누가 덜 좋고를 판단하고 느끼는것은 가능하다

그것을 결정하는 것도 역시 내 머릿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뭐 내가 느끼는 매력인데 내가 결정하면 어떠한가


좋은 사람은 많다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은 몇명 없다

그런 사람들을 알게되고 만나면 하하가 맨날 말하는

'이번엔 정말 놓치고 싶지 않아'라는 말처럼

정말 내곁에 두고 싶고 함께 하고 싶고 사랑을 나누고 싶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사람을 알게되고 그런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또 좋은 결론이 나게 된다면

사실 이러한 고민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나에게 존재하는 신은 나에게 끊임없는 실패를 던져주어

나의 사랑 승률을 몇년째 0%로 유지시켜줌과 동시에

다시한번 나에게 그 어느것에도 집중하기 힘들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좋은 사람을 좋아하는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좋은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르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버리면

어떻게 되는 가에 대한 고민이 내 머릿속에 추가되었다

그동안 누군가에게 반하고 사랑하고 좋아하고

그사람을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함께하고 싶고, 안아주고 싶고

이러한 감정들에 충실하는 동안 겪은 많은 고통과 슬픔때문에

그사람의 매력에 반하여 두근거리고 매일 생각나는 사람보다는

함께하면 좋고 행복하고, 나에게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하고

그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오고 있었는데


좋은 사람도 상황에 따라 나에게 기쁨만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그와 동시에 사랑은 근본적으로 감정의 문제라는 사실을

내 주변의 수많은 이성들을 볼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경우가 생긴다는 사실을 통해

다시한번 주지받음을 통해

내 사랑의 중심을 이성에 두어야 하는지 감정에 두어야 하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고찰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좋은 사람을 좋아하면 좋게 풀릴줄 알았지만 그렇지 아니하고

그 와중에도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던 사람임에도

매력을 느끼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둘 중 어느곳에 경중을 두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의미이다


이 고민에 대한 결론은

내가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첫 연애를 성공하게 되는가에 따라 바뀌게 될것 같다

그 경험이 나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 변화를 주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단상이라고 했지만 좀 길게 적은듯 하다..

이 글을 몇명이나 읽을까

by 태방 2007. 1. 21. 04:02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396825

여캠에서 조원들끼리 모여

새벽 3~4시쯤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전까지는 다른 조원들의 겐세이가 너무 심해서;;)

서로 본지 이틀밖에 안된 사람들인데도

사실 모두가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라는거는 한눈에 쉽게 알 수 있을 정도였고

다들 진솔하고 편했기 때문에 정말 의도치않게 가슴 깊은곳의 이야기까지

모두에게 쉽게 할 수 있어서 참 기분이 좋았었다


그 도중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참으로 분위기 어색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채영이 형님이;;

뜬금없이 '자신이 가장 후회했던 일이나 죄책감을 느꼈던 일을 말해보라'라고 하더라


그때까지 술자리 공식 이야기인 이성문제 이야기가 나오질 않던 상황에

내가 자연스러 먼저 꺼내면서 주절주절 떠들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해도 좀 너무 감상적으로 떠들어 대긴 했지만;;

정말 내인생에서 남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엄청난 죄책감으로 다가오는 일을 사람들에게 정직하게 답변해 주었다


나를 시작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책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성문제 이야기를 먼저 꺼내긴 했지만 어쨌든 이야기의 초점은 죄책감에 있었음에도

사람들은 다들 자신이 이성에게 못되게 굴었던 이야기들을 하나둘씩 꺼내기 시작했다


가장 죄책감이 느껴졌던 일을 말했을 뿐인데 다들 공통된 주제로 귀결되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지만

어찌보면 그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게


죄책감이라는것은 죄를 지었다는 생각에 드는 책무 같은 거랄까

자신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을 지금이던 혹은 나중이건 알게 되어

그 사실에 책무를 느껴 괴로워 한다는 감정일텐데


사랑의 아픔을 겪어본 사람들

자신이 겪은 아픔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그 고통을 상대방에게 주어졌을때의 그 죄의식

자신이 남에게 고통을 준 매개체였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그사람에게 되려 화살로 돌아와 괴로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감정의 아픔중에서 사랑의 아픔을

가장 크게 느끼는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Worse then the total agony of being in love?"

                                         - Love Actually 中

by 태방 2007. 1. 21. 02:48
[63호] 잡아요 2007.01.21 01:47
http://paper.cyworld.com/simsimpuleea/1989133
 


 

하지만

역시


귀찮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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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방 2007. 1. 21. 01:47

http://blog.naver.com/nogari9/100033239860

 
출처 뉴스 > 일다 2006-10-30 02:39

뉴스 :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
생각의 변화, 삶의 변화
[일다 2006-10-30 02:39]
대학에 입학한 뒤로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너는 참 변한 게 없구나”, “그대로네!”라는 말들을 한다. 그럴 때면 가만히 웃으면서 “내면은 많이 변했어!”라고 대답한다. 멋지게 변할 거야, 달라질 거야! 라며 다짐하듯 말하고는 끝에 꼭 “나중에…”라고 변명하듯 덧붙이던 예전과는 달리, 지금의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 변하고 있다.’

어렸을 적에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대통령, 우주조종사, 피아니스트, 화가, 발레리나 등을 대며 그저 멋있어 보이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러니까 매우 허무맹랑한 단어들을 자랑스럽게 쏟아내곤 했다. 말해 놓고도 내가 뭘 하고 싶다는 건지 몰랐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의 대답에 꽤나 만족해하시는 눈치였다. 나도 그것으로 만족했다.

그리고 인생은 따로 돌아갔다. 공부를 해야지, 대학에 가야지, 이걸로 먹고 살 것도 아닌데 왜 이런 걸 해야 하나 라는 핑계들을 갖다 붙이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허망한 꿈을 마음으로 좇고, 노력하지도 않았으면서 좌절하고,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넋두리를 늘어놓는 일들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더는 그러지 말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인생의 한철을 대부분 어떤 직업에 대한 준비시기로 보내기엔 한 번뿐인 내 삶이 너무나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학교에 가서는 고등학교를 준비하고, 고등학교에서는 대학을, 대학에서는 취업을, 그렇게 빙빙 돌다 문득 속아 산 듯한 느낌을 받게 되고, 그렇지만 하소연할 곳은 없어지는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평소 흠모하던 곳에 가보고 싶으면 정말 가는 거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혹은 걸어서. 변화는 지금 내가 떼는 한 걸음을 시작으로 이뤄진다.

또 한 가지 삶의 변화를 위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TV를 끄는 일이다. 대신 스스로 생각할 시간을 늘렸다. 일방적으로 전송되는 전파에 온 생각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호기심이 생기는 대상에 대한 자료는 직접 선택해서 찾아본다. 그리고 더 많이 생각하고, 생각을 정리한다. 친구들과 그런 생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고민하던 일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작은 일이라도 무엇인가 한다. 1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다. 혼자서 생각하기로 결심을 하고 나서, 가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놀라곤 했다. 그 동안 다른 사람의 생각, 다른 사람의 취향에 길들여져 ‘나’의 생각은 없고, 그 때문에 단순한 일상어 수준에서 반복되는 단어들 말고는 내 자신에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제는 교수님 한 분과 친구와 저녁을 함께 먹을 일이 있었다. 그 친구가 대화 중에 교수님께 “교수님은 꿈이 뭐에요?”라고 여쭈었다. “응, 나는 책을 꼭 쓰고 싶어, 세 권 정도.” 답변을 들으니 사뭇 진지하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기분 좋은 꿈이란 생각이 들었다. 문득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현재 꿈꾸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현실에 발을 딛고 꾸는 그들의 꿈은, 내가 어렸을 때 뱉던 공허한 단어들과 어떻게 다를까?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 내게 ‘꿈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줄까? 적어도 나 스스로, 사회적 나이에 상관 없이 내 꿈에 대해 계속 질문을 할 수 있을까? 계속 꿈꾸고, 걷고, 질문하고, 변화하며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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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마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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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방 2007. 1. 17. 0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