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blog.naver.com/nogari9/100038559371

멀어진다

소중한 사람들과 아끼는 사람들과

한발자국씩 딱 한발자국씩 멀어진다


한발자국씩 멀어지다

계곡을 넘어서면

영영 돌아보지 않는다


그 계곡 너머 뒷모습만 보인다

불러도 돌아보지 않는다


내 마음은 그대로인데

돌아보지를 않는다

계곡을 넘지를 못한다


함께하고 싶은데

함께하기 싫다고

한발자국씩 멀어진다

소중한 사람들과 아끼는 사람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딱 한발자국의 잘못인데

딱 한발자국만 가까워지면 되는데


그 한발자국이

사랑을 짓밟는다


같은편에 서있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둘이 서있기 좁은 공간이면

함께 의지하며 서있으면 되는것을

왜 의지할곳을 찾아 돌아다니면서

의지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자꾸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만을 기다리는가

어짜피 딱 한발자국 차이인데


그 한발자국 차이때문에

난 영영 뒷모습만 보며 살아가고 있다





p.s 시나 작품같은거 절대 아님

떠오르는대로 갈겨 쓴 글

by 태방 2007. 6. 14. 01:04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500711

이명박 'BBK' 인터뷰, 기자들에게 물어보니...
[取중眞담] <월간중앙> "들은 대로 썼다" - <중앙> "..."
텍스트만보기   손병관(patrick21) 기자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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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BK 경영 참여 의혹을 불러일으킨 이명박 후보의 2000년 10월 16일자 <중앙일보> 인터뷰

한나라당 이명박 대선 예비후보가 2000~2001년 일부 매체들과의 인터뷰에서 BBK에 대해 한 얘기들이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BBK는 훗날 금융사기 사건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는데, 이 후보가 인터뷰에서 한 말들이 마치 그가 BBK를 설립하고 경영에도 참여한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올초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LK이뱅크와 자산관리회사인 BBK를 창업한 바 있다." (2000년 10월 16일자 <중앙일보>)

"지난해 초에 벌써 BBK라는 투자자문회사를 설립해 펀드를 묻었다" (<월간중앙> 2001년 3월호)


이 후보는 7일 기자회견에서 "BBK 주식은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지만, 세인들에게 오해를 심어준 인터뷰가 나간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명박 캠프의 측근이 "다른 인터뷰 기사들을 보면 정확히 표현돼 있는 데도 많다" "인터뷰를 정리한 쪽의 문제"(박형준 의원)라고 궁색한 답변을 할 뿐이다.

그렇다면 정말 인터뷰를 정리한 언론사의 문제였을까?

인터뷰 내용 진위에 대해선 왜 말 안하나

<중앙일보>와 <월간중앙>이 각각 기사를 게재한 시점만 놓고 보면, 이 후보 자신도 무려 넉 달 가까운 기간 동안 자신이 BBK의 경영에 참여한 것으로 착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이 후보가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한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 인터뷰를 쓴 기자들에게라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6일 <중앙일보>와 <월간중앙> 기자에게 각각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물었다.

당시 기억이 분명하지 않았던 <월간중앙> 기자는 회사 컴퓨터까지 다 뒤져본 뒤 당시 상황을 설명해줬다.

"당사자의 말을 직접 인용하는 인터뷰 기사였는데, 이 후보가 안한 말을 기사에 쓸 수 있었을까? 그 후에도 이 후보 측으로부터 기사를 정정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바가 없다. 1월말~2월초에 이 후보의 개인사무실이 있었던 서초동 영포빌딩에서 한 것으로 기억한다."

<월간중앙> 기자의 답변은 명쾌했다. <중앙일보> 기자에게도 만 이틀 동안 전화를 걸었지만, 그는 휴대폰을 받지 않았다. 8일 오후 4시경 간신히 전화가 연결됐다.

"누구시죠?"
"<오마이뉴스> 기자입니다."
"(전화를 끊으며) 할 말 없습니다."


그것으로 대화가 끝났다. 기자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기자가 자신의 이름으로 쓴 기사에 대해 상황을 얘기해주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 일이었을까?

① "이명박으로부터 들은 대로 썼다" ② "잘못 썼다", ③ "내가 썼지만, 기억이 잘 안 난다" 답은 셋 중 하나일게 분명한데,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려고 하니 더 의문이 생겼다.

<중앙>의 또 다른 기자에게 내부 분위기를 슬쩍 물었다. 그는 "기자라는 게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글을 쓰는 직업인데, 오보라고 몰아세우면 당사자는 오죽 답답하겠냐? 진실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회사는 이 일에 더 이상 말려들길 원하지 않는다"라며 입을 닫았다.

교과서적인 얘기지만, 기자는 진실을 알리는 직업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기자로 하여금 진실을 알리지 못하게 하는, 우리 정치와 언론의 현실이 암울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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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이명박 BBK사장에 “소송 어떻게…” 서류
<한겨레>, 김경준씨에 친필서명 단독입수

“서면이나 전화로 의견 알려 주기 바란다”요청

법원, 심택 소송에 서초동 부동산 가압류 결정
한겨레 임석규 기자 김태규 기자
» 2001년 11월 이명박 전 시장이 BBK 김경준 사장에게 보낸 ‘심텍의 소송 대응’에 관한 서류 / <한겨레>
금융사기 사건을 일으킨 비비케이(BBK)와 무관함을 주장해 온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001년 이 사건 피해자인 ㈜심텍이 소송을 제기하며 자신의 재산에도 가압류를 신청하자, 김씨에게 친필로 서명한 서류를 보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조속히 알려달라”며 대응방안을 협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지방법원은 2001년 이 전 시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심텍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전 시장 소유의 서울 서초동 부동산에 가압류 결정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가 10일 입수한 미국 캘리포니아주 최고법원의 소송 자료를 보면, 이 전 시장은 2001년 11월2일 비비케이 김경준 사장 앞으로 ‘㈜심텍의 가압류 조치’라는 제목의 서류를 보냈다. 이 서류에서 이 전 시장은 “심텍 쪽이 공식적으로 소송대리인을 선임하여 법적 절차를 밟고 있음을 감안하여 본인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서면이나 전화로 김 사장의 의견을 조속히 알려 주시기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 전 시장이 김 사장과 비비케이 관련 소송 대응방안을 함께 협의하려 했다는 사실은, 이 전 시장이 비비케이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또 서울지방법원이 심텍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 전 시장 재산을 가압류한 것은 이 전 시장의 혐의사실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사건 관련성을 어느 정도 받아들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이 전 시장은 비비케이와 직·간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비비케이에 50억원을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심텍은 2001년 이 전 시장과 김 사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가 나중에 소송을 취하했다.


이 전 시장 쪽의 은진수 변호사는 “법원이 당시 가압류 결정을 내린 것은 맞지만 이 전 시장이 김 사장에게 보냈다는 서류는 본 적이 없다”며 “전체적인 사건의 내용을 보고 판단해야지 일부분을 가지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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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선 “이명박 전 시장이 내게 김경준 소개”
연합
언론인 출신 열린우리당 박영선(朴映宣) 의원은 7일 "2000년 12월 경제부 기자로서 서울시청 부근 삼성생명 빌딩에 있던 이명박(李明博) 전 서울시장의 LK-eBank 사무실을 취재했었는데, 그때 이 전시장이 나에게 (BBK 사건의 주역인) 김경준씨를 소개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같이 밝히고 "이 전시장이 당시 김씨를 `하버드 출신의 아비트리지(차익거래) 전문가'라고 자랑하며 소개했으며 당시 김씨의 대표이사 직함이 담긴 명함도 건네받았다"며 "두 사람이 동업자 관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특히 "이 전시장이 당시 김씨와 함께 찍혀있는 뉴스동영상에 대해 `증거배제' 신청을 했다고 한다"며 "소송에서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증거에 대해 그렇게 하는데, 왜 그 동영상에 대해 신청을 했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전의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박 의원은 `이 전시장의 X파일에 대해 정 전의장이 알고 있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내가 (MBC 방송의) LA 특파원을 해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게 와전된 것 같다"고 부인했다.

박 의원은 "에리카 김과 이 전시장이 가까운 사이라는 건 LA 교민사회에서는 다 아는 일이며 현지 신문 등을 통해 금방 확인할 수 있다"며 "내 기억으로는 에리카 김이 주최한 출판기념회에 이 전시장이 참석해 테이프 커팅도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이어 "에리카 김은 한국 유력정치인들이 미국에 오면 꼭 자기 집에 묵게 하고 사람들을 소개시켜주는 걸로 유명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이 전시장측의 장광근 공동대변인은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박 의원이 정치적인 위치가 다르다고 해서 입증되지 않은 과거 사실을 각색해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반박했다.

장 대변인은 "이 전시장 자신도 당시 김경준씨를 투자전문가로 알고 있었으나 이후 김씨에 대한 금융당국의 제재 직후에 관계를 단절한 바 있다"며 "당시 정황은 모르겠지만 과거 이 전 시장에 대해 누구보다 좋은 평가를 내렸던 박 의원인데 인간적인 도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노효동 이승관 기자 rhd@yna.co.kr (서울=연합뉴스)

by 태방 2007. 6. 12. 15:18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486104

추억을 잊고 살았다

  금정역을 지나 안양으로 넘어가는 큰길가는 초등학교 시절 내가 넘어서는 안되는 심리적 구역이었다. 금정역을 넘어 산본으로 가면 무언가 내가 있어서는 안되는 세계, 걸어서는 갈 수 없는 그런 세계라는 생각을 마음속에 담고 있었다. 요즘은 여의도나 영등포, 신림에 갈 일이 있으면 버스를 타고 그 길을 자주 지나가게 된다. 고등학교 2학년때 군포로 이사간 이후 한번도 가지았았던 명학역 근처, 7살때부터 6년동안 안양8동을 벗어가본 기억이 거의 없었음에도 안양8동에 대한 나의 기억은 이제 어렴풋이 나는 정도이다. 버스를 타는것도 무서웠던 그시절, 미도아파트 버스 정류장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든다. 중학교때 아침 7시마다 버스 정류장에 서면 학교가서 숙제를 어떻게 해야할까에 대한 고민만 가득했던 시절, 중2때 처음알게된 사랑의 감정, 같은 반 친구였던 첫사랑을 보기 위해 설레는 마음을 안고 정류장 앞에서 15번 버스를 기다리던 그 시절,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재건축을 준비중인 미도아파트앞을 지나 명학 초등학교 정거장이 보인다. 내가 나온 초등학교 이름이다. 7살때 경남 양산에서 올라와 명학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을 몇개월 다니고 명학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초등학교의 기억, 사실의 기억, 상태의 기억보다는 사건의 기억, 장면의 기억만 아련히 떠오른다. 운동회때 어머니가 주신 음료수를 먹고 체육복 뒷주머니에 캔을 넣어두고 메스게임을 했던 기억, 학교 가는 입구 언덕에서 누나가 넘어져 그 이후로는 꼭 계단으로만 다니던 기억, 학교 앞에서 학습지 홍보용 퀴즈를 잘 풀어 농구공을 선물로 받았던 기억. 예전에는 완전히 넣어두고 있었던 기억들이, 그 앞을 몇번 지나다니게 되자 다시 떠올리게 된다. 신기하다. 추억이라는거 담고 있지 않아고 가슴에 언제나 담겨져 있구나. 무심히 버렸던 내 과거들을 다시 찾아가는게 새삼스럽기만 하다.


  명학초등학교를 지나면 외할머니집에 가던 길이 나온다. 큰 길가의 인도를 걷다보면 성문 교회가기 전 언덕빼기의 숲이 보인다. 친구따라 빠른 길이라고 산길로 오르락내리락 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완전 어리버리하던 어렸을적이라 친구가 하자는 대로 시키는 일 잘 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산길로 다닐때는 내가 남들보다 무언가 대단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렸을적부터 교회 아저씨, 아줌마들이 너무 선교활동을 심하게 해서 안좋은 트라우마가 있다. 그래서 집 근처에 성문교회, 명학교회 큰 교회가 두개나 있었지만 한번도 들어가본 적은 없다. 친구의 어머니가 짝퉁으로 세례를 한번 해 준 이후로는 다시는 교회에는 발도 들이지 않겠다는 마음을 먹었었다. 나쁜 추억이다. 하지만 그런 추억들은 기억으로만 남겨져 있다. 지금은 교회에 들어가는것을 어려워 하지 않는다. 하지만 앞으로도 기독교를 믿을것 같지는 않다.


  성문교회를 지나면 명학역 앞 사거리가 나온다. 차들도 많고 사람도 많은 거리, 예전에는 경찰서도 있었고 시청도 있었고 문예회관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예전보다 한산해진 분위기다. 으리으리한 건물에 들어온 유망 벤쳐기업 사옥은, 부도가 나 간판만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공원이 된다던 한 공립연구소 건물은 벤쳐타운이 들어와 대신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전 시청부지, 경찰서 부지는 모두 평촌으로 이전해 크기에 걸맞지 않는 구청과 파출소만이 남겨져 있다. 작은 골목을 따라 지나가면 예전에 다니던 컴퓨터 학원과 미술학원, 태권도 학원, 그리고 예전 외할머니 집이 있다. 어렸을때부터 학원을 많이 다녀 외할머니 집이 거의 내 두번째 집에 가까웠다. 점심을 먹는것은 예삿일이었고, 외할아버지 복덕방에 가서 놀기도 하고, 아이스크림을 얻어 먹기도 했다. 그곳에도 내 두번째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지금은 남녀공학이 되어버린 성문여고와 성문여중, 성결대학교로 들어가는 저 윗 골목은 지금도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기도 하다. 공부를 하기 위해 자주 드나들던 골목, 그 골목은 어렸을적 공부를 하던 기억이 가득하지만 그보다 공부도중 놀기위해 안간힘을 쓰던 기억으로도 가득하다.


  명학역 거리를 지나 버스를 타고 몇정거장 가다보면 우체국 사거리가 나온다. 이 너머는 중학교 이후의 기억이다. 초등학교의 심리적 장벽은 금정역부터 명학역까지였다. 우체국 앞의 배움터 사람 학원은 아직도 간판이 있는 듯 하다. 원장님이 나를 엄청 아껴주셨던 기억이 난다. 중2때 공통수학을 공부한다고 낑낑댔으니 그때는 그럴만도 했다. 지금와서 생각하면 그게 의미있는 짓이었을까 생각들지만, 뭐 그래도 그때 공부한거 쓰지는 않아도 덕분에 남들보다 좋게 살고는 있으니까. 그 원장님의 기억은 싫지만은 않다. 럭키짱 81권을 보며 읽을 엄두를 못내던 책방도 있겠지? 그때 학원차는 스타렉스였다. 내가 문을 너무 세게 닫아 문이 차 밖으로 한번 떨어진 적도 있었지. 그때 엄청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웃음이 피식 나오지만, 내 잃어버린 중학교 시절은 꼭 웃음이 나는 시절만은 아니다.


  추억을 알게 되었다.


  안양역 근처는 지금도 번화하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 가는 골목에는 삼원극장은 없어지고 CGV가 들어왔다. 13층짜리 으리으리한 건물, 내가 제일 좋아하던 본백화점은 건물만 그대로이고 도통 목적을 알 수가 없는 쇼핑몰로 바뀌어 있다. 안양일번가 안쪽은 어짜피 내 기억속에도 계속 남아있는 공간이지만, 옛 삼원극장 자리와 본백화점은 추억의 공간이다. 그 추억의 공간이 남지 않은것은 슬픈일은 아니지만,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CGV의 구름다리는 나에게 '네가 기억하는 과거는 여기 없어'라고 말을 하는것만 같다.


  지금 내 심리적 장벽은 CGV넘어서의 그 공간이다. 중학교때 매일 다니던 창박골로 가는 길, 15번, 15-2번 버스 두대의 종점과 프라자아파트, 뉴골든아파트, 신안중학교, 안양예고가 있는 그 공간, 친구와 걸어가다가 우연히 첫사랑과 마주쳐 어찌할 줄 몰랐던 기억, 눈이 펑펑 쏟아지던 졸업식날 버스타고 다니던 그 길을 눈을 맞으며 걸어오던 그 기억, 아니 추억, 기분이 좋았던 싫었던 잊기 싫은 그 기억들, 그 기억들이 가득한 그 공간에 나는 졸업 이후 단 한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다. 갈 일이 없다. 아니 그건 핑계다. 얼마든지 갈 시간은 있다. 하지만 선뜻 가게 되지 않는다.


  추억을 찾고 싶다.


  시간이 많다. 버스비가 아까운 돈은 아니다. 기회를 만들면 옛 추억을 찾으러 초등학교건, 중학교건, 고등학교건 한번 다녀올 수 있다. 그런데 내 심리속에서 무언가 장벽이 쳐져 있다. 과거로 가면 안되는 걸까? 꼭 미래를 향해서만 가야 하는 건가? 아니지, 그건 내가 맨날 말했던 거지. 난 항상 과거를 씻기 위해 몸부림 쳐왔다. 과거의 어렸던 기억, 못났던 기억, 어리숙했던 기억, 모자랐던 기억, 그런 기억들만 항상 가슴에 남겨두고 버려야 할것, 잊어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그럴만도 했다. 초등학교 친구들 중 중학교에 같이 간 친구는 단 7명 뿐이었으며, 중학교에서는 고등학교에 나 혼자만 갔다. 고등학교에서는 대학교에 단 3명만 함께했다. 그것도 저기 먼 포항으로. 추억을 남겨 둘 친구가 있었던가? 아니면 그 추억을 다시 찾아볼 기회는 있었는가? 아니면 내가 애써 추억을 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쓴건가? 나는 추억이 다 없어진 줄 알았다. 과거의 것은 나쁜것들이기 때문에 다 버려놓은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포항에서 4년을 지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되자, 난 내가 애써 추억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안달이 나 있는것이 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와보면 될것을, 다시 만나면 될것을, 다시 찾으면 될것을. 왜 그리도 멀리 하려고만 했는지.


  나쁜 것들도 있다. 싫은 것들도 있다. 마냥 멀어지고 싶은 기억들도 있다. 그래도, 아련한 추억만큼은,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지는 추억만큼은 있는게 또 낙이 아니겠나? 길을 지나가고 회상하면서 즐거워 질 수 있으면 그것이 지금까지 추억을 남기고 살아온 인생의 낙이 아니겠나? 시간을 한번 내고 내 심리적 장벽을 넘고 싶다. 어렸을적 나쁜 아저씨를 만날까 두려워 가지 못했던 그 장벽을 넘는데 6년이 걸렸다. 이제 집떠나와 산지 나도 6년 째니 나쁜 추억들을 만날까 두려워 가지 못했던 그 장벽을 넘어, 어렸을적 기억을 다시한번 되새겨 봐야 겠다.

by 태방 2007. 6. 12. 00:13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484640

인연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 관계가 맺어지는것 인연

인연은 만들어가는 거라는 말이 있다

또 이루어 지지 않는 인연이라는 말도 있다

우리는 인연을 찾아 돌아다니면서도 인연을 만들지 못해 눈물흘리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말이 맞는 말일까


사실 인연은 만들어가는게 맞기도 하다.

생판 관련이 없는 사람 둘끼리라도

어떻게든 기회가 생기면 친해지기 마련이고

또 그 친해지는 것도 노력하기 나름이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것이 기회가 되면

그것이 인연이 되는것이고

그 인연의 과정속에서 서로의 관계 지속을 위한 노력은

결국 좋은 결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만 인연은 반드시 만들어가는것 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사람이 엮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안만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끝까지 눈밖에 나는 일들도 부지기수다

한번 멀어지면 가까워지기도 엄청 힘들며

반대로 별 노력없이도 한번 가까워지면 여러 인연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보통 우리들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만 하는 경우가 많다

단지 조금 운이 안좋아 잘 안된것 뿐인데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다 자책하기도 하고

또 반대로 실수를 하거나 정성이 부족했는데도 인연이 아니었다 넘겨버리기도 한다


좋은 인연이 되었으면 만사 OK하고 끝이지만

잘 안되는 경우는 분명 이유가 있기는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어느 한곳에다 둘 필요는 없다

정말 인연이 아니어서 잘 안된거일 수도 있고

반대로 내가 무언가 잘못한게 있어서 안된거 일 수도 있다


그냥 보이는 기회를 잘 찾고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면 된다

이유를 궂이 찾을 필요는 없다

원인이 무엇인지만 알고 있으면 된다

by 태방 2007. 6. 11. 23:36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336514

 

[김근태]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 ‘희망만들기 전국순례’ 강연문
참여정부는 차별화의 대상이 아니라 계승과 극복의 대상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
'희망만들기 전국순례' 강연문
2007년 6월 5일 / 원주

 

■ 인사말

- 오늘, 정말 기분 좋은 봄빛을 쪼이면서 고속도로를 달려왔습니다. 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 여러분을 만나러 원주에 간다고 그러니까 제 주변에서 저를 돕는 친구들이 그럽니다. 제발 가시거든 ‘대통합’이니 ‘후보연석회의’니 그런 말씀 하지 마시라고요.

- 김근태는 심판이 아니고 선수니까 게임의 규칙이나 리그구성에 대해 주장하지 말고, 이런저런 세상을 만들겠다, 희망찬 미래를 만들겠다, 그런 얘기만 하라는 겁니다. 선수면 선수답게 경기에만 집중하라는 말이지요.

- 자꾸 대통합 얘기하면 남들이 후보로 안 봐주니까, 딴 데 신경 쓰지 말고 지지율 5%로 올리고, 10프로로 올리는 일만 하라는 겁니다.

- 그 친구들 얘기가 일리가 있습니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이 미래구상을 가지고 직접 국민들의 가슴을 향해 설득해야지, 자꾸 한나라당은 안 된다, 통합해야 된다 그런 얘기하면 재미없죠.

- 국민은 왜 한나라당은 안 된다는 거냐? 너희가 잘못했으면 정권교체도 하고 그러는 게 민주주의 아니냐 그러는데, 그 질문에 대답해야지 자꾸 한나라당 안 된다는 얘기만 하면 점수 깎인다는 말입니다.




- 그런데 오늘 돌아가면 저를 돕는 친구들에게 또 ‘쿠사리’ 듣게 생겼습니다.

- 제가 따뜻한 봄볕을 쬐며 원주로 오는 차안에서 ‘오늘은 버선목 뒤집어 보이듯이 김근태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와야 되겠다’고 작정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자면 또 김근태 얘기 보다는 대통합 얘기를 할 수밖에 없으니까 쿠사리는 떼 논 당상입니다.

- 쿠사리 좀 먹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말 할랍니다. 여러분한테 제 속마음을 다 털어놓고 솔직하게 말씀드려 볼랍니다.

- 오늘 두 가지 얘기를 준비해 가지고 왔습니다. 한 가지는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얘기고, 또 한 가지는 제가 드리고 싶은 얘기입니다. 무엇부터 할까요? 이럴 때, 훌륭한 강사는 여러분이 듣고 싶어 하는 말씀부터 드린다고 합니다. 저도 점수 좀 따게 여러분이 듣고 싶어할만한 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 먼저 ‘차별화’에 대한 얘기부터 드리겠습니다.

- 대통령께서는 틈만 나면 저보고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참여정부에 몸담았던 사람이 장관하다 나가더니 선거 전략을 위해 차별화한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차별화한 사람치고 성공한 사람 못 봤다.

- 이 말을 들으면 제가 무슨 대단한 전략이라도 가지고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작전을 펴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 ‘대통령 병’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제가 그 환자쯤 되는 것 같습니다.

- 그런데 사실은 정반대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대통령과 차별화해서 인기를 얻는 게 제 전략이었다면 아마도 저만큼 뜰 수 있는 기회가 많았던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분양원가 공개 문제로 ‘계급장 떼고 토론하자’부터 시작해서, 국민연금 운영 문제가지고 제가 재경부하고 한판 붙었을 때도 대통령이 괜히 싸움에 끼어들었습니다. 제가 원 포인트 개헌을 주장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 그 세 가지 문제가 모두 국민의 지지가 높았던 사안이고, 저를 돕는 친구들도 너무 억울해서 ‘한판 붙자’고 나섰지만 제가 그 친구들을 달래고, 진정시켰습니다.

- 저는 세 번 모두 싸우지 않는 길을 택했습니다. 대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용히, 꾸준히 설득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때가 대통령 집권 2~3년차 일땐데 그때 여권 내부에서 싸움이 일어나고, 분란이 일어나서 국정운영에 부담을 주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그때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세 가지 문제에 대해 결국 대통령께서는 자기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철회했습니다. 분양원가 공개도 결국 대통령이 하겠다고 입장을 바꿨고, 국민연금 운영 역시 원칙대로 재경부가 손을 못댔습니다. 원 포인트 개헌은 얼마 후 대통령이 직접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 마지막엔 세 가지가 다 제 주장대로 되긴 했는데 그 과정에서 김근태는 스타일 완전히 구겼습니다. 세 번 주장을 굽히는 바람에 김근태는 삼진 아웃을 당했다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고, 세 번 가운데 한번만 제대로 싸웠어도 인기가 많이 올랐을 거라고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 그런데 이제 와서 대통령이 선거전략을 위해 차별화한다고 하니 솔직히 좀 서운합니다. 제가 전략적으로 차별화를 할 생각이었으면 훨씬 극적인 방법으로 폼 나게 했을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낮은 지지율 때문에 마음고생 하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 참여정부는 차별화의 대상이 아니라 계승과 극복의 대상입니다.

- 제가 이런 말씀을 길게 드리는 이유는 여러분도 저하고 비슷한 딜레마를 느끼고 있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4년 전에 평화개혁세력의 대표로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해달라고 주위사람들을 설득하고 돌아다닌 사람들입니다. 대통령 탄핵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고, 촛불을 든 전과도 있습니다. 지난 4년 동안 일정 정도 참여정부와 연관을 맺고 활동을 해 온 분들도 적지 않을 것입니다.

-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무한책임을 지고 입 닫고 있으라고 하면 그건 옳지 않은 일입니다.

- 오히려 거꾸로 입니다. 결자해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는 참여정부를 출범시키고 지지했던 사람들이 나서서 잘한 점은 계승하고, 부족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때입니다.

- 참여정부가 권위주의와 특권을 타파하고, 부작용이 많은 단기 경기부양에 의존하지 않은 점 등은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입니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평가하고 계승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그러나 참여정부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점, 혹은 방향을 잘못 잡은 점이 있다면 평화개혁세력이 그걸 바로 잡는 것을 새로운 시대의 과제로 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걸 자기부정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 자기부정이 아니라 굽은 가지를 바로 펴는 일입니다.

- 저는 참여정부가 투명성이나 특권을 타파하는 데는 큰 획을 그었지만, 경제사회운영시스템 측면에서 우리 사회를 진보시키고 발전시키는 데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씀드리면 경제정책에 대해서만큼은 한나라당과 다를 바 없는 지도를 갖고 국정을 운영했다고 해야 옳을 것 같습니다.

- 경제사회정책에 관한한 생각은 옳았는데, 실력이 모자라서 이루지 못한 것이 아니라, 생각 자체가 틀렸습니다. 지지자들의 열망을 무시하고, 경제 관료에 의탁해 신자유주의, 미국식 경제체제를 신성시 했습니다. 덕분에 평화개혁세력은 세 갈래 네 갈래로 찢어졌고, 결국 지금과 같은 참담한 상황을 초래했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 제가 얼마 전에 한 중소기업의 과장을 만났습니다. 김과장이었습니다.

-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안 먹고 안 쓰는 데도 내집마련하고, 자식 키우기가 너무 힘들다” “아이들 보기가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제가 못나서 그렇지요”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하는데 참 답답했습니다. 숨이 턱 막혔습니다. 한평생 정직하게 열심히 일하고, 안 먹고 안 쓰는 데도 먹고, 자고, 자식 공부시키는 것조차 어렵다면 뭔가 잘못된 것입니다.

- 그건 그 김과장이 못나서 그런 게 아니고 우리 사회 운영 시스템이 크게 고장 나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경쟁에 맡겼기 때문입니다.

- 최소한 열심히 일하면 먹고, 자고, 일하고, 자식 공부시키는 정도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세상이 정상적인 세상입니다. 어지간한 대학 나와서 중소기업에서 중견간부로 일하는 사람조차 안먹고, 안입고, 안쓰는 데도 기본적인 생활을 해결하지 못해 자식에게 죄스러워 해야 한다면 정상적인 사회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 이렇게 잘못된 사회운영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합니다.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더 유능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운영 시스템부터 유능하게 바꿔야 하는 게 정치가 담당할 영역입니다.




▢ 여러분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것도 새로운 사회운영시스템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런 노력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중요합니다.

- 참여정부가 이루지 못한 과제를 뽑아내서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 내고, 참여정부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임무입니다.

- 여러분들 가운데 참여정부의 정책실패에 책임을 져야 하는 세력과 무분별하게 섞이는 것은 옳지 않다, 먼저 새로운 사회에 대한 깃발을 분명히 세우고 그 다음에 연합이든 뭐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수도 없이 충고하고, 경고했는데도 콧방귀조차 뀌지 않았던 참여정부의 잘못을 덤터기 쓰는 것은 억울한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차원을 넘어서 참여정부의 잘못을 극복하기 위해 깃발을 분명히 하는 것은 옳은 일입니다.

- 새로운 사회에 대한 창조적인 비전을 앞장 세워야 국민들의 가슴에 파문을 일으키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습니다. 지역구조나 정치세력의 이해관계에 얽매이는 것은 작은 정치, 낡은 정치고, 먼저 미래비전을 세우고, 그걸로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큰 정치, 새로운 정치입니다.

- 그런 점에서 새로운 깃발을 들고 나선 여러분은 이 답답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매우 유력한 희망입니다. 여러분이 그 깃발을 높이 세우고 치열하게 싸워야 새로운 가능성이 생깁니다.

-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이 새로운 사회에 대해 깃발을 높이 세우고 당당히 전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울 것입니다. 제가 가진 능력이 한줌이라도 있다면 그것까지 다 바쳐서 여러분을 도울 생각입니다.



▢ 다만, 현실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 절박한 심정으로 말씀 드립니다. 20년 전, 6월 항쟁을 미완의 민주주의 혁명으로 끝낸 경험을 반복돼서는 안 됩니다. 당시 민주세력의 분열로 6월 항쟁을 반쪽 혁명으로 전락시켰던 경험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 지금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개혁세력 가운데 대통합을 통해 한나라당의 집권을 저지해야 한다는 주장에 반대하는 세력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대통합의 전망은 어둡기만 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손 한 번 못써보고 한나라당에 정권을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 지금 평화개혁세력 가운데 각 정치세력별로 먼저 독자세력화를 하자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크게 네 그룹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 첫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과 참평포럼을 비롯한 열린우리당의 일부 의원들입니다. 두 번째는 곧 창당한다는 통합민주당입니다. 세 번째는 손학규 전 지사 쪽이고, 네 번째는 바로 통합과 번영을 위한 미래구상입니다.

- 이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 그룹과 박상천 대표는 후보단일화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분들은 세력 간 통합이나 모든 후보가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것보다는 독자적인 정당의 틀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각자 정당을 만들고 막판에 후보단일화를 하자는 것이 이분들의 주장입니다.

- 이 점을 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이분들은 왜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일까요? 저는 대통령 선거가 아니라 총선에 주된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주장의 배경에는 대통령 선거는 이미 어려워졌으니까 총선에서라도 살아남자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겉으로는 대선을 얘기하지만 실지로는 이미 한나라당에 권력을 넘겨줘도 좋다고 생각하는 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 손학규 전 지사 쪽이나 미래구상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이분들은 대통합을 하긴 해야 하는데 아직 시간이 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국정실패에 책임이 있는 세력과 살림을 합치는 것보다 우선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 현실은 절박합니다.

- 범여권이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단일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입니다. 선거 막판, 후보단일화를 하자는 주장은 공수표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 20년 전에도 누구나 막판에 가면 후보단일화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좌절됐습니다. 2002년에도 우여곡절 끝에 후보단일화를 이루긴 했지만,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 안에서 얼마나 격렬한 반대가 있었는지 한번 상기해 보십시오. ‘단일화’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모두 배신자, 역적으로 간주하고 공격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 기적이 두 번 연거푸 일어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게다가 지금 선거 막판 후보단일화를 주장하는 세력의 주된 관심사가 총선에서 살아남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 지금 안되는 후보단일화가 선거막판에 이뤄지기는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 미래구상과 손학규 전 지사 측에 호소합니다.

- 이제, 정말 시간이 없습니다. 6월 한 달 동안 통합의 청사진을 완성하지 못하면 대통합이나 오픈 프라이머리는 물 건너갑니다.

- 시간이 더 있다고 생각한다면 두 진영에서 시간표를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 솔직히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당장 노무현 대통령 그룹과 박상천 대표 그룹을 대통합에 참여시키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이 두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이 중심이 돼서 먼저 오픈프라이머리를 합의해야 합니다. 늦어도 이달 20일 전까지 미래구상과 손학규 전 지사 측 그리고 대통합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이 오픈프라이머리에 합의해야 합니다.

- 두 가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 첫째,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서 노선과 미래비전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합시다. 오직 정책과 노선만 가지고 국민을 심판관으로 세워서 치열한 경쟁을 합시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서 국민의 가슴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펴야 합니다.

- 둘째, 경쟁을 하는 과정에서 김근태가 가진 작은 기득권이라도 있다면 자진해서 모두 포기하겠습니다. 이건 김근태의 명예를 걸고 약속드립니다.




▢ 미래구상 동지 여러분!

- 노선과 미래비전을 중심에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 그러나 분열을 향한 경쟁, 패배가 예견된 경쟁을 해서는 안됩니다. 승리를 위한 경쟁을 해야 합니다.

- 지금 서로가 담을 높이 쌓고 독자후보를 만드는 데 집중하면 오픈 프라이머리는 포기해야 합니다. 승리의 길은 멀어집니다.

- 지금은 데드라인에 몰린 오픈 프라이머리라는 큰 울타리부터 건설할 때입니다. 시간은 한 달밖에 없습니다.

- 이 울타리 안에서 치열한 노선경쟁을 합시다.

- 이제 외길입니다. 지금 당장 오픈 프라이머리에 합의하지 않으면 끔찍한 미래가 현실이 됩니다. 나중에 후회해도 늦은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 여러분이 결심하면 큰 변화의 물결이 일어납니다.

- 여러분이 결심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뒤를 따를 것입니다.

- 여러분이 새로운 변화의 불길을 당겨 주실 것을 다시 한번 간곡하게 호소합니다.

- 감사합니다.

by 태방 2007. 6. 8. 00:22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296665

 

  일상의 반전이라는 것은 어느날 소리소문 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오기 마련이다. 얼마전까지 무시무시한 악몽을 꾸면서 조금이나마 자살을 상상하기도 하던 내가 이렇게 다시 밝은 모습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것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이리저리 쉽게 바뀌곤 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나는 그런 반전들 속에서 다시 원래의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책 한권, 편지 한통, 그리고 소중한 친구와의 전화 한통에 나는 다시 나의 모습을 되찾았다. 라일락 향기가, 펜글씨 한장이, 그리고 6천원쯤의 투자로 보낸 친구와의 한시간 가량의 통화가 무언가 나에게 변화를 주었다. 라일락 향기를 맡은건 한 열흘 전쯤이었다. 나는 친구의 추천으로 책 한권을 알게 되었다. 그냥 그렇게 도서관에서 빌려봐야지 하고 넘겨버리기도, 책이 연체가 되서 빌릴 수 가 없을텐데 어쩌냐하고 또 넘겨버리기도 할 책이었다. 하지만 CD를 사러 간 시내의 서점에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그 책을 찾아보았다. 제목부터, 작가부터 심상치가 않은 책이었다. 생각보다 책은 컸고, 글씨는 적었다. 멀쩡한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책을 사는데 100번쯤은 주저 했으리라. 물론 나도 그러했다. 아무리 내가 통장에 아직 잔고가 두둑했다지만 책 사는데 돈을 흔쾌히 투척할 정도의 위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 책은 달랐다. 책에서 라일락 향기가 났다. 사은품이라는 이름과 함께, 아름다운 꽃 그림과 함께, 아름다운 책들의 글귀와 함께 놓여있던 라일락 향의 책갈피. 그 향기가 나도 모르게 책을 들어 계산대로 향하게 했다. 나도 모르게 지갑을 꺼내 카드를 꺼내 책을 계산하게하고 또 가방에 집어넣게 했다. 책이 상할새라 가방이 있었는데도 쇼핑백을 달라고 했다. 직원은 당황해 하지만 나에겐 단지 잔돈이 귀찮은 일 정도에 불과했다. 라일락 향기를 상상하며, 책의 향기가 라일락 향보다 진할 것을 상상하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탔다.

  책의 포장을 쉽게 뜯지는 못했다. 포장 속에서는 강한 꽃의 향기가. 사람의 향기가, 사랑의 향기가 나를 잡아먹기를 기다리고 있는것 같았다. 별것 아닌 책일지도 모르지만 아직 책을 열어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책은 옆에 고이 놓아두고 나는 하릴없이 책보다는 조금 가벼운 드라마를 보고 음악을 들으면서, 별것도 아닌 하지만 무언가 엄숙해야 할 것 같은 책을 열어야 할 시기에 대해 저울질 하고 있었다. 드라마 두편을 보고 침대에 눕고나니 책을 열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이번에도 내 손이 책으로 스르르 끌려 들어가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머리의 반응이 아니다. 그냥 책을 피고 책갈피의 향기를 한번 맡고 책 속의 문자들을 하나하나씩 탐닉해 들어간다.

  내용은 별거 없다. 그림도 별거 없다. 향기도 사실 길거리에서 파는 천원짜리 라일락향과 다를바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대 난 기분이 몹시 울적해 있었고, 내 맘속의 무한한 욕구의 억제가 자리잡고 있었고, 답이 있는 문제를 애써 도망다니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 책은 나에게 좀 더 진솔하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행동하고, 또 사랑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절대 명령하지 않았다. 하지만 난 작가의 말을 마치 신의 메세지 인냥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는 나를 억누르고 있었다. 내가 잘못되었고, 내가 실수였고, 내가 바보같았다고 자책하며 나를 부정하고, 내 선택을 모두 뒤엎으려 하고 있었다. 되도않는 나에대한 변성을 스스로에게 강요하면서 가지고 있던 스트레스가 엄청났었다. 작가는 나에게 너의 본 모습을 생각해보라, 너의 진실을 생각해보라, 그리고 행동하라고 나즈막히 말하고 있었다. 단지 그 뿐이었다. 평소에 봤으면, 남들이 봤으면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의 조합일 수도 있었고, 되도않는 세상에서 혼자 주절거리는 망상일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메세지들은 라일락 향과 함께 내 가슴속에 조용히 다가와 마음의 문을 열게 했다. 이번에도 내 의지는 아니었다. 나는 몇달간의 방황을 끊고 나조차 잊고 있던 나의 원래 모습으로 생각보다 빨리, 그것도 순식간에 돌아가 버렸다.

  편했다. 책을 읽은것도, 느낀것도 모두 편했다. 본연의 나로 돌아온 자체가 너무나 편했다. 본연의 나? 돌아오자마자 그녀가 떠올랐다. 라일락의 향, 편안함, 그리고 시. 전하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보여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나를 보지 않고 나는 그녀를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원래 나는 조금 유치하지 않았는가? 나쁘게 말하면 느끼한 거지만 좋게 말하면 낭만적이라고 해 두겠다. 시를 담아, 편지를 담아, 책을 담아, 그리고 라일락의 향기를 담아 조용히 소포를 보냈다. 책값보다 비싼 소포값이었지만 전혀 아깝지가 않았다. 내가 보내주고 싶었던 것을 그녀가 받지 않아도 좋다. 그냥 지금의 내가 편했고, 그 책을 보내면 더 편해 질 것 같았다. 그 편지를 보내면 더 편해질 것 같았다. 왠지 내 마음이 전해지는 것만 같아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항상 그렇다 친구끼리는 서로의 마음을 이해해 주지는 못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이에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냥 서로의 말을 들어주는 것 뿐, 그리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 주는 것 뿐, 아니면 마냥 끄덕거려주는 것 뿐. 그 친구도 그런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나도 그 친구가 나에게 그렇게 해준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나의 모습을, 그리고 그렇게 버리려고 했던 그녀에 대한 감정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와버림을, 그리고 조금은 유치하지만 내 맘대로 저질러 버린 내 행동들을,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말하고 싶었던 내 가슴속의 무언가들을 그 친구에게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친구는 나의 불안함에, 나답지 않은 모습에, 나의 좌절에 그동안 많은 걱정을 했었다. 물론 내 심정을 이해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냥 친구니까 들어주고 생각해주고 끄덕거려 주었으리라. 그래도 지금의 내 모습, 돌아온 내 모습을 알게되니 조금은 안심을 하는 것 같았다. 믿을 구석이 생겼다. 친구가 안심을 해주니 나도 더욱 안심이 되었다. 나의 모습에 불안해하며 그동안 방황했던 나인데, 그런 내가 다시 방황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했던 나에게 친구의 안심은 큰 힘이 되었다. 확신은 아니지만 믿음은 생겼다. 딱 마지막이라도 좋다. 지금 불타고 믿음을 잃어버려도 좋다. 하지만 처음으로 믿음을 가지고 사랑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가 어떻던 간에 아무 생각없이 편하게 사랑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건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친구가 나에게 준 선물은 라일락 향을 선물해준 책의 작가만큼 따뜻하다.

  다시 난 일상으로 돌아갔다. 자신감이 넘치던 나의 모습으로, 열정이 넘치던 나의 모습으로, 하지만 여전히 다혈질이고 정신없는 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왔다. 웃으면 복이온다고 하지 않았나, 나도 내 생활을 웃게 하니 인생에도 작은 복들이 하나하나씩 다가오는게 느껴진다. 메마른 감성도 되찾기 위해 책을 하나 집어들었다. '냉정과 열정사이' 쥰세이가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는 과거의 사랑을 그리워 하지만 그리움속에서 슬픔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자신을 버리지는 않는다. 희망이 있건 없건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만을 바라본다. 단지 그뿐이다. 그 모습을 보며 그동안 사랑속에서 목표를 찾고 희망을 찾고 욕망을 찾던 나의 모습이 못나게 떠오른다. 기다릴줄도, 믿을줄도 알아야 하는 사랑을. 아니 그런것 없이 그냥 사랑을 위한 사랑이 필요했었던것 같다. 다시 또 나를 자책하지만, 그래도 더이상 방황하진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비록 너와 피렌체의 두오모에서 다시 보겠다는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그녀에게 보내는 편지속에는 언젠가 너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미래의 약속을 담아 보내고 있다.

by 태방 2007. 6. 6. 22:51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113652

사람이 나이를 먹어가면 변하게 되고

그 변화의 수준에 평균점이라는게 분명 존재하게 된다

사회적 통념 상에서 그 평균점 보다 높으면 어른스럽다 그러고

그 평균점보다 낮으면 애기같다고 한다.


그 기준과 그 잣대는 다양하게 존재한다.

성격, 말투, 어조부터 시작해서

행동, 생각, 가치관까지

그 범위는 잡는 맘대로고 보는 맘대로다


그래서 성격이 어른스러워도 말투가 애기같은 사람이 있고

행동은 어른스러워도 가치관은 애기같은 사람도 있다.


우리가 어렸을때는 어른스러운 면을 많이 부각받아왔다.

미성년시기에는 원체 나이가 애기기 때문에 애기같은건 부각이 되지 않고

조숙한 면들, 어른스러운 면들이 부각된다.


하지만 겪어온 경험에 따라 변화는 멘탈적인 요소들이

어른스럽기는 생각보다 쉬운일은 아니다

또 그런면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래서 주로 행동이나 외모의 조숙함을 많이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영향이 있어서 그런가

나이가 먹어서도 우리는 사람의 나이 됨됨이를

주로 행동이나 외모, 말투등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면을 많이 보게된다.

이제 반대로 나이를 먹었으니 얼마나 애기같은가를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동안 열풍이 불기도 하고, 애교나 백치미 같은게 뜨기도 하고 그런다.


반대로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어른스러운가에 대한 평가를 많이 받는다.

뭐 외모나 행동의 측면은 그렇다 치고

이제는 멘탈적인 측면에서도

우리가 많이 어렸을적과 똑같이

얼마나 조숙하고 어른스러운가에 대한 관심과 궁금증을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판단한다. 결정짓는다.


하지만 멘탈적인 요소들은

이제 우리 나이쯤 되면, 즉 성인이 넘어서면

그 사람이 어떠한 만큼인지에 대해

그사람의 생활, 인생 경험, 가치관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판단하기가 여간 어려운일이 아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어른스러움, 아니면 애기같음을

결국은 우리의 행동이나 성격등을 통해 파악당해지고

그것이 곧 멘탈적인 것들의 어른스러움, 애기같음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준다.


머리가 아직 다큰건 아니지만

생각하는 능력은 충분히 성장한 우리들

그런 우리를(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를) 판단하는것은

또 그것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결정짓는 그 판단 자체는

누가 책임지고 누가 확신할 수 있는가

그 누구도 확신할 수 없고 결정지을 수 없는 그런 문제이지 않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 말 하나에, 내 행동 하나에

나를 판단하고 결정짓는다.

내가 얼마나 성숙했는지에 대해서

by 태방 2007. 6. 2. 02:42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042880

요즘 한나라당 경선이 한창이다.

덕분에 대선이 얼마 안남았구나 하는 분위기가 느껴지는것 같다.

내가 지지하는 당은 아니라지만, 그래도 이런 분위기 나게해주는게 어딘가


그 덕분인지 과외갔다가 버스에서 내리고 나서

대선에 대해 문득 생각이 떠오른게 있었다.


국민들은 어떠한 대통령을 선택하는가?


여러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자신에게 이익을 줄 사람을 선택하기도 하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부합하는 사람을 선택하기도 하고,

잘생긴 사람, 왠지 맘에드는 사람을 선택하기도 하고,


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정말 중요한, 한 나라의 우두머리를 뽑는 선거에서

잡다한 이유들 보다는 그래도 이 이유가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었다.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대통령'


뭔 뜬구름 잡는 소리겠냐 싶겠지만

결국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인생을 사는거 아닌가

발버둥치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정신없이 사는 사람도

하는일없이 빈둥빈둥 놀면서 구박 받아도 좋다~ 하면서 사는 사람도

죽지 못해 사는 사람도, 살지 못해 죽는 사람도

우리가 하는 모든 선택, 모든 결정은

결국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한 쪽으로 하는게 아니었는가?


대통령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한다.

5년전 노무현 대통령을 국민들이 지지한 이유는

적어도 이회창보다 국민의 행복을 위해 일할것 같다라는 이유때문이었을 것이다.

왜 행복을 줄지에 대해서는 다들 다양한 이유들이 있겠지만

종국에 가서는 그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한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이 지지율이 낮은 이유도

국민들에게 행복을 주지 못해서가 아닌가

노무현 대통령이 하려고 했던 일들, 또 실제로 한 일들

그 모든 일들을 하고 나면 우리는 행복해 지지라 굳건히 믿어왔건만

이래저래 다양한 이유들로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불행만 안겨다 주었다.

이래저래 잘한일들 많다!! 정말 많다!!

하지만 잘했다고 행복한건 아니지 않는가

정치를 투명하게 바꿨다고 국민들이 행복해지지는 않으며

경제성장율을 4%에 맞추는데 성공해도 국민들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주식이 하늘높은줄 모르게 올라도 국민들은 행복해지지 않으며,

수능을 등급제로 바꾸고 대입에 내신비중을 높여도 국민들은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이란 사람이 지지율이 높은 이유는 너무나 자명해진다.

그는 실제로 서울시장을 하면서 서울 시민들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청계천을 만들었으며, 좀 더 수월하게 버스를 이용하게 하는데 노력했다.

삭막한 도시에 하이서울페스티벌을 만들어 잠시나마 웃게 해주는데 성공했다.

그는 적어도 서울시장 4년 임기동안 서울 시민들에게

행복을 주는데 성공한 시장으로 생각되어 질 수 있다.

또 대운하를 판다며 일자리를 주겠다고 한다.

현대에서 자수성가한 CEO 출신이라 우리나라도 그렇게 만들어 줄 것 같다.

그것이 국민들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또 그것이 지지율로도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행복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니다.

행복을 주고 웃음을 주는 일은, 진정 행복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슴으로 다가가고, 기분을 좋게 해주는 것을 넘어서서

그들이 진정 바라고 원하는 좋은 것들을 많이 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냥 기분좋게만 해주는게 행복이면 유재석씨가 대통령을 하면 참 좋겠다.

하지만 그래서는 절대 안된다는건 누구나가 다 안다.

지금의 이 행복이 거짓이어서는 안되고, 미래로 지속될 수 있는 바람직한 행복이어야지

잠깐의 즐거움만 줄 수 있는 그런 행복이어서는 절대 안된다.


그러고 보면 청계천이나 서울시 버스나

참으로 거짓된 행복들이 많아서 너무나 아쉽다.

청계천은 하천이 아닌 시멘트 바른 조경일 뿐이며

서울시 버스는 온통 부실과 비리들이 난무한다.

그 실체가 진정한 행복이어야 하고 거짓없는 행복이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다는 것이 너무나도 아쉬운 점이라 할 수 있다.


내 블로그를 조금만 관심있게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난 김근태씨를 참으로 좋아하는 편이다.

그분과 이야기도 짧게나마 나눠보고, 강연이나 연설들을 많이 둘러보고, 정책을 살펴보고

이러면서 느낀점이, 다른건 모르겠다만 정말 거짓이 없으신 분이고

소위 '진정성의 화신'이라 불려도 좋을 만큼 진실을 향해 달려가시는 분이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진정 옳은 일인가를 향해만 나가시는

그런면에서 고집이 너무 강해서 탈인 분이라고나 할까


이제 대선후보에 까지 언급되기는 하지만

지지율은 영 형편이 없다.(안타깝지만 사실이다 -ㅇ-)

왜 지지율이 낮을까? 잘생기지가 않아서? 말을 느릿느릿해서? 튀는 행동을 안해서?

아니다. 국민들이 보기에 '행복을 주는 대통령'으로 보이지 않아서 이다.

뭐 항상 정쟁속에 휘말리거나 실패한 여당의 짐꾼으로만 기억되었지

그가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가 않다.

그가 국민에게 행복을 줄만한 일들을 많이 했지만

국민들의 머릿속엔 기억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ㅇ- 자세하게 알고 싶은 분은 궁금하다고 난리 부르스를 쳐 달라 ㅋ)


그가 이명박씨 처럼 국민에게 빠른 시일 안에 웃음을 안겨줄지는 모르겠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옳은 일을 하지만 행복을 주지 못하는 대통령이 될 사람일지도 모른다.

(FTA는 행복도 못주고 옳지도 못하다 -ㅇ- 절대안되!!)

그래도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이 옳은 일로 행복을 줄 수 있는 확률이

행복을 주지만 옳지 못한 사람이 국민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줄수 있을 확률 보다는

훨씬 높다는것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번 대통령이 누가 될지는 정말 모르겠지만

정말 행복을 주는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by 태방 2007. 5. 31. 01:19
http://blog.naver.com/nogari9/100038012509

김근태 “뭔가 돌파되지 않으면 자연사 할 것”
 
“대통합은 대세가 아니라 대의
 
시간 한달뿐… 주자 연석회의를”
한겨레 백기철 기자 이지은 기자
»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민주당 사수파가 주장하는 열린우리당 심판론은 ‘제2의 탄핵’”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지난 27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대통합신당 논의가 박상천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사수파의 특정인사 배제론, 색깔론 때문에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범여권 통합과 관련해 “시간이 6월 한 달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대선주자 연석회의와 (세력간의) 대통합이라는 ‘투 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제안한 ‘7인 대선주자 연석회의’는 진전이 있나.

=기본적 취지에는 다들 긍정적이다. 실무적으로 따져보면 시간이 6월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지적에 다들 놀라는 눈치였다. 다만 적극성에서 온도 차가 있다.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밑에서부터 큰 흐름이 형성되고 거기에 대선 주자들이 동참하는 방안이 더 현실적이지 않나.

=세력과 정당이 통합하고, 그 토대 위에서 국민경선을 치르는 것이 정답이고 모범답안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그래서 ‘투 트랙’으로 하자는 것이다.

­6월 한달 동안 ‘투 트랙’의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요즘 시민들을 만나면 (나에게) “다 뭉쳐라. 그렇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말한다. 대선 주자들은 연석회의가 이뤄지도록 자기 결단과 희생을 해야 한다. 6월이 지나면 수습할 수 없는 지리멸렬한 상태가 올 위험성이 있다.




­연석회의에 대해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문국현 유한킴벌리 사장이 미온적인 것인가?

=손 전 지사와 문 사장이 (연석회의에) 참여하지 않으면 국민들 보기에 모양새가 우스울 것이다.

­본인이 탈당으로 돌파구를 만든다는 생각도 하고 있나?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뭔가 돌파되지 않으면 그냥 자연사할 것 같다. 돌파는 국민들이 보기에 결단과 희생을 통해 도덕적 공감을 가져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쳐다보지도 않을 텐데, 그게 잘 잡히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범여권의 대선 후보가 될 가능성은 있다고 보나?

=지금 범여권의 예비후보들은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쓰리다. 그러나 버티지 않을 수 없다. 민주세력이 대통합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내가 속한 조직의 대세를 거역하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대세’에 따를 것으로 보나?

=노 대통령은 지금 당적을 갖고 있지 않다. 그에 걸맞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대통합은 단순히 대세가 아니라 우리가 반드시 움켜잡아야 할 대의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두 사람이 범여권에서 여전히 상당히 많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대선 예비후보들이 더 ‘난쟁이’가 되고 있다. 지지자들이 분열돼 있어서 그렇다. 결국은 두 전·현직 대통령이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아직도 복잡하다.인터뷰 백기철 정치팀장 kcbaek@hani.co.kr, 정리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by 태방 2007. 5. 30. 11:13
by 태방 2007. 5. 30. 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