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이다
우울하고 두려웠던 시간들이 금새 지나갔다
밥도 먹지 못하며 이불을 끄억끄억 씹어가며
미련하게 겨울방학을 보내던 내 우울한 감정의 시작도 벌써 5년전
아직도 우울함을 떠올리면 그때가 떠오르는걸 보니
그때의 상처가 크긴 컸나 보다

사랑과 인연의 사이에서 방황하던 시간들은
줄어들기는 커녕 버릇처럼 갈수록 늘어만 가고 있다
나의 못된 버릇은 누가 알려주지도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고
게다가 젤 중요한건 누가 고쳐줄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대 중반 무렵의 겨울 어느날, 이제서야 난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내가 얼마나 무식한 놈이었는지를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으며
가슴 깊이 깨닫고 느끼고 있다

선생님한테 100번을 설명을 들어도 문제를 풀어보지 않으면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그런 답들
하지만 문제를 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잡고 앉아 았으면
교과서를 당장이라도 집어 던져버렸어야 정상인 그런 인생의 고민들
그 고민들을 가슴 깊이 안고서 몇년이고 미련하게 이렇게
수많은 인연들을 절벽속에 던지고 나서야 하늘은 왜
이런 허무한 결론을 이제서야 알려주셨던 것일까

이야기가 절정에 도달할수록 그 변화는 격해지는 것일까
이보다 더 복잡하고 다난할 수 없었던 내 인생의 2008년속에서
나는 내 고민의 절정을 느꼈고 그 절정의 모든 문제들에 봉착했었다
1월의 그날, 2월의 그날, 3월의 그날, 4월의 그날, 5월의 그날, 6월의 그날
7월의 그날, 8월의 그날, 9월의 그날, 10월의 그날, 11월의 그날
그리고 오늘, 12월의 그날
이 글을 쓰게 되기까지 2008년은 나에게 한달에 한번꼴로
문제를 던져주고 고민을 던져주고 해결책은 주지 않았다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우울의 한계는 한달에 한번이었을까
이제서야 신은 나에게 별거 아니라는 듯 몇문장의 글들로 답을 던져주셨다

이렇게 될 것이었던건가
몇년간의 수많은 고민의 시간,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잃어버리게 된 인연, 어짜피 모든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스물 다섯의 문턱앞에 선 나는, 그 누구도 쉽게 들어설 수 없는 문을
그래, 생각보다 쉽지 않게 들어서는데 성공했다

아련함의 미학, 우울함의 마약, 그 나락으로 떨어지는 공포감도
올해가 떠나가기 전 가뿐하게 한번 더 맛보게 해주었고
너의 그 공포는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절묘한 타이밍에 알려준 지금의 세상

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아직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주변의 인연들이
조금씩 내 결론에 실마리를 던져주기도 했었다
그렇게 헐벗으며 끝나지 않았어도
그저 그렇게 살 수 있었던 기회가 존재했었다
근데 왜 이제와서 다시
나를 이렇게 한껏 두려움에 떨게 만들어놓고
쓸데없는 허무함과 안타까움까지 마지막까지 맛보게 한채
다 완성되지도 않는 나의 마음에 답지를 던져준 이유는 무엇일까

난 대체 이 2008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2009년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

참 오묘하다 이 세상
다 벗겨졌다고 생각되는 마음도 양파껍질처럼 끝도없이 벗겨지고
다 알았다고 생각될때 쯤에 다시한번 뒤통수를 치는 이 세상
1년내내 수능공부해서 눈감고도 문제를 풀 수 있을정도로
세상에 익숙해진 수험생이 되려면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 것일까

궁금한 나날들

나를 버렸던, 아니 내가 쓰레기로 만들어 버린 수많은 그대들은
이 세상 어느곳에서 다양하게 숨쉬고 살아갈텐데
그 많은 영혼들은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는데
이제와서 나는 미래의 영혼들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으며, 무엇을 남겨야만 하는 것인가

궁금한 나날들

마지막에 던져진 영혼은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다
몇번의 실수, 그렇게 멀리 갈줄은 몰랐는데
그냥 그렇게 내버려두기 가장 어려운 조건
그 조건을 앞에두고 나는 마크툽을 알아버렸다

왜 세상은
해결될것처럼 해놓고
계속 고민을 던져주는 것일까

내 인생의 바이블같은 존재라도 있었으면 하는 나날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이게 인생이겠지?
하면서 그냥 버텨볼만큼 더 버텨보게 될 나날들

2009년은 그렇게 다가 오겠지?

수고했다 2008년의 태현아
by 태방 2008. 12. 24. 00:30

능력이 있거나 잘난 사람들은 반드시 잘난척을 할 수밖에 없다
능력을 숨기고 봉인하지 않는 이상 그 능력이 드러날 수 밖에 없고
그건 결국 자연스레 잘난척(의도하건 의도하지 않았건)이 된다
이 사회의 구조상 튀면 질투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기에
그런 사람은 자연스레 모난데 정 맞고 이리저리 치일 수 밖에 없다
어떤 이유에서건, 어떤 상황에서건 말이다

반면 스스로 자만에 빠져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잘하는건 누구나가 아는 사실이지만 그 잘하는 정도에 쉽게 만족하고
남들에게 그 능력을 보여주는데에만 집중하게 되어
발전이 줄어들고 성과도 내지 못하는 무딘 천재들을 우리는 종종 접하게 된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위의 두가지 상황을 모두 극복할 줄 알아야 한다
잘난척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만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스스로를 낮출줄 아는 노력이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겸손을 의미하는것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에 대한 객관화를 통해서 점수와 등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한 조절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63빌딩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건물이지만 그보다 높은 빌딩은 전세계에 얼마든지 있다
세상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 높은 하늘이 없는것은 아니다
잘난것을 알리는것은 사실 아무런 도움이 되질 않는다
노력하고 보여주면 자연스레 드러나는게 개인의 능력이다
(특히나 보이는것이 모든것인 세계에서는 말이다)

뭐 성공이 목표인 사람들에게는 어필도 중요한 덕목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필을 하는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라 볼 수 있다
어필은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보여줄 것인가 이다
(물론 겸손이 이런 효과를 조금 감소시킬 수는 있겠지만)
스스로에게는 겸손하는것이 능력을 극대화 시키는데 있어서는 필수적이다.
그래야만 노력하고 발전하며 더 좋은 능력을 얻을 수가 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 만들어 진 데에는
(즉 내가 가지고 있는 몇몇의 능력이 완성된데에는)
도전의식이나 승부욕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건 겸손의 미덕이 아니었을가 싶다.

by 태방 2008. 12. 15. 23:55
살아가면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난다
아니 다시 이야기 하자 살아가는것은 많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심지어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다가 방구를 껴도 그건 사건이다
(일단 냄새는 나지 않는가 ㅎㅎㅎ)

사건은 우연적이기도 필연적이기도 하다
게다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사건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영향을 만들어 낸다

그 관계속에서 그 사건속에서
다양한 우연과 필연을 접하지만
인간은 둔하고 바보같아서 모든 사건을 필연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게 뭔 소리인고 하니
나는 상대에게 무의식속에 던진 아무렇지 않은 사건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필연이 된다면 그 의미는 달라진자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사건이 생겼는데
한쪽은 우연이 되고 한쪽은 필연이 된다

이는 생각보다 자주 있는 일이다
지하철을 타다가 옆사람과 부딫쳤어도
무심결에 지나간 사람은 우연일 것이고
신경쓰여서 짜증을 내면 그건 필연으로 느껴질 것이다
(특별하게 생각하는 순간 그건 필연이 되어버린다)

사소한것들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삶은 피곤해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뭐 무엇이 우연인지 필연인지 판단하는것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지만
우연은 우연일뿐 필연은 필연일뿐
그 사이의 무언가를 잘 신경써야 하는 하루하루가 고단할뿐
그 이상을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오돌오돌 찬바람에 떨면서 문득 생각났다

결국은 편하게 살라는 말 ㅎㅎ
by 태방 2008. 12. 6. 02:59
이놈의 티스토리의 하얀 배경화면은 정말 글쓰기 싫어지게 만든다
무슨 타자연습의 글자 채우기 기분도 아니고 이거 원;;;
글쓰기는 재미있어야 하는데 여기다 글쓰고 있으면 무슨 보고서 쓰는 기분이다
아 짱나

글쓰기가 한참 즐거웠을때가 있었다
글쓰기를 시작한건 아마 대학교 1학년때 홈페이지를 열어서일때쯤
아직도 그 홈페이지가 사라지지 않고 존재한다는건 참 신기한 일이다
하루하루 떠오르는 생각들을 날리기 싫은 마음에 아침에 일어나 저녁까지
홈페이지에 어떤 글을 쓸까를 고민하면서 자기전 12시쯤에
뭔 소린지도 알수없는(지금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그런 글들을 마구 끄적대곤 했는데
(그런 글들이 1000개가 넘어가는걸 볼때면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이 들정도;;)

그렇게 글을 남기는 것이 나를 남기는 것이고 나를 남기는 것이 나를 보이는 것이라고
무의미한 고집을 피우면서 글을 썼던것 같다
(그래서 조회수가 낮으면 상처받고 막 그랬기도 했고;;;)

싸이 다이어리와 블로그를 시작하면서 글의 의미가 조금 달라졌다
처음에는 내 생각을 돌출해 내기위한 공간으로서 블로그를 사용하다가
어느날 문득 블로그에 쓰고 있는 내 글을 볼때면
개요없이 초록없이 그냥 마구 갈겨도 완성된 글은 결국 나 자신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교지편집위원회를 하면서 생각을 짜내며 글을 쓰던 버릇은 조금씩 버려지고
그냥 떠오르는대로 족적을 남기며 잡글이 되는 버릇도 고쳐나가다 보니
나의 글은 어느새 기나긴 장문이 되고 나의 생각이 되고
그 글이 나의 행동까지 결정짓게 되는 그런 상황

예전 네이버 블로그에 써놓은 글들을 보고있으면 나조차도 가끔씩 놀랄때가 많다
비밀을 말하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숨기고 싶은 마음에 배웠던 은유의 기법들과
힙합동아리를 하며 가사를 쓰고 싶은 마음에 열심히 탐구했던 라임의 운율을 이용한 대구의 기법들과
말주변이 없고 언어능력이 부족해 무엇이든 주변의 사물에 같다 붙이면서 배운 직유의 기법들
그 모든것이 어우러 지면서 완전히 내 감정에 빠져들어 정말 손가락만 움직여 가며 글을 쓰다보면
그 글은 그 글 자체로 온전히 나의 마음이 되어있고 나의 생각이 되어 있을때가 많았다

나는 말보다 생각의 속도가 더 빠른 편이다(그게 절대 좋은것은 아니라는것을 미리 밝혀두고;;)
덕분에 말도 많이 더듬고, 내가 말해놓고도 무슨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많고
나의 생각을 설명하는데 엄청나게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을 쓸때는 오히려 나의 생각의 속도는 조금 느려진다
왜냐하면 말은 뱉으면 그만이지만 글은 써야 글이 되기 때문에
내 타자속도보다는 더 빨리 생각을 할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을 쓰면서 생각을 하게 되고 그 생각의 방향대로 손을 바삐 움직이게 되고
그러면서 나의 생각을 차분하고 천천히 정리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글을 쓰면 쓰고자 하는 방향과 다르게 삼천리로 빠지더라도
결국은 마지막 한줄을 찍고 나서 글의 결론과 나의 결론이 일치함에
또 그것이 아주 바람직하다고 느낌에 스스로 만족하며 확인 버튼을 누르곤 한다

2007년 그리고 2008년 내가 끊임없이 변하고 끊임없이 부딫치면서
끊임없이 힘들어 하고 끊임없이 고민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나는 여과없이 블로그에 글을 이용하여 풀어 대었고 그 속에서 나를 만들어 갔다
블로그는 정신없이 버려진 나를 찾는 나만의 소통 공간이었으며
말하지 못하는 모든 고민들을 담아내는데 이용한 공개되어 있으면서도 폐쇠된 공간이었다
(블로그는 일부러 들어오지 않으면 읽지 않으니, 리플로 티내지 않으면 읽은줄 알수도 없으니
나에게는 아무도 읽지 않는 비밀 일기장같은 느낌의 공간이었다
물론 힌트도 주지않는 극단적 은유의 표현들 덕분이기도 하지만)

2008년 들어와서는 그런 특성이 더더욱 강해져
거의 스트레스의 해소 장소 + 케묵은 감성의 발효공간 + 뒤틀린 고민에 대한 분노 표출의 공간으로서
블로그를 많이 활용했던거 같다
뭐 스스로의 가치관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그 속에서 경험한 끊임없는 고뇌와 고통은 여전히 괴로웠다는 생각이 들지만;;
어쨌건 그 기간동안 수많은 사건과 사고들 수많은 사람과 수많은 경험들이
내 블로그속에서 마구 헤집어져 갔고 욕먹어 갔으며
나 스스로 또한 그속에서 죽이고 죽이고 또 죽이며 삶을 연명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다 4주 훈련을 갔고, 짧은 4주동안 인생의 빅뱅의 경험하며
내 이런 글의 최후의 종말점이라 할 수 있는, 2시 불침번 끝나고 눈물을 참아가며 화장실에서 몰래 쓴
녹색 육군편지지에 적혀진 세장의 처참한 논문을 끝으로 난 절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이후에 쓴 글들은 의무감 + 아직 잔존해있던 과거의 버릇때문에 쓴거라고 보는게 옳을 것이다)

그 이후 스스로에게 쿨 해지기 위해 여러 실수들을 겪으면서 온전한 나를 찾는데 성공했고
(스윙이 그 속에서 나에게 톡톡한 역할을 해주었다 정말로 눈물겹게 감사한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다시 나의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록의 욕망이 떠올라
다시 이곳에 글을 써볼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게 되었다
(이 역시 글 쓰면서 생각해본 바이다..;; 처음부터 이런 의도로 쓸 마음은 전혀 없었다 ㅋㅋ)

뭐 감성의 쓰레기통이야 싸이 다이어리라는 아주 조용하면서도 훌륭한 공간이 있으니
과거의 잔존해있는 20대 초반의 김태현의 방황의 흔적은 거기에다 열심히 묻어두면 될 것이고
이곳에다가는 이십대 중반의 김태현에 대한 온갖 소고들을 가득 담아두면 되지 않겠냐 싶다
그래야 또 성장할 것이고, 좀더 멋진 이십대 후반의 김태현이 완성될 것이지 않겠냐 싶고

글이라는게 이래서 참 재미있다
남의 글을 읽어도 내글이고 내글을 써도 내글이다
글이 내가되고 내가 글이될 수 있다면 글만큼 재미있는 취미생활도 없을 것이다
(물론 글이 내가되는데 드는 이해력과 내가 글이될 수 있는 진솔함을 갖추는데는 수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자기전 10분간의 글쓰기 시간만큼 나를 정리하는데 훌륭한 시간이 존재할까
바쁜 일상에서 이런 틀을 계속 유지하고픈 욕망이 이놈의 허여멀건한 글쓰기 창에가다;;;
장문의 논문을 작성하는 가장 큰이유가 아닐까 싶다 ㅎㅎ
by 태방 2008. 12. 4. 01:20

조용히 늙어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며
세월을 흘려 보낸지도 꽤나 지겨운 시간들이 흘러가고 있다
아직도 늙어갈 날들이 10배는 넘게 남았지만
인생의 흰머리가 검정머리로 변할꺼라는 상상이 잘 안되는 기분은
왜이리 삶을 재미없게 만들어 버릴까

내 주변에서 나의 어릴적 모습을 발견한다
또 주변에서 나의 늙은후 모습을 발견한다
인간의 인생이 그리 특별할껀 없는것
자연은 언제나 발생을 통해 진화를 보여주곤 한다
결국 나 역시 특별할거 없는 평범한 인생을 살아가겠지

누구나 이 세상에서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그만큼 누구나 이 세상에서 평범하지 않은 사람도 없다
잘나기 위해 발버둥치는거 만큼 피곤한 일도 없다는것을 알게되고
나는 조용히 또 묵묵히 평범한 인생을 사는데
조금씩 조금씩 시나브로 익숙해지고 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더욱 특별해진다
나의 인생을 묵묵히 걸어갈수록 나는 남들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오만하지 않고 편협하지 않으면 된다
이리저리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질 않고
마모가 심한 매끄러운 돌들은 더더욱 광택을 낸다
세상의 강변에서 나는 얼마나 빛나고 있을까
문득 나의 장점을 들여다보고 있을때마다
나는 정말로 특별한 인생을 살고 있노라고 가슴 깊이 새겨둔다

다운된것은 정말로 싫다 살짝 흥분된 기분은 나를 즐겁게 한다
주간의 답답한 일과속에서 신선함은 나에게 활력소를 준다
그 활력소는 술처럼 담배처럼 마약처럼 중독되어 버린다
내 인생을 늙지 않게 만드는 그 유일한 끈을 잡는다
빛나는 보석처럼 살꺼라는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렇게 매 순간순간 빛나게 살고 있으면
묵묵히 내 속에서 내가 진화하고 있음을 잃지 않으면
뜻하지 않게 생각보다 난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듯 하다

세상에 더렵혀지고 인내심은 한계에 다달아 가지만
난 여전히 아름다움을 갈구한다

by 태방 2008. 8. 17. 00:50
일을 조직화하고 계층화하고 서로의 일을 나누는 일은 왜 생겼는가
에 대한 고민을 문득 한적이 있다
공동체 생활을 어지간히 이곳저곳에서 하면서
또 수많은 조직을 만들고 없어지고 흥하고 망하는 꼴을 보면서
우리는 왜 조직을 계층화하고, 분업을 구조화 하려고 하는가에 대한
쓸데없는 고민을 문득 하게 되었다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일을 효율적으로 진행하여 남들보다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도 있으며
수많은 조직원을 동원하고, 모집하여 힘빨로 밀어 붙이는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한명의 카리스마있는 리더십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원하는 일을 깔끔하게 수행해 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중에 최고 으뜸을
자발적인 구성원을 통해 무조건 앞으로만 나갈 수 밖에 없는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조직이라고 말하고 싶다
조직의 방향은 조직의 구성원들이 가장 제대로 파악할 수 있고
그 파악한 방향을 능동적이고 발전적으로 가장 빨리 움직일 수 있으려면
아는 사람이 직접 발로 뛰면서 이것저것 시도를 해봐야 한다
어짜피 하나의 조직이 여러 환경에 부딫치면서 생기는 시행착오는
어느조직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하지만 위의 여러가지 과정(분업이니 동원이니 카리스마니)하는 방법에서는
그 경험을 조직의 구성원들이 습득하지 못하고 발전에 방해요소로만 작용하지만
능동적인 구성원들이 조직을 직접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하게 되면
그 모든 성공과 실패의 과정들이 조직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고
나아가 조직의 성공으로 이끄는데 최고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치자
동아리를 만들자마자 하는일이 분업이라면
그 동아리는 할게 없다. 왜? 일도 없는데 일을 나눴으니 말이다
아무리 할일이 정해지더라도 일단 나누고 나면 관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관리자는 일을 다방면으로 두루두루 한 사람이
긴안목과 큰 시야를 가지고 일사분란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조직이라는게 그렇게해서 쉽게 돌아가지가 않는다는것이 현실이요
이사회가 그렇게 분업화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기에는 너무 복잡한 일들이 많은것이 현실이다
갓 대학에 들어온 사람들을 데려다 뭔 부장이나 뭔 차장이니 맡겨놓고
대학 갓 2~3년 다닌 선배들이 이거 주문하고 저거 주문하고 하는 식은
아무리 잘해봐야 전년도 선배들이 한거 답습하는 수준 이상을 못벗어 나는것이 대부분이다

조직동원은 뭐 말할것도 없이 일회성 성공 이상은 거둘수 없는 구성이고
카리스마적 리더십도 사실상 리더의 능력에 의존할 뿐 발전성은 전혀 없는 조직의 체계이다

하지만 능동적인 구성원으로 조직된 단체는 상황이 다르다
활발한 의견개진과 충돌, 그 속에서 생산적인 결론(이게 젤로 중요)이 나오게 되면
그 결론에 대해 적극적으로 구성원들이 움직이게 되고
그러는 과정에서 자기일이라고 생각하며 덤비면서, 자연스래 개선안과 아이디어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왜? 능동적이면 생각이 많아지고 많은 생각이 모이면 당연히 좋은 생각이 나오기 마련이다
즉 자기일이라고 마음먹고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조직이라면
어떤 일이 담당인지, 어떤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그리 중요치 않고
생각과 경험을 모아모아 가면서 그 조직을 건강하게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난 분업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다
특히나 큰 조직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일상적 분업이 아닌 조직적 분업은, 자신의 일의 영역을 한정시켜 놓는다는 특징이 있다
(우리가 요리할때 나눠서 하는 분업을 생각하면 안된다
회사에서 기획은 기획만, 영업은 영업만, 홍보는 홍보만 하는 식의 분업을 의미한다)
그러한 과정에서 남의 일은 남의일이고 나의 일은 나의 일일 뿐이다
남일에 내가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남일이니 거들떠도 안볼 것이고,
남일에 내가 좋은 경험이 있어도 남일이니 전혀 줄 마음도 없을 것이다(아니 받을 마음도 없다 애초에)
보통 조직들이 그렇게 돌아간다
일이 하나 있으면 "그건 어디서 하는 일이잖아요"를 너무나 쉽게 외치는 조직은
사실상 큰 발전이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일정량의 체계화는 필요하지만
결국 자기일이 아니라고 넘겨버리는 식의 조직은 능동성이 전혀 보이질 않는다)

분업이 생긴 이유가 그게 아닐까?
난 이일 하기 귀찮으니 이일 할사람 따로 두자
난 나한테 쉬운 이거만 할꺼니까 어려운거는 남 주자
그런 마인드로 생긴 것이 바로 분업이 아닐까 한다
(라는 생각 진짜 많이많이 드는 요즘이다)

능동성을 확보하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것까지 논의로 하는것은 둘째로 하더라도
일단 그 능동성을 조직에 확보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조직을 만드는데
현대사회에서는 매우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라고 경영학의 ㄱ도 모르는 공돌이가 글을 남긴다 -ㅇ-)

아 경영학 왠지 배워보고 싶은 학문이다.
by 태방 2008. 8. 5. 01:03
삶의 굴곡이 많은 사람들이나
인생의 희노애락이 다양한 사람들은
강한 정신력과 대범한 자신감
그리고 넓은 포용력을 삶의 무기로 얻게 된다

시련이 인간을 강하게 한다라는
궂이 너무나도 뻔한 명언을 꺼내지 않더라도
인간에게 주어진 나쁜 경험들은
훌륭한 인간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곧 좋은 경험으로 승화되게 된다

훌륭한 인간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성공한 인간이 되려면 무엇을 해야하는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은 좀 무서운 말이지만
고생끝에 낙이온다라는 말은 좀 즐겁지 않은가?
낙을 얻기위해서는 우리는 고생을 반드시 필연조건으로 가져야만 하는가
하는 의문은 누구나 가져보는 인생의 대표 질문이기도 하다

인생의 목적이 행복에 있음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거니만은
그 행복이 고생끝에 올 수 있다는 명제를 누가 당당히 내밀 수 있겠는가
고생은 힘들다, 고생을 달게 넘길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행복의 마음을 느껴본 사람이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고생이 고생을 낳기도 하는 마당에, 나약한 인간이
무한한 신의 세계에 얼마나 싸워서 이겨낼 지도 의문이다
고생끝에 낙이 올것을 기다리기에는 우리 인생은 그닥 길지도 않으며
사회가 보장해주는 청춘은 더더욱이나 짧디 짧기만 하다

젋은 시기에 겪는 고생들은 대부분 상상할 수 없는 고생들이 대부분이다
젊은 시기에 겪는 고생을 미리 알고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 않은가
청춘은 언제나 새로운 경험들로 항상 목놓아 울고 있으며
그 울음뒤에는 언제나.. 는 절대 아니고, 역시 좀 센스가 있다 싶은 사람들만
아니면 작은것도 깊게 생각하고, 아니면 경험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니면 모든일에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멘탈이 아주 강한 사람들에게
그 고생의 경험은 깨달음으로 다가오게 한다

훌륭한 선자, 선인들이 왜 그렇게 되었겠는가
인간이 공부로 알 수 있는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터
깊고 깊은 자아성찰의 기회는 분명 젊은 시기의 고생에서 씨앗을 찾을 수가 있는 법이다
인간이 유식하기도 하지만 무식하기도 해서 몸으로 부딫치지 않으면
절대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기도 하니 말이다

게다가 사회와 적극적으로 부딫치는 청춘이라면 그 방향은 더욱 정교해진다
어짜피 수많은 사람과 만나가며 살아가는거, 그 사람들에게 받는 시련이라면
그 시련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있어, 아니 타인을 이해하고 인간의 본성을 이해하는데 있어
더없이 좋은 씨앗이 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 씨앗이 깨달음으로 성장하는건 개인의 몫이지만
적어도 씨앗의 품종은 개인에서 나온것 보다 타인에게서 나온것이 더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청춘은 낭떠러지에 백만번이고 떨어져봐야 하는 것이다
시련은 인간을 강하게 한다, 고생끝에 낙이온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한다
따위의 이해 불문 암기식 명언을 꺼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인간을 이해하고 나 역시 바로 선 인간이 되기위해
남들이 밀어낸 낭떠러지로 여러번이고 떨어져야 하는 것이다
(물론 주객이 전도되어서는 안된다 떨어져서 떨어지는거지 떨어지기위해 떨어지는건 참 웃긴일이다)
그 낭떠러지의 깊이가 깊다면 더더욱 좋다
그 깊이가 깊다는 것은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었기 때문이니 말이다
물론 내가 갈 길이 옮은 길일지는 도저히 모르는 일이자만
그 길과 거리가 멀다면 낭떠러지는 더더욱 깊어질 것이고
나에게 돌아오는 시련은 더더욱 커질 것이며
내가 느끼게 될 깨달음은 더더욱 변화무쌍해 질 것이다

운동을 하면 건강이 생긴다
운동을 즐길줄 아는 사람은 건강의 행복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비록 행복은 모르고 있는 슬픈 청춘이라 할지라도
건강해질 내 모습을 생각한다면 슬플때 슬프더라도
시련을 두려워해서는 안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계속 되뇌이며 살아야 겠다고
문득 생각이 들었다.
by 태방 2008. 7. 23. 00:18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건 어떤 일일까

사람은 당연하게 너무나도 당연하게
나 중심적으로, 이기적으로 살아간다
너무나도 당연한 일
나에게 닥친 일들, 나에게 머문 일들
그것들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을때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게 인간이다

남을 위해 살아간다는건 어떤 일일까
내가 아끼는 것들 내 주변의 것들
내가 아끼는 사람 내 주변의 사람
그들에게 웃음을 짓게 해 줄수 있는 것
그 마음을 안고 살 수 있다면
남을 위해서 살아갈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그러고 살아가는 것일까

우리는 행복을 자꾸만 나 자신에서만 찾아간다
내가 잘되고 내가 멋지고 내가 부자가 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이놈의 세상이 완벽하게 돌아가줘야만
행복을 누렸다고 가정하곤 한다

하지만 세상은 내가 없어도 너무나 멀쩡하게
잘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은 왜 잊고 사는 것일까

내가 내 인생의 중심일 수는 있지만
내가 이 세상의 중심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화를 내곤 한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내 주변의 사람들이
힘들어 하고 짜증을 내고 답답해 하면
도움을 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왜 너는 힘들어 하고 짜증을 내고 답답해 하니
나도 힘들고 짜증나고 답답한데 말이야
라고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곤 한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내 주변의 사람들이
기쁘고 행복하고 즐겁다고 말하게 되면
같이 함께하고 축하해주어야 하는것이 당연한데도
왜 너는 기뻐하고 행복해 하고 즐거워하니
나는 이렇게 기쁘지 않고 행복하지 않고 즐겁지도 않은데
라고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하곤 한다

너무 각박하다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것은
너무 어려운 일일까?
서로가 서로를 소중해 하는 마음이 전해진다면
그 연결된 마음끼리는 감정도 하나의 끈으로 엮이게 된다
그러면 남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요 나의 행복이 곧 남의 행복이다
내 배려에 내 도움에 감사해 하는 마음을 받는 것이 행복이요
나의 행복에 나의 기쁨에 같이 환호해 주는 마음 역시 행복인 것을
서로가 서로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쉬운 길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놓쳐 버리고 살아간다

경조사때 먼저 찾아가 그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배려
오래 연락 안된 친구에게 잠깐 짬내어 안부를 묻는 전화
쓰러져 가는 인생을 술한잔 하며 부등켜 안아 줄 수 있는 마음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 주고 받으며 힘들때 힘이 되주는 잠깐의 도움

행동에 매너를 갖추고, 남 기분좋게 재롱떨고, 겸손과 이타를 넘나들며
그렇게 눈에 티나게 남에게 잘보이는 것보다도
사실 이러한 보이지 않는 마음들이 좀 더 편안하게
우리에게 더불어 사는 행복으로 발전하기 쉬운 법이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사랑과 나눔으로 만들어 가는 행복일 것이다
by 태방 2008. 6. 24. 00:35
http://blog.naver.com/nogari9/100051613432

우리는 사람을 앞에 두고

두가지 동아줄을 놓고 산다

하나는 신뢰의 동아줄

하나는 불신의 동아줄


두 동아줄중 하나는 썩은 동아줄이다

썩은 동아줄을 잡으면

그 사람을 믿고 잡았던 끈을 잡다가

바닥에 곤두박질 쳐 버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게 되고

친해지고 관계를 맺다보면

여러가지 이유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받을 때도

혹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를 하게 될때도 있다


친절한 웃음으로, 혹은 따뜻한 배려로

싸구려 웃음으로, 혹은 센스없는 말투로

서로가 서로에게 동아줄을 내밀곤 한다


이 동아줄이 썩은 동아줄인가 온전한 동아줄인가


썩은 동아줄에게 불신을 보내면

당신은 안전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다

온전한 동아줄에 신뢰를 보내면

당신은 성공적으로 도움을 받고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반면 썩은 동아줄에게 신뢰를 보내면

완전히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수가 있고

온전한 동아줄에 불신을 보내면

소중한 인연 하나를 놓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동아줄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시각이 있다

온통 못믿겠다며 불신을 가지고 동아줄을 다 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착한건지 순진한건지 모든 동아줄을 넙죽넙죽 잡아넣고 기대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사람을 보는 눈이 좋아서 냉큼 좋은 동아줄을 잡아 성공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달콤한 썩은 동아줄의 유혹에 넘어가 매일마다 땅바닥에 곤두박질 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을 얼마나 신뢰할만 한가에 대한 기준은 각자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심으로 온전한 동아줄을 내미는 사람을 허위라고 무시하고

언제나 썩은 동아줄로 농락하는 사람을 믿음이 간다고 달려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러한 정형화된 패턴들이 존재함에도 발견하지 못한채

사실과 온전함을 말하는 동아줄들이 땅바닥에 버려지는 오류를 자주 만들어 낸다


이는 동아줄을 선택하는 기준이

동아줄의 시작부분이 아닌 동아줄의 끝부분에 있기 때문이다


썩은 동아줄도 끝부분은 온전하다

온전한 동아줄도 손잡이가 엉망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건 동아줄의 끝부분이 얼마나 성한지이다

아무리 끝이 깔끔하더라도 윗부분이 썩었으면 끊어지는건 당연지사고

손잡이가 조금 헐었더라도 본체가 튼튼하면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끝부분만 보고 이를 판단하게 된다


진심을 담은 친절은 언제나 투박하고 어색하기 마련이며

거짓을 담은 친절은 언제나 매력적이고 달콤하기 마련이다

남들이 친절하게 내미는 동아줄을 바라볼때는

친절을 볼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볼줄 알아야 한다

맘에 안들고 쓸모없다고 보일지라도 그것에 진심이 있다면

그 동아줄은 언제 잡아도 튼튼할 것이며

잠깐잠깐 보기에 괜찮고 맘에드는 모습이라 할지라도

그 뒤에 숨어서 썩은 동아줄을 물감으로 감추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조금 멀리 보는 연습을 하자

그래야 좋은 사람들과 오랫동안 좋게 살아갈 수 있는 법이다

by 태방 2008. 6. 9. 00:13
http://blog.naver.com/nogari9/100051477394

희망 절망 좌절 분노

욕심 질투 집착 애절


혼돈의 시기를 벗어나

새로운 여행에 나서기로 맘 먹었지만

과거의 관성이 나를 여전히 흔드는건 어쩔 수 없는 일


모든 일에 초탈하며 살기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그렇게 살기

크게 신경 쓰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버리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내 인생을 살기


무수한 고민끝에

결국 나는 나 자신을 놓아버리는 것으로

나에 대한 집착을 종결시킨다


나에대한 집착은 곧 남에 대한 집착

부들부들 떨리는 전화기 잡은 손을 꼭 붙잡고

외로움에 쓰는 글들은 외로움을 벗어내고

그렇게 나 혼자 남겨지기 위한 노력을 한다


세상은 어짜피 혼자 살아가는 것

그래도 내가 아닌 모든것을 부정하진 않는다

단지 그냥 내버려둘 뿐

내버려 두게 됨으로서 난 자유를 얻는다

자유속에서 얻는 열매는 더욱 값진 법

그 값진 열매는 천천히 여물거 갈 것임을 잘 알기에

서두르지 않는다 조급해 하지 않는다

조금 눈치껏, 조금 양심껏

그냥 그렇게만 살아가련다


이것이 살아생전 처음 해보는

인생에 대한 새로운 도전

인생을 향한 새로운 여행


과거는 느끼고

현재는 즐기고

미래는 내버려 둔다

지금의 난 충분히 훌륭할 가능성을 지닌다

그 가능성에 나를 맞겨만 두면 된다

미래는 어짜피 예측 불가능

그 예측 불가능한 선에 집착하지 않고

나는 지금의 나를 살아가는데 충실한다


그렇게 되야만 지금의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되야만 지금의 행복을 찾을 수 있다


궁극의 점으로 다다르기 위한 잠시간의 숨고르기

그렇게 돌아간 우회도로 끝에는

절벽일지 막다른 골목일지 드넓은 초원일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돌아가지 않고 담장을 넘어갈순 없는 일

그렇게 나를 내버려두자

지금까지 잘해오지 않았는가

by 태방 2008. 6. 5.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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