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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어린 금융자본에 고삐 채우기: 주주이익 한정 인정제
2007-05-02ㅣ프레데릭 로르동

르몽드 디플로마띠그에 실린 <광기어린 금융자본에 고삐 채우기: 주주이익 한정 인정제>를 소개합니다. 번역문은 매일노동뉴스 번역문(2007.4.25)을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아래 글은 보고서에 대한 김병권(새사연 연구센터장)의 소개글입니다.(편집자)



- 김병권 / 새사연 연구센터장



한미FTA 저지투쟁을 계기로 반신자유주의 저항이 국민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10년의 세월이 지난 뒤의 일이다.

여전히 추상 수준인 반신자유주의 구호


그러나 아직 반신자유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반대해야 하는지”, “어떤 문제점을 근원적으로 제거해야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지”는 모호하다. 대다수 국민들에게 반신자유주의 요구가 구체적이고 절박한 구호라기보다는 다소 선언적이고 추상적인 구호로 들리는 이유다.


반신자유주의 요구는 대략 “비정규직 해소”, “사회 양극화 해결”, “외국투기자본 규제”, “무분별한 민영화와 시장화 중단”등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엄밀히 따지면 노동유연화나 사회 양극화, 자본의 투기화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지 그 “원인”은 아니다. 원인에 대한 분석과 그것의 제거 없이 그 결과로 나타난 현상만을 치유하려는 것은 근원적 처방책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한계 또한 뚜렷하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의 핵심은 브레이크 없는 주주 이익실현 요구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 신자유주의의 구체적 모습은 이른바 주주자본주의로 표현되고 있다. <르 몽드 디플로마티크>에 실린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로르동의 “정치적 대안을 위한 제안 : 광기어린 금융자본에 고삐 채우기 - 주주이익 한정 인정제”는 그 점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다.


그는 현대 자본주의의 핵심권력에 대해 “한계를 두지 않고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커져버린 이 집단은 바로 주주금융자본”이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주주의 제한 없는 이익 극대화 요구가 어떻게 기업에 투영되고, 노동자와 산업에 영향을 끼치는지를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설명한다.


“주주들의 치부 욕망은 경영진의 자리보전에 대한 욕망을 자극하고, 다시 이 욕망을 높은 생산실적으로 전환하라는 명령이 회사의 조직 피라미드 최정상에서 위계구조를 따라 거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래로 내려와 피라미드 최하단에 있는 노동자까지 전달되며, 심지어 피라미드를 넘어 회사의 모든 하도급업체들에게까지 전달된다. 모두들 각자 어떻게든 생산성을 높이고, 이익을 내는 정도가 아니라 ‘끌어올려서’, 주주들에게 바치는 공물로 내놓아야 한다.”


그는 이렇게 작동되고 있는 주주들의 이익 실현요구가 신자유주의 아래에서 어느 수준까지 도달해 있는지를 예증한다. 그의 주장을 이어가 보자. “90년대 말에는 모든 것이 바뀌었다. 주주들은 15%의 자기자본 이익률을 요구했고, 이것은 곧 ‘규준’이 되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주주들에게 20%, 나아가 25%의 자기자본 이익률을 약속하는 기업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2006년 <더 이코노미스트>는 골드만삭스가 40%라는 기록적인 자기자본 이익률을 ‘달성’할 것이라고 경탄해 마지않았다.”


주주가 요구할 수 있는 권리의 제한선


그렇다면 기업에서 주주가 주장할 수 있는 합리적인 권리의 기준은 어디까지인가? 이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현재의 무제한적인 주주의 개입을 일정한 선에서 제어하고 주주자본주의의 전횡을 방지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을 것이다.


프레데릭 로르동은 주주 이익의 상한성을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경제적 부가가치 이론에 따르면 이 ‘자본비용’은 무위험자산의 이자율과 위험 프리미엄의 합으로 계산된다. 이때 기준이 되는 무위험자산은 보통 3개월 만기 미재무성 채권이다....무위험자산 이자율과 위험프리미엄을 더한 수치라면 요즘 같은 경우엔 5%나 6%정도인데, 오늘날 적용되는 20%의 자기자본 이익률을 고려할 때, 이는 그 자체로 훨씬 합리적인 수치이다.”


즉, 무위험자산 이자율과 위험 프리미엄을 더한 수준이 주주가 주식에 투자하여 얻어야 할 표준 상한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예시에 불과하다. 이러한 예시가 합당한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는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현재와 같이 브레이크 없는 주주의 이익실현 욕구가 과연 정당한가 하는 점, 그리고 이런 식의 주주자본주의 시스템을 그대로 두고서 신자유주의의 결과인 비정규직 양산과 사회양극화, 투자부진 현상 등을 해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결국 주주의 권리 남용에 대한 제어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동의구조를 만드는 문제다. 그럴 때만이 신자유주의의 병폐를 근원적으로 해결할 길이 열린다.


주주자본주의를 통제할 해법에 대하여


그렇다면 주주의 이익범위를 합리적인 수준에서 제한함으로써 주주자본주의를 통제할 실질적 해법은 무엇인가? 프레데릭 로르동은 법적 장치를 동원할 것을 제안한다.


“금융의 브레이크 없는 욕망에 브레이크를 거는 것은 규정에 따라, 그리고 강압적으로 금융의 이윤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금융이 기업과 해당 기업의 노동자들, 그리고 하도급 업체를 상대로 마지막 한 방울의 기름까지 쥐어짜도록 추동하는 유인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힘에는 힘으로 맞서야 하는 법이며, 자본의 힘에는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카드인 법의 힘으로 맞설 수밖에 없다.”


그는 주주가 적정 이익수준을 넘는 총주주가치 수익률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여 사회적으로 환수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주주이익한정인정제도(SLAM: Shareholder Limited Authorized Margin)’라고 이름 붙였다.


무위험자산 이자율과 위험 프리미엄을 넘는 주주의 이익을 ‘세금’이라는 방법을 통해 환수하는 것이 적절한 대안인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또한 단지 주주의 초과이익 환수뿐 아니라, (오히려 그보다 더욱 심각할 수 있는, 그리고 주주행동주의라고 불리는) 주주의 각종 기업 경영압력과 간섭행위는 어떻게 적절한 수준에서 제어할 수 있는지는 또한 별개의 중요한 문제다.


법적인 장치를 통해 주주의 권리를 재정의하는 한편, 주주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하는 노동자와 사회의 요구가 반영되도록 하는 기업 경영시스템을 역시 법적인 장치를 통해 만드는 방향으로 대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이 ‘공공주식회사법’과 같은 법적 틀을 통해, 주주의 권리는 물론, 노동자의 경영참여 권리와 기업경영시스템을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자본이 떠날 것이라는 공포와 환상


기존의 무제한적인 주주 권리에 대해 법적이든 정치적이든 제한을 가하려 할 때 자본이 기업에서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와 공포가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프레데릭 로르동은 이 문제에 대해서도 매우 명료하면서도 자신 있게 주장한다. 그는 “주주금융이 제공하는 ‘서비스’ 없이 지낼 경우 뭔가 심각한 일이 일어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사실 주주독재로 인해 기업들이 겪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모든 폐해를 차치하더라도 ‘기업에게 자금을 조달해주는 주식시장’이라는 테제가 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이 되어버린 것은 이미 오래전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금융천국이라는 미국에서 배당금과 주식 바이백(BuyBack)이 새로 투입되는 자본총액을 초과하는 수준에 도달했고, 결국 오늘날 기업의 자금조달에서 주식시장의 순 기여분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주식시장과 주식시장을 놀이터삼아 상주하는 투자자들은 진정한 자금조달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신주발행보다는 2차 시장(이미 발행된 주식 유통시장)에서 급박하게 돌아가는 거래를 더욱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사회가 아니라) 주주 권력에게 모든 자유를 준 것은 무분별과 이익 욕구에 갇힌 소수 엘리트들”이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고 보면, 주주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 다수 대중이 다수의 이익 실현을 위한 대안 경제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다시 모색해야 한다. 

by 태방 2007. 5. 3.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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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3일 오후 2시

  D2를 샀다. MP3도 되고 PMP도 되는 기기다. 비쌌지만 잘 샀다는 생각이 든다. 남는 시간에 책을 읽어도 좋지만 책만 읽기는 너무 지루할때가 있다. 요즘은 뭘 읽어야 할지 감이 잘 오지 않는다. 덕분에 거금을 주고 MP3를 샀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오늘은 메모리도 도착했고 해서 동영상을 가득담아 집에서 나왔다. 서대문에 일하러 가야한다. 어제 갔어야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오만가지가 귀찮아서 저녁 약속이 있을때 까지 집에서 뒹굴뒹굴 거렸다. 약속이 덕수궁 근처였는데 서대문에 미리 가서 일했으면 걸어서 10분 거리였을것을 또 귀찮에 오늘 또 나오다니 나도 참 바보같다. 그래도 귀찮은걸 어떡하나 하릴없이 하루 또 째고 일이 밀려 욕먹느니 그냥 어제 입던 옷 주섬주섬 주워 입고 집을 나섰다.

  지하철 역까지 가는 길에는 음악을 들어야 한다. 걸어가며 동영상 보기에는 너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뭘 들을까 이래저래 뒤져보다가 박정현을 들었다. EQ가 너무 귀를 찌른다. 휴대폰에 있던 MP3는 소리가 너무 귀를 찔러 오래 들으면 귀가 피곤했는데 이번에도 셋팅이 별로인지 귀가 찌른다. 셋팅하는거도 복잡해 죽겠던데 또 언제 하나 걱정이다. '아무말도, 아무것도'가 나온다. 박정현 노래는 예전부터 좋아했다. '편지할께요'는 정말 불후의 명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슴이 찡해지기도, 또는 아련해지기도 하는 기분은 박정현의 노래가 아니면 느끼기 힘든 기분이다.

  군포역까지 도착했다. 집에서 10분정도 걸리는 거리다. 나는 맨날 다녀 별로 안멀다고 느끼지만 걸어서 10분이라 그러면 사람들이 다들 먼데 힘들지 않냐고 묻는다. 걸어서 10분 거리가 그리 귀찮은 거리인가? 현대인들이 어지간히 걷는서 싫어하는거 같기는 하다. 뭐 나라고 움직이는거 좋아하는 편은 아니지만, 국토 대행진 이후 걷는게 재미있어 졌다. 살도 빠진다니 일석 이조 아니겠는가? 이따가도 또 걸을일이 생겨 하루 계획이 왠지 기분이 좋게 짜여진 기분이다. 역앞에 서자마자 다행이 전차가 전 역을 출발했다는 메세지가 뜬다. 플렛폼에도 사람이 없는걸 보니 오늘도 앉아 갈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든다. 동영상은 'Sex and the City'를 담아왔다. 앉아서 가면 편안히 볼 수 있겠지? 괜히 또 기분이 좋아진다.

  역시나 자리가 많다. 낮이라 햇볕이 안드는 자리를 골라 앉고 D2를 다시 킨다. 야동만큼 낮뜨거운 장면의 연발이나 이상한 내용이 있는 드라마는 아니지만, 그래도 제목값은 할 정도로 19금 내용들이 종종 나온다. 뭐 미국인의 생활이라니 그려려니 하며 드라마를 즐기지만, 헹여나 옆사람이 볼까 좀 두렵다. 역시 'Sex and the City'는 좀 무리였나? 담번에는 프리즌 브레이크를 담아와야 겠다. 그래도 철판깔고 보던건 다 봐야지 하고 시즌 2 5편을 끝내고 이내 6편도 킨다.

  서대문 역 앞인데 드라마가 끝날 기미가 안보인다. 기여코 보기위해 걸어가면서도 액정에 눈을 띠지 않는다. 걸어가다 걸어가다 사무실 바로 앞에서 다행히 끝난다. 전원을 내리고 이어폰 줄을 돌돌 감아 가방에 넣고 문을 연다. 신발이 하나밖에 없는거 보니 대표님은 안계신가 보다. 회의록 써온다고 해놓고 안써왔는데. 빨리 들어가서 오시기 전에 끝내야 겠다. 컴퓨터는 또 말썽이다. 중간에 부팅이 되다 말아서 10분이고 20분이고 마냥 손 놓고 멍하니 있다. 일주일만에 보는 다른 직원분께 인사를 하고 잡담을 하지만 컴퓨터가 안되니 멍하니 지겹기만 하다. 어떻게든 고쳐봐야지 하고 키보드 줄을 꽈악 다시 끼고 전원을 켰다. 나는 안된다고 푸념을 줄줄 외고 있다. 그런데 이게 왠일? 너무 멀쩡하게 잘돌아간다. 역시 키보드 줄이 문제였나? 옆에 직원분이 껄껄껄 웃으시며 다시 자기 일을 하신다. 조금은 민망하지만 뭐 대순가? 회의록을 한줄한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이번 회의록은 내용은 별로 없어 보였는데 다 만들고 보니 네페이지나 된다. 다음번에 인쇄하려면 고생좀 하겠다는 생각부터 든다. 좀 줄일게 없나 둘러보지만 뭐 영 보이질 않는다. 에이 몰라. 그려려니 하고 자료집 편집을 시작했다. 책 만드는일은 언제나 즐겁지만 언제나 귀찮기도 하다. 자료를 하나하나 뒤져가며 글을 만드는게 만들고 나면 뿌듯함은 엄청나지만 그 중간중간 노가다는 일로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귀찮다. 힘들거나 어렵거나 하지는 않지만 짜증나고 귀찮은 일들 투성이다. 역시 투덜투덜대며 내일 열심히 해야지 마음을 먹고 싸이를 킨다. 파도를 타고 넘실넘실 돌아다니던 중 대표님이 들어오신다. 다행히 회의록을 다 썼으니 책임은 다 했다. 하지만 대표님은 회의록보다는 자료집에 더 관심이시다. 아 아까비. 자료집 열심히 만들라는 말을 듣고 귀찮아 귀찮아를 속으로 연발하며 다시 한글 2002를 킨다.

  오늘은 대표님과 직원분이 같이 약속이 있으셔서 나가시는 날이다. 나 혼자 남겨지기는 처음이다. 나보고 문단속 하고 가라고 하신다. 이런일은 처음이지만 뭐 어려운일은 아니니. 인사를 드리고 나니 혼자남은 사무실에서 왠지 평온함이 느껴진다. 나른하지만 편안해진다. 그래도 배는 살짝 고픈걸? 옆방에 주방이 있다. 먹을만한건 계란뿐. 난 그래도 계란을 좋아하니! 식용유가 보이질 않아 참기름을 붓고 계란 두개를 까서 훌렁 후라이로 먹어치운다. 아 역시 계란후라이는 맛있어. 케찹도 칙칙 올려 먹고나니 속이 든든하다. 편하게 쉬고 싶지만 그래도 집까지 한시간이나 걸리니, 짐을 꾸리고 문을 잠구고 사무실을 나왔다. 밖이 벌써 어둑어둑 해지려고 그런다. 나가는 길에 잠시 시청 광장을 들렸다 와야 한다. 우리 행사를 할 곳 자리를 알아봐야 하기 때문이다. 서대문에서 나와 시청이 어느쪽인지 살펴본다. 나는 방향치라 지도를 봐도 도통 어디인지 해깔린다. 그냥 한곳 찍어서 주욱 가봤다. 번화가가 보이길래 시청이 있겠거니 했는데 마침 그방향이 맞는거 같다. 두블럭쯤 걸어가니 어제 모임을 했었던 덕수궁에서 종로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제부터 익숙해지니 왠지 기분이 으쓱으쓱 해진다. 다시 D2를 꺼내서 허밍어반스테레오를 튼다. 이 가수 노래를 들으면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는거 같아 별로 키는걸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그러지 않나? 노래마다 추억 하나씩 담아놓는거. 나도 그런 노래들이 종종 있다. 그런 노래들을 즐겨 듣기는 하지만 노래 들을때마다 추억이 떠올라 왠지 기분이 쓸쓸해지기도 한다. 추억은 언제나 기분을 쓸쓸하게 한다. 그래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어제 왔던 길의 밑천은 다 떨어졌다. 이제부터 시청을 찾아가야 하는데 도통 방향이 써있지가 않다. 시 의회 근처에 시청이 있겠지 싶어 의회쪽으로 걸어갔다. 이어폰에서는 좋은 노래가 계속 나온다. 허밍어반스테레오가 이렇게 좋았었나? 서울의 밤거리는 정신없이 바쁘지만 귀에 꼽혀있는 올챙이 두개가 내 마음을 들뜨게 한다. 산지 2년된 MX500이어폰. 망가질 때도 되었지만 둥둥둥 여전히 좋은 소리를 내준다 아 정말 잘산거 같아.

  어디선가 사람이 우글우글한 장소가 보인다. 아 저기가 시청 광장이구나. 행사가 있는것 같았다. 자세히 보니 '하이 서울 페스티벌' 행사중 하나인것 같다. 시민 스타? 잘 안보이지만 서울 시민 대상 노래대회 같은거 같다. 민요를 부르고 있는 팀. 별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보다 너무나도 푸른 잔디를 보고 잠시 놀란다. 너무 인위적인 색이라 페인트로 뿌렸나 의문이 들정도이다. 설마 그랬을라고 싶지만, 이런 잔디를 깔 정도면 돈을 얼마나 들였나 싶다. 서울이 좋긴 좋아. 광장 한바퀴를 편하게 걸어간다. 너무 깔끔하고 이쁘다. 뭐 다 돈지랄이겠지만 그래도 좋은건 좋은거지 의자도 맘에 들고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맘에 든다. 다들 잔디밭에 앉아 주부들, 학생들, 그 외의 다양한 시민들이 팀을 꾸려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있다. 페스티벌이라, 그런걸 즐길 정도의 사람들이면 어지간히 속편하게 사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학교 축제도 즐길줄 모르는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아 이번에는 학교 축제를 못보게 생겼군. 포항은 싫어도 축제는 좋았는데. 돌다보니 분수대가 나온다 아이들이 좋다고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서로 꼭 붙어 분수를 바라보고 있다. 연인? 분수? 뭔가 어울리지만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연인들 볼때마다 드는 생각인 '나도 사랑'이라는 생각이 여지없이 지나갔지만, 허밍어반스테레오 노래가 귓가를 때리는 동안에는 그냥 지나가는 생각들중 하나이다. 뇌 주름을 풀어버리고 편하게 다시 광장 한바퀴를 돌기 시작했다.

  한바퀴를 다돌고 지하철로 들어갔다. 아 지상을 편하게 걷다가 콱막힌 지하로 들어오려니 이거 영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나에겐 D2가 있지 않는가! 동영상으로 버텨가며 시청역에서 군포역까지 갈 생각을 한다. 48분? 흠 두편은 볼 수 있겠다. 다행이야. 이번에는 깔끔하게 내리기 전에 다 봐야지.

  역시 금정역에 왔을때 두편째가 끝났다. 옆사람에게 성행위 장면이 보일까 여전히 걱정은 했지만, 재미있으면 장땡이다. 그런 드라마인데 어쩌라는 건가. 미국에서는 저 드라마가 공중파에서 나왔을텐데. 애써 위안 삼으며 MP3를 가방에 넣고 역에서 나온다.

  문득 드라마를 보고 나니 또 온갖 삼라만상이 다 떠오른다. 허밍어반스테레오를 틀어도 이번에는 생각이 지나가지를 않는다. 사랑? 사랑? 맨날 지겹게 사랑타령을 해도 결론이 나지 않는 사랑. 내 사랑에 요즘 문제가 좀 많다. 그래서 맨날 생각하고 고민하고. 하루종일 사랑 사랑에 치여서 살아 가고 있지만 드라마를 보고나니 기분이 또 영 꿀꿀하다. 별 쓸데없는 생각인지 알면서도 또 혼자 한숨 푹푹 내쉬며 집가지 터벅터벅 걸어간다. 가는 길에 야구연습장이 보인다. 평소였으면 돈낭비야 이러면서 애써 무시하고 지나갔을테지만 갑자기 지갑에 천원을 확인하고 동전으로 바꿔 철조망 안으로 들어간다. 음악은 빼고 싶지가 않다. 허밍아 내 머리가 더 복잡해지지 않게 붙잡아 다오. 가방을 던져놓고 동전을 넣는다. 에이 뭐야 장갑이 없잖아. 그래도 너무 치고싶었던가 보다. 방망이를 들고 휙휙 휘두르기 시작한다. 자세는 영 아니지만 오늘따라 공이 잘 맞는다. 공을 끝까지 보고 위쪽으로 치려고 집중한다. 공이 계속 잘맞는다. 기분이 좋다. 손은 좀 쓸려서 아프지만 멍했던 정신이 뻥 뚫리는 기분이다. 신나게 치고 팔이 얼얼거릴때 쯤 공이 나오질 않는다. 전혀 아쉽지가 않다. 철조망을 나오고 걸어나가자 이상하게 기분이 시원하고 후련하다. 내 고민은 전혀 풀리지 않았지만 이런 자극이 나를 시원하게 한다. 공을 끝까지 보니 방망이에 맞는구나. 또 괜히 별거 아닌 일에 나를 대응 시켜 본다. 공을 끝까지 보자. 공을 끝까지 보자. 더러운공들, 지나가는 공들 다 버리고 끝까지 내공을 보자. 안타 한방이면 된다. 지나간 공은 이미심판이 스트라이크란다. 1루도 한번 못밟아 본 사람이 스트라이크에 항의하고 있어봤자 영 아니다. 그래 공을 끝까지 보자. 한방만 치자. 한방만 치면 그때부터 나는 강타자가 된다. 다행히도 허밍어반스테레오는 내가 다음 한방을 치기위한 워밍업을 할때까지 내 곁에서 계속 노래를 들려 주었다.

2007년 5월 3일 저녁 9시

by 태방 2007. 5. 3.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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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원래 그런 건 못하거든요"
[머니투데이 2007-05-01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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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류석우 칼럼니스트][[류석우의 태클코칭]고질병을 부숴라]

☞태클편지 : 저 원래 그런 건 못하거든요…?

사람 성격이라는 게 참 바뀌기가 힘든 것 아닌가요?

대부분 성공에 대해 이야기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밝고 활발한 사람들에게나 먹힐만한 이야기를 하던데, 정말 저처럼 원래부터 성격이 내성적인데다가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쩌라는 건가요….

이번에 저희 회사에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영업팀이 새로 꾸려지게 되었거든요. 각 부서 당 2명씩 차출이 되었는데 그만 제가 뽑혀버린 겁니다.

제가 자신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는데 제 원래 성격이 어떤지 판단도 안 해보시고 무작정 그런 일을 맡기다니…. 전 아직까지 살면서 남에게 아쉬운 소리 한번 못하고 살았던 스타일입니다.

누가 앞에 나가서 장기자랑이라도 할라치면 제가 더 민망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숫기도 없고요. 그런데 영업이라니, 이게 웬 날벼락 같은 소리란 말입니까. 붙임성도 없고 낯가림증도 심한 저보고 정말 회사를 말아먹으라는 얘긴지, 진짜 사표 써야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저도 제 성격이 마음에 들지는 않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싫어서 좀 변화해 보려고 자기계발 카페에도 가입하고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어요. 하지만 원래의 제 스타일이 있는지라 좀 힘드네요.

저처럼 원래부터 소심한 인종들은 정말 남들보다 앞서기 힘든 건가요? 성격과 정말 안 맞는 이런 일을 맡았을 때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하죠?

<태클넘기 : ‘원래병’을 부숴라>

틀림없이 그 병에 걸리신 게로군요. 저 역시 예전에 심하게 앓았던 병이기도 해서 낯설지가 않아요. 저도 그 병을 치료하는데 무척이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아주 각오하셔야겠어요.

너무 놀라지는 마세요. 이 병은 너무도 흔해서 당신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걸렸거나 그 병의 인자를 가지고 있거든요. 물론 자기가 이 병에 걸린 줄도 모른 채 말이죠. 궁금하시죠? 바로 ‘원래병’이라는 겁니다.

‘변화’와 상극관계

혹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자신이 ‘원래’라는 말을 얼마나 쓰는지 알고 있나요? 제게 보낸 편지만 하더라도 그 짧은 글에 ‘원래’라는 표현이 네 번이나 있었답니다.

또 일상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의 대화를 조금만 엿들어 봐도 쉽게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나는 원래 그래, 나는 원래 이런 걸 싫어해, 나는 원래 저런 것을 좋아해, 나는 원래 그런 건 잘 안 해, 나는 원래 그런 성격이야, 원래, 원래, 원래….”

이처럼 ‘원래병’ 바이러스는 전국 방방곡곡에 널리 퍼져있어요. 그렇게 유명해서 그런지 ‘원래병’은 다른 별명도 많이 가지고 있죠. ‘고정관념’이 대표적이고, ‘고집’, ‘아집’으로도 가끔 불립니다. 또, ‘구태의연’이라는 형용사로도 표현이 되며, 이 병에 심하게 걸린 사람의 성격을 ‘폐쇄’라는 무시무시한 단어로 몰아세우기도 하죠.

그런데 이 ‘원래병’과 경계선을 이루며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는 녀석이 있어요. 바로 ‘변화’라고 하는 녀석인데, 이 ‘변화’와 ‘원래병’은 서로 상극관계라고 할 수 있죠. 둘 간의 싸움에서는 이 ‘원래병’이란 녀석이 단연 우세합니다.

‘변화’는 이 ‘원래병’에게 별로 힘을 쓰지 못하고 만날 당하기만 해요. 그래서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은 웬만큼 힘이 센 ‘변화’를 대동하지 않으면 절대로 ‘원래병’을 이기지 못한답니다. 그냥 그렇게 ‘원래’대로 살아가죠.

‘나’는 내 방식의 결정체이다

아무리 이 병이 흔하다 할지라도, 비전을 가지고 무언가를 이루려는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어요. 특별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은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간절히 원하기 때문이죠. 즉, ‘원래병’과 상극인 ‘변화’라는 녀석을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에요.

세계적인 성공학자 위르겐 휠러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이제까지 해온 그대로를 한다면 이제까지 살아온 그대로로 살아갈 것이다.” 사람들은 변화를 꿈꿀 때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생각합니다. 곧 그것이 비전이자 목표이고, 꿈이며 희망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쉽게 가지는 착각 중의 하나가 이제껏 해왔던 대로 하면서 변화된 미래를 이룰 수 있다고 믿는 거예요. 저는 그런 착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자신을 한번 냉철하게 분석해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지금의 나의 모습, 그러니까 내가 현재 처한 모든 상황은 이제껏 내가 세상에 태어나 현재까지 사고하고 행동하며, 말해 왔던 모든 것의 ‘결정체’에요. 그 누가 만들어 준 것도 아니요, 그 누가 대신 그려준 것도 아닌 철저하게 내가 그린 그림이란 뜻이죠. 그런데 이제까지의 그림과는 다른 그림을 원하면서 이제껏 그려왔던 방식을 계속 고수한다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고밖에 할 수 없어요.

패턴 자체를 바꿔라

더 심각한 문제는 예전의 방식으로 그리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새롭게 변화된 방식인양 착각을 한다는데 있답니다. 그러니까 그리는 방식자체를 바꾼 것이 아니라 물감의 농도만을 살짝 바꿨으면서, 완전히 새로운 그림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는 것이죠.

저도 처절하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초보 강사시절, 스스로 제 강의를 녹음해서 분석한 결과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는 그 문제점들로 인해 제 강의가 점점 청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고, 비로소 변화를 시도하기로 마음먹었죠.

강의내용을 바꿔보려고도 노력했고, 재미있는 멘트를 삽입시켜 청중들을 웃겨보려고도 했어요. 또, 멋진 말들로 강의의 품격을 높이려고 강의록도 보강시켰구요. 그렇게 스스로는 변화했다고 생각하며 새로운 마음으로 강의를 했어요.

그러나 청중들의 평가는 예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한참을 슬럼프에 빠져야 했죠. 그러던 중 어느 책에선가 “변화를 시도하려면 뿌리부터 바꿔라.”라는 문구를 보게 됐어요. 순간, 제가 뿌리를 바꿀 생각은 하지 않으면서 ‘잔기술’만을 변화시켜 새로운 결과를 얻으려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그래서 다시 강의패턴 자체를 바꾸려고 시도했어요.

처음엔 그 ‘원래병’이란 녀석 때문에 정말 힘들더라고요. 말투, 제스처, 표정 하나하나에 병균이 침투하여 저의 변화를 가로막았죠. 정말 고통스러운 나날이었어요. 하지만 진정한 노력은 배신하지 않더군요. 저는 결국 변화를 이루어냈고 그때부터 제 강연은 새로운 결과를 도출해내게 되었답니다. 이것이 바로 ‘원래병’이란 병마와 싸운 저의 첫 번째 ‘병상일기’에요.

당신도 원래병에 걸려있는 자신을 심각한 눈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어요. 원래라는 것이 과연 언제부터 존재했는지를 생각해볼 필요도 있구요. 행동으로 노력하기도 전에 먼저 “원래 나는 그런 사람이야.”라는 생각부터 하고 있으니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거예요.

성공자들이 태어난 마을

유명한 성공자들이 여러 명 출생했다고 하여 유명해진 마을이 있어요. 한 기자가 도대체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취재를 하러갔답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선 기자는 이 마을이 맞는지 물어보려고 걸어오는 어떤 노인을 붙잡고 물어보았어요.

“할아버지 이 마을이 유명한 성공자들이 많이 태어났다는 그 마을, 맞나요?”

할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어요. “아니오, 이 마을에서는 그저 갓난아기들만 태어날 뿐이라오.” 그래요. 원래부터 성공자로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저 똑같은 갓난아이였을 뿐이죠.

또, 어떤 분야에서 특출한 성과를 거두는 사람들을 보세요. 과연 그들이 원래부터 그러한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을까요? 일본 경영의 신이라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몸이 허약했고, 배운 것이 없어 중졸학력밖에는 되지 않았으며,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던 것이 바로 자신의 성공비결이라고 했어요.

또, 현재 한국을 빛내고 있는 세계적인 축구선수 박지성을 보자구요. 축구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신체부위가 어디죠? 바로 발이에요. 그런데 그는 평발이라고 해요. 조금만 뛰더라도 피로를 느낀다는, 그래서 군대도 면제된다는 평발이라구요. 그에게 ‘원래’라는 단어를 적용한다면 과연 축구를 해야 옳았을까요?

그래요. 변화를 시도하기 전에 먼저 그 ‘원래’라는 생각부터 지워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한번 변화를 시도해보세요. 그랬는데도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의 ‘뿌리’를 한번쯤 의심해 보시구요. ‘잔기술’만을 변화시키려하지는 않았는지 말이에요.

관록이 쌓일수록 경계하라

이 ‘원래병’은 연륜이 쌓일수록 더욱 더 기승을 부린답니다. 연륜이 쌓이게 되면 ‘축척된 경험’이라는 녀석이 이 ‘원래병’의 강력한 후원자가 되어 뒤에서 버텨주기 때문이죠. 그래서 웬만해서는 변화를 인정하려하지 않는 구태의연함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가정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일이에요. 특히 부모자식간 ‘세대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의 경우, 축적된 경험과 변화된 현실사이에서 서로의 가치관이 충돌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때 변화된 현실감각 없이 자식들의 행동만을 탓하며 ‘원래’를 강조하게 되면, 급변하는 시대에 환영받지 못할 폐품관념의 소유자로 낙인찍힐 수 있어요. 물론 너무 지나치다 싶은 부분은 자제시켜야 마땅하겠지만 말이죠.

세계적인 기업 GE의 잭 웰치는 “1등과 2등 분야를 남기고 모조리 팔아 없애라.”라고 했죠.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 역시 “자식과 마누라만 빼고 다 바꿔라.”라고 했구요. 한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뒤흔들 수 있는 그 ‘변화의식’이야말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오늘날의 결과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어요.

이제 꼭 명심해야해요. 당신 몸속에는 지금 ‘원래병’이 시퍼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그 병은 어느 때고 몸 밖으로 모습을 드러낼 거예요. 그러니 새로운 변화를 원한다면 오늘부터 ‘원래’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지우고 변화를 시도해보세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병’의 심장부인 뿌리부터 공략해야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구요.

변화는 변화 없이 결코 변화되지 않아요. “변화하며 살자구요!”

류석우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by 태방 2007. 5. 1.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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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를 한달음에 읽었다

잔잔한 감동을 줌과 동시에

뭔가 알수없는 미묘한 메세지도 받았다

소리없는 메세지, 하지만 너무나 큰 변화를 주는 메세지


누가 사랑에 환상을 갖지 말라고 하더라

이해가 안가는 말이었다

누가 사랑에 환상을 가졌데?

그냥 내가하는 사랑이 제대로된 사랑인줄 알았을 뿐

그 이상 그이하도 아니었다


사실 알고보니

사랑에 환상을 가졌다기 보단

환상의 사랑만 하고 살아왔던게 아닐까


꿈 깨라는 말이 있다

꿈 깬다는 말은 꿈을 꾸었다가 일어났을때 꿈깨는거다

애초에 난 꿈을 꾼적이 없다

꿈을 꾸면 환상에 빠지지만

애초에 환상에 빠진적은 없다 언제나 환상에 빠지고 싶어했을뿐

꿈을 꾼적은 없다 언제나 꿈꾸기를 원했을뿐


그러니 꿈을 깰수도 없었고 환상을 깰수도 없었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 아닌가?

그러고 스물세살이 되었다

사랑 별거 없다 꿈깨라 그런다


물론 그렇다

대한민국 평균 남성 여성중

사춘기에 사랑을 알고 대학에 들어와 건전한 사랑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성에 하자없고 외모에 큰 문제 없으며 이성간에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그 누구나라면

평균적으로 스물셋 될때까지 한번쯤 연애는 해보고 지나기 마련이다

아니 연애는 못해봐도 사랑을 꿈꾸다가 한번씩 꿈 깨고 보기 바련이다


그런데

난 그렇지 못했고

그러고 스물셋이 되서

포항 촌놈이 서울 상경을 했다


내가 서울에 와서 맞닥들이는 여자들은

모두 꿈 깬 여자들이었다

아니 꿈을 안깼어도 꿈꾸는 중이더라도

어디까지가 꿈인지 아닌지 정도는 단박에 아는

아니 적어도 나같이 꿈꾸길 바라고만 살았던 포항 촌놈과는

꿈꾸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 여자들만 존재했다

(물론 꿈 깬 여자들이 더 많다만)


난 졸지에 바보가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애기가 다큰 어른보다 순수할지는 모르지만

어쨌건 바보는 바보 맞다

어른들이 애들 데리고 장난 치듯이

꿈깬 여자들이 꿈안깬 나를 데리고 장난을 치는듯 했다

그것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의든

호의든 악의든 그것은 중요치 않다

어쨌건 나는 그 속에서 놀아났고 그 속에서 막되먹은 인간이었다


난 내가 왜 사랑을 못할까

오랜 궁금증을 안고 있었다

내가 뭔가 이가 하나 빠져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는데

그래 맞다 난 아직 꿈깨지 않았던 남자였다

아니 꿈깨는게 꼭 좋은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나이 스물 셋에 꿈안깬 남자는

애초에 넘치는 매력이 여자들을 끌어당기지 않는이상

아니면 영화와 같은 완벽한 우연이 겹치지 않는 이상

사랑하기에는 불충분한 조건중 하나이다


하루만에 완전히 다른 심정의 글을 쓰는것도 웃기다만

그래도 어쨌든 일말의 가능성을 남겨둔채

커다란 가치관의 틀이 바뀌어 버리는 정도는

하루가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니


몰랐던걸 알아낸 것 같아

기분이 썩 나쁘지만은 않다

더러워도 어쩌겠는가 현실이 진실인것을

이상과 진실을 구분못한 한 풋내기 청년이

제대로도 아니고 확실히도 아니지만

어쩃든 초보딱지를 떼기 위한 시동은 걸었으니

한결 기분이 홀가분해진다

by 태방 2007. 5. 1. 01:31
http://blog.naver.com/nogari9/100036935737

 

이적 3집 '사랑은 어디로'


사랑은 어디로 영원할 듯 빛을 발했던
그대는 어디로 모든 것을 줄 것 같았던
어느 저녁 노을 빛깔마저 변해버린 날
사랑은 어디로 떠났나


그대는 어디로 사랑 안에 갇혀 있었던
난 이제 어디로 모든 것을 쏟아 버린 채
쓰러지는 모래 기둥처럼 붙들 수 없는
사랑은 어디로 떠났나


부질없이 헛된 희망만을 내버려둔 채
사랑은 어디로 떠났나


사랑은 어디로



그 누구가 인정해 주던 말던 암튼

내가 사랑을 처음 알게 된건 중2때쯤

사춘기의 시작과 함께 찾아온 사랑의 역사


첫사랑의 아픔같은거 둘째치더라도

그 나이때 사랑의 감정을 알아버린거

그리 좋은일이라는 생각만은 들지 않는다


사랑의 아픔을 느끼게 된건 고등학교 졸업식때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는 몇년간 영영 볼 수 없게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힘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난 벌써

대학교 1학년때쯤

사랑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한 것이구나

라는 것을 다 알아버리고

내 사랑을 찾아 떠나온지 벌써

5년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내 맘속에 머물다 떠나가고

나 역시 여러 사람들 곁에 함께 있다 멀어져가고

그러면서 지내온게

5년째


내나이는 스물셋

전국에 솔로8000일 열풍을 일으켰던 사람으로서

나도 이제 슬슬 8000일이라는 단어에 스스로를 옥죄어 가면서

썩 기분이 좋지만은 않은 장난속에 나를 대응시키고 있을때 쯤


문득

궁금했다

사랑은 어디로 갔나


내가 했던 그 많은 사랑들은 다 어디로 갔나

그 간절했던 마음부터 잊지못한 추억들이며

아름다웠던 너의 모습들과 너와의 시간들

난 그 모든것을 그리도 열렬히 바라고 원했으면서

그 모든것들은 어디로 떠나 보냈나 하며


내가 가졌던 희망

너와 함께하면 행복할꺼 같았던 그 작은 희망

너의 손짓에 너의 눈빛에 너의 말 한마디에

황홀하고 행복했었던 그 시간들

그 시간들 속에서 만들었던 나의 작은 희망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간걸까


희망?

난 희망을 만들었지만

희망이 있었던 적이 있는가?

나에게? 단 한번이라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절대 모르는 그 무언가

내나이 스물셋

사랑을 안지 벌써 9년째

사랑의 아픔만을 안고 살아온지 벌써 5년째

난 사랑을 하면서

남긴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짝사랑을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더 큰 사랑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순수의 끝에서 나의 추잡함을 한번 되새기게 된 이후로

난 더이상 희망의 세레나데를 부르지 않기로 했다

너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너의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의 모습이 너무나 나를 행복하게 했지만

나는 니가 만들어준 파랑새를 잡기위해

내 맘속 집 밖으로 뛰쳐나가지 않기로 했다


혹자는 내가 쉽게 포기한다고 하고

혹자는 아직 너무 이르다고 말한다

그래도

아픔만을 간직한채

너무나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

가슴팍에 칼을 꼽고 몇년을 지내고 나니

칼은 이미 내 몸의 일부가 되어

내 넘칠듯한 심장의 요동을 방해하고 있다


내 심장은

뛰면 뛸수록

아파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제 조용히

내 심장의 칼을

아프지 않게 꺼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 밖에는

남지 않았다

by 태방 2007. 4. 30. 01:51
http://blog.naver.com/nogari9/100036932049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한국의 지성 ‘금서’가 키웠다
[경향신문 2007-04-29 18:12]    

◇ 국내서적

지식인들이 뽑은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국·내외 저술은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이른바 ‘금서목록’에 올랐던 책들이 주류였다. ‘해방전후사의 인식’(23명)과 ‘자본론’(18명), ‘전환시대의 논리’(15명)는 대표적인 금서였으며 ‘태백산맥’(10명)은 불과 2년 전까지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검찰에 계류돼 있었다. 79년 10·26 사태를 열흘 앞두고 한길사에서 출간됐던 ‘해방전후사의 인식’(해전사)은 70~80년대 대학생들에게 한국현대사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선물해준 교과서였다.

송건호·오익환·백기완·진덕규 등이 참여해 ▲해방의 민족사적 의미 ▲분단의 배경과 과정 ▲친일파 문제를 다뤘다. 대다수 응답자들이 “대학시절 지하 이념서클의 의식화 교재로서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현 시점에서 보면 이 책 내용은 상식적이다. 그러나 발간 당시는 상식이 불온하던 시절이었다.

김언호(한길사 사장)는 “애초 송건호 선생과 책을 기획할 때는 ‘한 5000권 나가려나’ 예상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책은 지금까지 40여만권이 나간 초특급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책에 실린 생각들은 기본적으로 자유민주주의였어요. 진덕규, 임종국 같은 필자들도 대부분 이데올로기와 관계 없는 분들이었죠. 그런 책인데도 엄청난 반응을 불러일으킨 것은 1차적으로 독자들이, 즉 시대가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땐 정말 대단했어요. 10·26이 터져 책이 판금될 때까지 열흘 만에 4000권이 나갔으니…. 판금됐다고 그 책을 안 읽었겠어요. 판금시키면 오히려 복사본이 더 많이 나돌던 때였죠.”

해전사가 한국현대사를 보는 새로운 눈을 제공해 줬다면,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1974)는 세계를 보는 새로운 눈을 깨우쳐 준 책이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으로 드러난 미국 대외정책의 추악한 본질을 폭로하고, 중국사회주의의 인간적인 모습을 그렸다. 냉전 이데올로기 교육을 받았던 대학생 김동춘(성공회대 교수)으로 하여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을 줬으며 김세균(서울대 교수)이 “밤 새워 읽었고, 그 후에도 읽고 또 읽었던” 그 책이다.

이 책은 리영희(한양대 전 교수)의 ‘우상과 이성’(2명)과 함께 “사회과학도로서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쳐 준 고마운 책”(신광영 중앙대 교수)으로 기억되고 있다. 신광영은 “이 저술로 인해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력이 가능함을 처음으로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조정래(소설가)의 ‘태백산맥’에 대해 이광일(성공회대 교수)은 “지식인 사회를 넘어 한국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준 책은 태백산맥 정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박기봉(비봉출판사 대표)은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잠재되어 있던 냉전의 족쇄를 깨는 데 일조했다”고 평했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는 “소련에는 소비에트 체제에 대항한 우파-전통주의적 휴머니스트 반체제 작가로서 보편성을 획득한 솔제니친이 있다면, 한국에는 권위주의 체제에 대항한 좌파-민족주의적 휴머니스트 반체제 작가로서의 보편성을 획득한 조정래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복거일(소설가·미래문화포럼 대표)은 “부정적인 의미에서 태백산맥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최장집(고려대 교수)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2002)는 2000년대에 나온 책으로는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임지현(한양대 교수)의 ‘민족주의는 반역이다’(3명), 임지현·권혁범·박노자·임은실 등이 함께 쓴 ‘우리 안의 파시즘’(2명)은 민족주의에 대한 최초의 본격적인 문제 제기였다는 점에서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 해외서적

한국 사회에 영향을 준 해외 저술로 가장 많은 지식인들이 꼽은 ‘자본론’(18명)은 1980년대 후반 과학적인 변혁이론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 첫 한글 번역본이 나온 87~89년 이전에도 일본어 번역본 등의 형태로 은밀하게 유통됐지만 본격적으로 학생들 손에 쥐어진 것은 87년과 89년 강신준(동아대 교수)과 김수행(서울대 교수)이 잇달아 번역본을 내면서부터이다. 고병권(수유+너머 대표)은 “87년 이후 첫 10년간이 지식사회가 마르크스주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면, 그 후 10년간은 마르크스주의에 회의하거나 그것을 전환시키려 시도했던 과정이 아니었나 한다”고 말했다.


87년 민주화 직후 서울대 교수 김수행을 통해 자본론 1~3권을 번역해낸 박기봉(비봉출판사 대표)은 “자본론은 지금도 해마다 1000여권씩 나가는 스테디셀러”라며 “다만 책의 결론에만 줄 치는 운동권식 독법보다는 그런 결론이 도출되는 논리를 따라가는 자본론 읽기가 더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

81년 미국에서 출간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16명)은 번역도 되기 전에 널리 읽히며 냉전체제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다. 현대사에 관심 있는 연구자들 중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정도다. 하종문(한신대 교수)은 “우리를 옥죄어 온 냉전체제를 뒤집어보게 해 준 의미를 높이 살만하다”고 했다. 김원(서강대 연구교수)은 “냉전적 시각, 빈약한 사회과학적 방법론에 입각해 한국현대사 해석을 하던 한국학계에 ‘지적인 충격’을 줬다”고 말했다.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8명)은 98년 서울대 교수인 한상진·박찬욱에 의해 번역돼 한국 사회에 ‘실용주의’와 ‘중도론’뿐만 아니라 ‘사회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근거로 활용됐다. 조효제(성공회대 교수)는 “‘이데올로기의 종언’이 얘기되며 대안적 진보이념을 갈구하던 시점에 소개돼 큰 영향을 미쳤다. 진보진영은 공개적으로는 기든스를 비판하면서, 자기 방에서는 몰래 정독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 책이 소개된 90년대 후반을 거쳐 최근 와서 대안적 진보이념으로 사회국가, 사회투자 국가, 사회서비스 국가, 사회연대 국가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거의 모두 기든스식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며 “일종의 ‘거명되지 않는 영향력, ‘스텔스기와 같은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주었다”고 평가했다.

조효제는 “푸코의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저술은 권력과 담론에 관한 인식 전환의 계기를 줬다”면서 “한국에 소개된 시점이 한국적 문제의식의 지형에 맞지 않았음에도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역설적”이라고 지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로마인 이야기’ ‘해리포터’ ‘반지의 제왕’ 등 대중 서적들이다. 김만흠(한국정치아카데미 원장)은 “대중사회 수준에서는 일본과 미국의 소설, 성공학 번역서들이 미치는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전영평(대구대 교수)은 “지식인 집단보다는 대중에 대한 영향력이라는 측면으로 파악한다면 해리포터가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제민·김종목·장관순기자〉 

by 태방 2007. 4. 29. 23:38
http://blog.naver.com/nogari9/100036766106

저는 진짜진짜 욕심쟁이 입니다

피자를 먹을때도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조각을 먹으려고 눈치를 보고

게임을 할때도 기록을 깨기 전까지 손을 떼지 못하며

일을 할때도 맘에 들때까지 끝까지 보완하고 수정하고

한번 내것이라 생각되면 남에게 쉬이 주지 못합니다


진짜진짜 욕심이 많습니다

관심이 생긴 것은 작은것 하나하나까지 알려고 하며

맘에 안다는건 어떻게든 고치기 위해 끝까지 들이밀며

나 스스로에게도 못난 부분이 보이면 답답해서 견디질 못하고

고치기 위해 안달을 내곤 합니다


난 착해지고 싶었습니다

착하게 살면서 잘 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난 착해지는데에도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습니다

무조건 내것을 주고 다 베풀고자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좋은일이면 먼저 하려고 노력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은 최대한 주고

내가 받은 도움을은 항상 고마워 하고 감사워 하며

무엇이든 최대한 좋게좋게 생각하고

사람을 믿고 나 역시 믿음을 주기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착해지려고 하다보니

욕심을 부릴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싶은것도 달라고 못하겠고

내게 필요한것도 요구를 못하겠고

내게 도움이 필요해도 도움을 달라고

선뜻 손을 내밀지를 못합니다

바라는건 많고 욕심은 많은데

막상 내 욕심을 채울 방법은 없고

그냥 남에게 암묵적으로 해주길 바라고

마냥 기다리고 착한척하며 눈치를 주기도 합니다


뭐 그래서 되겠습니까

그래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살기도 하고

아니면 욕심을 못채워서 그런지 몰라도

스트레스도 받고 피곤해 하기도 하며

그려려니 지내고 있다보니


내것을 챙기는 법을 까먹었습니다

뻔뻔하게 내껀 내꺼고 니껀 니꺼다 할줄도 모르고

전부 남에게 주고 남은걸 가지기가 일수이며

그렇다고 마땅히 착해지는거 같지도 않습니다

별로 착해보이지도 않고

착해보인다고 해도 별로 좋아보이지도 않습니다

그냥 그렇게 그저 그런 인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것은 하나도 못챙긴 채 말이죠


난 가진게 많은 인간이라 생각했습니다

난 내 가치에 비해 얻는게 많은 인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좀 뺏기더라도 그게 그리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오히려 남에게 베풀 수 있다면

내가 가지지 않더라도 그것 또한 나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주는것이 결국 나에게도 좋은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내껄 하나도 만들지 못해버렸습니다

난 정말정말 욕심이 많은 사람인데도

욕심 부리는법을 까먹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욕심은 납니다

가지고 싶습니다

내꺼이고 싶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가지지를 못합니다


물론

모든것을 가지지 못하는건 아닙니다

나 스스로 노력해서 가지게 된것도 있고

아니면 경험을 통해 굴러서 가지게 된것도 있고

조금이나마 남의것을 뺏어서 가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원하고 바라는 것들은

아니 내가 남에게 줄줄만 알아서 한번도 가지지 못한 것들은

갈수록 욕심은 커져가지만 점점 가질 수는 없어져 갑니다

그런 가치들이 되려 나에게 스트레스로 돌아옵니다


어쩌면 좋을까요

by 태방 2007. 4. 25. 02:00
http://blog.naver.com/nogari9/100036699064

인간이 가장 솔직해 질 수 있는때는

언제일까

인간이 가장 순수해 질 수 있는때는

언제일까

인간이 가장 추잡해 질 수 있는때는

언제일까


사람이

아무에게도 영향을 받지않는

혼자 남겨진 공간에서 하는 행동들은

항상 그런것은 아니지만

가장 솔직해 지기도 하고

가장 순수해 지기도 하며

가장 추잡해 지기도 한다


혼자 있을때 하는 생각들

혼자 있을때 하는 행동들

그 모습들이야 말로

철저하게 벗겨진 나 자신의 본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혼자 있을때만 하는

추한 생각, 추한 행동들

내가 이것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것이 힘들듯한

아니 불가능할 듯한

그런 행동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조금은 무서워 지고 조금은 두려워 진다


아니

누가 있건 없건

그냥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을것이다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는 상황

그렇지 않는 생각

그렇지 않는 행동

도 있다는것은 사실 아닌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을 공간에서

아무도 들어오지도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에서라면

사람이 어떤 생각이고 행동이고

못할것이 뭐가 있겠냐

라는 생각


그리고

그 생각에서 출발하는

나의 행동들

순수해진 나의 추잡한 행동들


항상은 아니지만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또 있다는것 자체가

내 본성의 모습이 어떨까에 대한 자괴감

이런것들이 속에서 조금씩 생겨나고 있달까


이런것 자체를 말하는것 조차

어찌보면 금기이겠다만은

(무슨 행동인지는 몰라도

어쨌든 상상할 수 없을만한

추잡한 행동을 한 적이 있다는 것을

그래도 어쨌건간에 밝히고 있는 것이니 만큼)

그래도 나만 그런것은 아니겠지 싶은 생각에서

다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말은 '절대' 그렇게 안하겠지만

그래도 다들 혼자만 있을때 하는

비겁한, 추잡한 생각이나 행동이

한번씩은 있지 않겠냐는 맞는지 틀린지도 모르는 믿음때문에

이런 조금은 이해가지않는 의아한 말초적인 야생적인 글을 써봅니다

by 태방 2007. 4. 23. 00:25
http://blog.naver.com/nogari9/100036697931

사용자 삽입 이미지


 

눈이 무척 따뜻하다고 내가 말한 적 없나요
웃는 얼굴이 참 좋다고 내가 말한 적 없나요

 

맨날 라면만 사가시냐며 걱정해 주던 그날에
모든게 시작됐다고 내가 말한 적 없나요 음흠..


나 농담도 서툴고 운동도 잘 못해요
나이도 어린것도 아니죠 가진건 솔직히 아무것도 없지만
그대만은 가득해요

 

괜찮을까요 음흠... 당신맘 알고 있다고
내게 말할순 없나요 어떻게 모르느겠냐고
내게 말할 수 없나요


맨날 똑 같은 라면을 사고 아무말 없이 떠나도
첨부터 좋아했다고 내게 말할 수 없나요

 

나 이리도 둔하고 말주변도 없어요
그대에 앞에서면 더해요

밤새워 되낸 말 끝내하지 못하고

오늘도 돌아서요 바본가봐요


나 이리도 둔하고 말주변도 없어요
그대에 앞에서면 더해요

밤새워 되낸 말 끝내하지 못하고
오늘도 돌아서요 바본가봐요


그대 좋아합니다 지켜봅니다
나란 사람 기억하나요
바보같지만 답답하지만
손을 잡고 얘기 할래요
(그댈)좋아합니다 (그댈)지켜봅니다
(그대 혹시라도)나란 사람 기억하나요

바보같지만 (정말)답답하지만
(언제까지 그댈)손을 잡고 얘기 할....

by 태방 2007. 4. 22. 23:41
http://blog.naver.com/nogari9/100036657904

예전에 약속했던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이제서야 쓰네요 -ㅇ-

시시님께 정말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꾸벅

(이제부터는 다시 반말 ㄷㄷ)


난 주변 사람들에 비해

추억을 많이 가지고 살아가는 편은 아니다

워낙 살아온 환경이 자주 바뀌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안좋은 기억들만 머릿속에 남아

무의식적으로 과거의 기억은 덮어 버린달까


다행히 잔잔한 기억들은 존재한다

또 과거의 기억들을 단순한 생각이 아닌

머릿속에 동영상이든 사진이든 영상화 시켜 남아있는 편이라

남아있는 추억들은 항상 생생히 기억해내곤 한다


추억

추억도 즐거워야 추억일텐데

왜 항상 머릿속에 즐거운 기억보다는 즐겁지 않은 기억이 남아 있을까


가족과의 추억

우리 어머님이 내가 어렸을적부터 맞벌이를 하셔서

우리 가족과 함께했던 시간은

항상 날잡아서 어딜 간다거나 하는 기억들이었다

하지만 원체 어렸을때부터 살이 디룩디룩 쪄서;;

움직이는걸 극도로 싫어한 나는

가족끼리 어디 간다고만 하면 귀찮아서 안달이었다


친구와의 추억

친구들과 좋았던 기억과 추억은

그래도 참 많은편이다

하지만 언제나 기뻤던 기억들만 가득하진 않았고

어떤 이유인지, 어떤 기질인지는 몰라도

친구들과 한번쯤은 서운한일도 기분나빴던 일도

또는 원치않게 상처받았던 일들도 참 많아서

난 왠지 친구들과 추억 이야기를 하지만

조금은 변두리로 가야 할꺼만 같은 기분이랄까


연인과의 추억

은.. 흠 없고;;

물론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사건들로

아련한 추억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전혀 서로 나눌 수 없는 그런 추억들은

나만이 혼자 가지고 있는 그런 추억들은

의미가 느껴지지가 않는다

혼자 만든 그런 이미지랄까 무의미한 기분


사실 뭐 다 핑계다

좋은 추억들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고

그런 추억들 많이 담아두고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물론 내 가슴안에는 좋은 추억들 많이 담아가고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추억을 내가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과 공유할 수 없다는게

항상 그런거 때문에 추억을 잊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아예 없다는건 아니지만

일반적으로는 내가 가지고 있던 기분좋은 기억과 추억들은

대부분 나누고자 해도 다들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유하지 못하는 기억들

그런 기억들로만 남아있어

왠지 나조차도 좋은 추억들을 멀리해야할것만 같은

그런 기분으로 만들어 버린다


난 이미 고등학교때 부터

집보다 학교 기숙사에 있던 시간이 많아

가족에게 내 추억을 나누어 줄 것이

사실 많지가 않으며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갈때는 7명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갈때는 2명

고등학교에서 대학교로 갈때는 3명

딸랑 저만큼의 친구와 함께 갔기 때문에

오랫동안 추억을 노래하고 이야기할 친구가 많은것도 아니며


내가 사랑하던 여자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시간들은

순 전 히 나에게만 행복이었기 때문에

또 그 행복이 전혀 공유할 수 없는 행복이기에

뭐 그건 그저 그거대로 찌꺼기로 남겨져 있는 것이랄까


이런 추억들은 대체 공유할 수가 없는 추억들이다


이제는 집에 정착도 하고

내 생활도 슬슬 안정화되어 살아가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어렸을적 추억'이라는거 가슴에 많이 남는거니까

그 추억을 많이 못만들고 이제 곧 20대 중반에 접어들게 될꺼니까

그게 조금은 가슴이 아프고

앞으로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고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는 점이기도 하다


항상 나는 과거에 불만족했고

그래서 미래만을 바라고 따라고 좇으며 살아왔다

내일은 태양이 뜰꺼야 내일은 태양이 뜰꺼야

태양이 뜨지 않았다고 착각했던건지, 아니면 태양이 정말로 안떴었는지는

뭐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더라도

난 태양을 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항상 나를 따라다니던 그림자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내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은 이제는 영영 잊혀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도 하다


앞으로는 뒤도 좀 보고 다닐

여유가 있어야 할텐데

나란 인간;; 항상 만족을 못하니;;

앞으로도 추억을 많이 만들며 살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은 그리 많지는 않을꺼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슬픈걸까 아닐가

by 태방 2007. 4. 21. 22:08